토끼가 방아 찧는 달? 토목공사하는 달!…‘우주 크레인’을 만드는 이유

이정호 기자
외계 천체에서 작업용으로 사용될 ‘우주 크레인’의 모습. 사람의 팔 관절을 닮았으며, 달 기준으로 1t에 달하는 물체를 들어 옮길 수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외계 천체에서 작업용으로 사용될 ‘우주 크레인’의 모습. 사람의 팔 관절을 닮았으며, 달 기준으로 1t에 달하는 물체를 들어 옮길 수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탐사 목적 ‘정착·자원 개발’로 변화
미, 외계 천체서 쓸 중장비 개발 중

굴삭기·지게차 역할에 용접까지
우주복 입고 중노동 안 해도 돼
NASA “화성서도 운용 가능할 것”

1986년 개봉한 공상과학(SF) 영화 <에일리언2>의 후반부에는 우주 괴물인 에일리언과 주인공 리플리(시고니 위버)가 한판 대결을 벌이는 장면이 펼쳐진다. 에일리언은 강한 이빨과 큰 덩치, 그리고 윤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잔혹성으로 수많은 인명을 해친 무서운 생명체로 묘사된다. 에일리언에 대항하기 위해 리플리는 사람처럼 두 발로 걷는 작업용 크레인 안에 올라탄다. 대략 2~3m 높이인 크레인의 팔에는 불꽃을 뿜는 용접기와 강력한 집게 손이 달렸는데, 리플리는 이를 이용해 에일리언을 거세게 몰아붙이고 결국 우주선 밖으로 날려보낸다.

하지만 현실 속 우주개척 현장에선 영화에 등장한 육중한 중장비를 찾아보기 어렵다. 달 착륙 이후 수십년간 우주왕복선과 국제우주정거장(ISS) 같은 무중력 환경에서 각종 작업이 이뤄지면서 중력을 이겨내고 움직이는 중장비가 굳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우주 크레인’ 개발 순풍

그런데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이달 중순 다른 천체에서 사용할 작업용 중장비의 개발이 순풍을 타고 있다고 밝혔다. 이 중장비는 한눈에도 무거워 보이는 성인 키 높이의 대형 원통을 달 탐사선의 지붕에서 지상으로 내릴 수 있다.

<에일리언>에서처럼 사람이 직접 올라타 조종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어깨, 팔꿈치, 손목 관절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유연한 움직임으로 무거운 물체를 정해진 자리에 옮긴다.

NASA가 밝힌 이 장비의 이름은 ‘경량 표면 조작 시스템(LSMS)’이다. 한마디로 외계 천체의 땅에서 운용하는 ‘우주 크레인’이다. 비교적 얇은 몸체로도 큰 힘을 버텨내도록 뼈대를 삼각형으로 배치하는 트러스 구조로 설계됐다. 트러스 구조는 탑이나 교량 등에서 흔히 사용된다. 여러 가닥의 케이블 힘을 이용해 달에서 중량 1t짜리 물체를 들어 올릴 수 있고, 작업할 수 있는 거리는 7.6m에 이르도록 개발되고 있다.

■장비 설치·토목공사 ‘거뜬’

우주 크레인은 왜 만들었을까. 답은 미국의 달 개발 계획의 방향과 맞닿아 있다. 2020년대 미국의 달 탐사 목적은 1960년대와 다르다. 국가 위상을 높이거나 과학연구를 하는 데에만 집중돼 있지 않다. 진짜 관심사는 장기 정착과 자원 개발이다. 달에선 화성 같은 먼 행성으로 떠나기 위한 터미널이 건설되거나 지구에선 희귀한 핵융합 연료인 ‘헬륨3’ 같은 자원을 캐내는 일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면 달에서 큰 기계를 옮기거나 대형 토목공사를 벌여야 한다. 이때 우주 크레인을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크레인을 쓰면 우주비행사가 움직임이 불편한 두꺼운 우주복을 입고 삽질과 곡괭이질을 하거나 무거운 설비를 어깨에 짊어지고 옮겨야 하는 중노동을 피할 수 있다. 대신 우주비행사는 관리 업무에 집중하면서 달 기지 건설과 운영에 공을 들일 수 있게 된다.

■다재다능 ‘스위스 군용 칼’

우주 크레인은 짐을 옮기는 것 외에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크레인 끝에 달린 도구를 작업 상황에 따라 갈아 끼우는 방식으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삽을 끼워 흙을 퍼내거나 기다란 막대를 달아 넓적한 형태의 짐을 들어 옮길 수 있다. 지구에서라면 굴삭기와 지게차가 각각 할 일을 한 장비로 처리하는 것이다. 이외에 용접 같은 고난도 작업도 가능해 활용의 폭이 넓다. 게다가 자동화 기능까지 탑재될 예정이다. 달은 지구와 가까워 통제실에서 원격 운전을 하거나 달 현장에서 사람이 직접 다루는 것도 가능하지만, 스스로 움직여 목표한 임무를 수행한다면 일의 효율은 더욱 오르기 마련이다. NASA는 이처럼 다재다능한 우주 크레인에 흔히 ‘맥가이버 칼’이라고도 부르는, 스위스 군용 칼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톰 존스 NASA 수석연구과학자는 “다양한 임무에 맞도록 우주 크레인 크기를 다변화하려고 한다”며 “달은 물론 화성에서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류 역사상 기술적으로 가장 진보한 지상 탐사 로봇인 미국의 ‘퍼서비어런스’가 지난 18일(현지시간) 화성에 착륙한 가운데 우주 크레인 개발처럼 외계에 인류 거주지를 마련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에도 더욱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