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43일만에 당선자 확정...좌파 초등교사 대통령, 페루 현대사 바꿀까

이윤정 기자

[시스루 피플]은 ‘See the world Through People’의 줄임말로, 인물을 통해 국제뉴스를 전하는 경향신문의 새 코너명입니다.

19일(현지시간) 페루 대통령 당선인으로 공식 발표된 페드로 카스티요가 수도 리마에 있는 자유페루당 당사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리마|AP연합뉴스

19일(현지시간) 페루 대통령 당선인으로 공식 발표된 페드로 카스티요가 수도 리마에 있는 자유페루당 당사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리마|AP연합뉴스

결선투표 후 43일간 당선인 발표를 하지 못하고 있던 페루 대통령 선거의 승자가 확정됐다. 시골 초등교사 출신의 좌파 자유페루당 후보 페드로 카스티요(51)가 5년간 페루를 이끌게 됐다.

페루 국가선거심판원(JNE)은 19일(현지시간) 카스티요를 대통령 당선인으로 공식 발표했다. 지난달 6월 6일 대선 결선 투표가 치러진 지 43일 만이다.

카스티요는 결선투표에서 50.125%를 득표해, 49.875%를 얻은 우파 민중권력당 후보 게이코 후지모리를 4만4000여표 차이로 제쳤다. 하지만 후지모리 측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대선 사기라며 일부 표의 무효화를 주장했다. 이 때문에 대선이 끝난지 6주가 지나도록 결과 발표가 미뤄졌다. 양측 지지자들이 거리로 나서면서 정세도 극히 불안해졌다.

하지만 선거심판원은 이날 후지모리 측의 이의 제기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고, 후지모리도 결국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카스티요는 오는 28일 프란치스코 사가스티 임시 대통령으로부터 자리를 물려받게 됐다.

카스티요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이것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의 싸움이자 주인과 노예 간 싸움”이라고 규정했다. 페루에선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열악한 공공보건의료 체계 탓에 수십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유명무실한 복지 시스템으로 수백만명이 극빈층으로 전락했다. 카스티요 당선자는 “코로나19는 낡고 부패한 국가의 불안한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며 사회개혁과 국민복지를 외쳤다.

이번 대선은 올해 4월11일 1차 투표에서 각각 1, 2위를 차지한 카스티요와 후지모리의 좌우대결로 치러졌다. 두 후보는 출신 배경은 물론, 이념적으로도 양극단에 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25년간 초등교사를 지낸 카스티요는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세금 인상을 비롯해 주요산업 국유화 등을 담은 헌법 개정을 주장한다. 때문에 도시의 부유층은 우파 후지모리 후보를 지지했다. 후지모리 지지자들은 카스티요를 “테러범”이라며 깎아내렸지만 그는 “국민들을 테러하는 것은 굶주림, 비참함, 무시, 불평등, 부당함”이라고 맞받아쳤다.

카스티요는 페루에서도 가장 빈곤한 지역인 북부 카하마르카 농촌 출신이다. 문맹 농부의 아홉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교육학을 전공해 25년 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2017년 페루 교사들이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벌인 총파업 시위를 주도하면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카스티요는 자신의 농장에서 소를 돌볼 때 입는 남미 인디언 전통 복장인 폰초에 낡은 자동차 타이어로 만든 샌들, 챙이 넓은 전통 밀짚 모자 차림으로 유세를 펼치고 언론 인터뷰를 했다. 교사 직업을 강조하기 위해 큰 연필을 들고 다녀 카우보이 모자와 연필은 그의 상징이 됐다. 그가 1차 대선에서 깜짝 1위를 차지한 후 바람을 일으키며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던 ‘서민 교사’로 유권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기 때문이다.

카스티요 마을에 사는 주민 후안 카브레라(57)는 “우리는 과거 모든 정부에게 존재하는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하지만 그의 앞길은 결코 순탄치 않다.

카스티요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넘어 페루의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고 양극단으로 갈린 국민여론을 봉합해야 한다. 지난해 11월엔 일주일 사이에 대통령이 세번이나 바뀔 정도로 페루는 지금 정치적으로 혼란스럽다. 전직 대통령 7명이 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거나 조사를 받고 있을 만큼 부패는 만연했다.

카스티요의 포퓰리스트적 성향에 대한 우려도 적지않다. 그는 기간산업 국유화를 내걸었을 정도로 좌파적 성향을 띈다. 하지만 낙태와 동성결혼에는 반대하는 등 사회 문제에서는 보수적이다. 가디언은 “사회 문제에 관해 카스티요는 극우파와 거의 차이가 없다”고 평가했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것도 국정운영에는 부담이다. 지난해 10월 자유페루당의 대선 후보로 지명된 전까지 카스티요의 정치 경험은 2002년 지방 소도시 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한 것이 전부다.

미 사회주의 잡지 자코뱅은 “페루에서 민선 투표로 진정한 변혁 의제를 가진 원주민 좌파를 선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이 실험이 실패한다면 페루 엘리트들은 다시는 좌파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지만 카스티요가 성공한다면 페루 현대사를 바꾸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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