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남성 본위 화단에 맞서 투쟁…집단화로 권력 획득한 ‘공생의 실험’

김홍희

페미니스트 ‘콜렉티브’ 연대 활동

입김 ‘아방궁종묘점거 프로젝트 - 탄생터널’(2000)

입김 ‘아방궁종묘점거 프로젝트 - 탄생터널’(2000)

1. ‘콜렉티브’ 연대 활동

여성성·여성미학 강조 ‘표현그룹’
반모더니즘 입지 공고히 한 ‘여미연’

황금의 복식조 12라운드는 미술계 페미니스트 ‘콜렉티브’의 연대 활동에 관한 것이다. 콜렉티브는 공동의 목표와 가치를 지닌 특정 집단의 자발적 모임을 지칭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과 저항정신으로 변화와 개혁을 꾀한다는 발족 동기에서 동호인 성격의 일반 그룹 활동과 구별된다. 실로 콜렉티브는 가장 효력 있는 행동주의 기제 중 하나이지만, 법적·제도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거나 해체되기 십상이다. 단명한 까닭에 더욱 강력한 결속력을 갖는 것이 콜렉티브의 속성이기도 하다.

페미니스트 콜렉티브는 남성 본위 화단의 모순과 한계에 맞서 투쟁한다는 태생적 명분과 절실한 젠더특정적 의제로 남성 콜렉티브보다 더 쟁의적이고 저항적인 운동을 펼쳐왔다. 이들의 치열한 연대 활동이 오늘날 여성/여성주의 미술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추동력이 되었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본 글은 한국 페미니스트 콜렉티브의 역사적 흐름과 맥락을 살펴보고 그 미술사적·비평적 의미를 가늠해본다.

2. 1970년대 ‘표현그룹’, 1980년대 민중계 ‘여성미술연구회’

인간·자연·사회의 병폐 치유하고
‘은폐된 욕망’ 가시화한 프로젝트

1960~1970년대 미술집단은 철저히 남성 주역들에 의거한 아방가르드 미학운동의 추진체였다. 앵포르멜 계열의 ‘앙가주망’과 ‘악튀엘’, 옵아트 중심의 ‘오리진’, 네오다다와 팝아트 경향의 ‘무동인’, ‘논꼴’, ‘新’, ‘신진동인’, 전위부대 ‘AG’, 개념미술 그룹 ‘S.T’ 등이 그 사례로, 이들의 혁신적 투지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전위미술의 싹을 틔우고 결국 부계 화단을 살찌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남성 군소집단의 춘추전국 시대에 한국 초유의 여성 그룹인 ‘표현그룹’이 등장했다. 1971년 유연희, 박영욱, 윤효준, 김형주, 노정란, 이은산은 여성에게 불리한 화단의 구조적 모순과 현실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하여 ‘끈질김’을 신조로,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표현’한다는 조형의지로 한데 모였다. 이들은 동시대 지배 사조였던 추상화 대신 형상화를 선호하고 천, 바느질과 같은 여성 기예를 매체화하며 여성성과 여성미학을 강조했다. 그러나 시대에 맞서는 이들의 양식 실험이 여전히 모더니즘 어법에 의존할 뿐 아니라, 여성성을 타고난 것으로 파악하는 본질론적 입장에서 자신들을 ‘소박한’ 페미니스트로 남게 했다.

1980년대는 독재정권과 모더니즘 미학에 맞서 사회변혁과 민족주의를 표방한 민중미술의 시대로, ‘현실과 발언’, ‘임술년’, ‘두렁’ 등 소집단 활동이 정치미술의 새 페이지를 열었다. 이러한 물결 속에서 결성된 ‘10월모임’(김인순, 김진숙, 윤석남), ‘터’(정정엽, 최경숙, 구선회, 신가영 등)의 동인들과 몇몇 개별작가들이 1985년 발족한 민족미술협의회(민미협)의 여성분과로 합류하면서 의식화된 본격 페미니즘 시대의 막이 올랐다. 민미협의 우산 속에서 둥지를 튼 여성분과는 그러나 1992년 여성미술연구회(여미연)로 개편하면서 여성문제에 집중하고 여성 간의 연대를 강화하는 자율적 창작, 전시 활동을 진작시켰다. 여미연의 실천력과 사명의식이 민중계 페미니즘을 정착시킨 추진체가 되었으니, 이것이 그 이전과 이후 미온적이고 일시적인 여성 소그룹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여미연은 모더니즘 미술이 부계적, 자율적, 외래적이라는 점에서 반모더니즘 입지를 공고히 하는 한편, 미술이 특수 계층의 전유물일 수 없다는 견지에서 남녀가 평등하고 상하 계급이 없는 민주적 예술 활동을 주창하였다. 특히 한국 현대사 가운데 가혹한 길을 걸어온 여성들의 삶과 여성의 노동현실에 주목함으로써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기반을 다졌다. 여성성이나 여성양식에 대한 관심보다는 계급과 불평등의 문제를 우선시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걸개그림 소모임인 ‘둥지’를 조직하여 농민과 노동자 계층 여성들과 협업을 시도하거나, 연례행사인 ‘여성과 현실’전(1987~1994)을 통해 남성 집단에서 보기 어려운 탈권력화를 지향한 점에서 여미연의 역사적 의미가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결성 10년 후인 1995년 해체선언으로 연대 활동을 마무리함으로써 ‘입김’과 같은 다음 단계의 활동으로 재편, 발전할 가능성을 열어놓은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3. 1990년대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프로젝트 그룹 입김’

입김 ‘아방궁종묘점거 프로젝트 - 치마’(2000)

입김 ‘아방궁종묘점거 프로젝트 - 치마’(2000)

강제추방과 이주 노동자 인권 문제
이슈지향·시대비판적인 작업 활동

1980년대 중후반에 이르면 1970년대의 미학주의, 1980년대 정치미술에 편재하는 양식적·이념적 획일성을 거부하는 제3의 그룹들이 등장했다. ‘난지도’, ‘메타복스’, ‘로고스파토스’가 평면회화의 형식적 한계에 대한 비판적 대응으로 비조각적 오브제와 설치라는 새로운 미학적 패러다임을 제시한 한편, ‘뮤지엄’을 비롯해 ‘서브클럽’, ‘황금사과’, ‘오프 앤 온’ 등 신세대 감성으로 충전된 소그룹 집단은 탈이데올로기와 탈미학주의를 표방하며 다원주의적이고 해체주의적인 한국 포스트모던아트의 흐름을 주도했다. 특히 ‘뮤지엄’은 이불, 노경애, 명혜경, 이형주 등 다수의 여성작가들을 포함하는 진취적 혼성 그룹으로, 이후 신세대 여성작가들의 소그룹 활동을 예고한 범례가 되었다.

1990년대의 페미니즘 그룹 운동 역시 포스트모더니즘 영향하에서 민중미술,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이 공존하는 다변화 양상을 보였다. 1993년 하민수, 염주경, 안미영, 박지숙, 하상림 등 30대 여성작가들이 결성한 ‘30캐럿’, 김춘자, 김난영 등 페미니즘과 형상미술의 접목을 시도한 부산의 ‘형상미술 그룹’뿐 아니라, 서숙진, 류준화, 조경숙, 곽은숙 등 사진, 광고, 만화 등 대중문화 수용과 대중매체의 사용으로 민중미술의 이념적 무게를 덜어낸 민중계 주니어 작가들의 전시 모임은 다양한 조형 실험과 전시 활동으로 주목을 받았으나 단명의 소그룹 활동으로 그치고 말았다.

반면 1997년 결성된 ‘입김’은 20년을 존속한 최장수 콜렉티브로 꼽힌다. 물론 2008년 이후에는 소강 상태로 명맥을 유지하다 2018년 해체선언을 하게 되지만 그룹 활동의 존립과 의미에 대해 깊은 고민과 성찰을 해온 만큼 페미니스트 집단으로서의 이들의 발자취는 아직도 유효한 재조명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미연 출신 화가들인 정정엽, 류준화, 우신희, 곽은숙을 비롯해, 제미란(기획), 윤희수(시각디자인), 김명진(멀티미디어), 하인선(작가) 등 다양한 분야의 미술인 8인으로 구성된 입김은 1980년대 여미연에 버금가는 결집력과 투쟁력으로 민중페미니즘을 재점화하였다.

여성의 따뜻한 입김으로 언 땅을 녹이고 언 마음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취지에 걸맞게, 입김은 인간, 자연, 사회의 병폐를 치유하고 소외된 여성문화를 활성화하며 은폐된 욕망을 가시화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2000년의 ‘아방궁 종묘 점거 프로젝트’는 기획력과 실천력에 의거한 행동주의의 결과물이자 전복적이고 해방적이며 해학적인 입김의 성격을 명시하는 대표작이다. 아방궁, 즉 ‘아름답고 방자한 자궁’이 왕실문화, 유교문화의 상징인 종묘를 점거한다는 발칙하고 방자한 발상으로 난공불락의 가부장 요새를 공격한 것이다.

천으로 만든 10m 길이의 ‘자궁터널’을 통과하며 탄생과 생명의 신비를 되새겨주거나, 승리의 깃발처럼 펄럭이는 한복 치마로 종묘 공원 전체를 감싸는 등, 옷과 몸으로 유희하는 여성적 놀이로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남성문화를 조롱하고 시각적 전시를 공감각적 체감의 전시로 치환시킨 아방궁 프로젝트는 일체의 사회적 금기에 도전한 카니발적 민중축제이자 도발적 페미니즘 축제로 자리매김되었다. 해체주의가 성행하던 1990년대 말, 입김의 이러한 본질주의적, 행동주의적, 분리주의적 페미니즘은 1980년대 중반에 전시대의 행동주의를 부활시킨 미국 게릴라걸즈의 행각을 연상시킨다. 이론적이고 지적이며 난해한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에 비해 대중적이고 선동적인 본질주의 페미니즘은 호소력과 친화력으로 시대를 관통해 등장, 재등장한다. 입김 역시 근원적이고 우주보편적인 본질론적 입장과 궤를 같이하며 영원한 생명력을 담보한다.

4. 2000년대 이후 예술가 콜렉티브, 문화기획 공동체, 급진적 페미니스트 연대체

SNS로 리부트 된 ‘넷페미니즘’
‘스쿨미투’ 등 전시 외 협업 활발

2000년대 미술계에는 작가들의 창작 공동체인 ‘예술가 콜렉티브’ 활동이 성행하였다. 주로 남녀 혼성집단으로 구성된 이 콜렉티브 작가들은 이슈지향적이고 시대비판적인 작업으로 주목을 끌며 화단의 총아로 등단했다. 2002년 활동을 시작한 ‘믹스라이스’와 2009년 결성된 ‘옥인 콜렉티브’가 대표적인 사례로, 전자는 강제추방과 이주노동자의 인권문제를 사진, 영상, 만화, 벽화, 페스티벌 기획 등으로 주제화하였고, 후자는 종로구 옥인동 아파트의 철거를 계기로 도시 개발에 따른 사회적 문제를 임상병리학적 시각으로 관찰하며 방송, 공연 등 이례적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2009년에 결성된 ‘파트타임 스위트’ 역시 현대문명과 도시적 삶에 대한 윤리적 질문을 작업의 출발점 삼아 다매체 작업을 수행했다.

이 시기에는 또한 ‘이웃상회’, ‘달리도서관’, ‘문화기획달’과 같은 문화기획자 공동체들의 활동이 부각되었다. 이 공동체들은 페미니즘을 일상과 삶 속으로 확장시키며 순수예술, 형식예술, 자율예술의 프레임을 벗어나 여성, 일상, 놀이, 삶, 재미를 키워드로 시의적 이슈를 다루고 강력한 지적 동력으로 대안성, 지역성, 주변부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는 장애여성 스스로가 연극 생산의 주체로서 자신들의 삶과 인권, 신체적·심리적 경험을 남다른 몸짓과 언어로 표현하며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공연은 정상 신체를 상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장애인이 무대에 서는 행위 자체가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성을 거부하는 저항의 몸짓이다. 실로 이 극단은 장애인 스스로 획득한 비권력적 해방언어로 자기정체성을 회복하고, 하위주체를 대변하는 주변부의 언어로 장애여성의 실존과 권익을 정당화하고 있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정치환경의 변화와 신자유주의 여파로 페미니즘을 비롯한 진취적 정치집단 활동이 일시 소강기를 맞는다. 그러나 2015년 미투 해시태그 운동과 2016년 강남역 사건의 병발로 다시 불붙게 된 성난 페미니즘 속에서 2010년대에는 무수한 페미니즘 소집단의 출현을 목도하게 된다. 이는 2008년부터 등장한 ‘행동하는 촛불소녀’가 2016년 촛불집회를 거쳐 비폭력적·문화적 저항의 주체가 되고 이들이 페미니스트로 성장하게 된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2000년대부터 등장한 ‘안티 아라키’, ‘작전 L’, ‘젠더 스펙트럼’, ‘잡년 행진’ 등 퀴어 감성의 동성애 정치학을 표방하는 페미니즘 공동체 및 네트워크에 이어, 2010년대에는 콜트콜텍 시위,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과 결합하면서 전시 공연 활동을 해온 ‘빨간 뻔데기’, 성폭력과 성매매에 관련한 작업을 진행해온 ‘언니모자’ 등의 미술 그룹이 등장했다.

한편 이즈음 SNS를 통한 연대체 활동이 활성화된다. 미술계 성폭력 사건들을 계기로 등장한 ‘AWA’(여성미술인 연대), ‘WACA’(여성문화예술연합), FDSC(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 ‘불꽃페미액션’, ‘페미당당’, ‘푸시텔’, ‘루이즈더우먼’은 예술과 사회운동의 관계를 고민하며 여성예술가를 위한 성평등 교육 등 다양한 프로젝트와 워크숍을 실시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에 힘입어 낙태죄 폐지나 디지털 성매매 처벌 강화 등 유의미한 실천적 성과를 거두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5. 2015년 이후 ‘시각 이미지를 만드는 페미니스트 프로젝트 노뉴워크’

노뉴워크 ‘구부러진 안팎’(2018, 그룹전 전시전경, 촬영 홍철기)

노뉴워크 ‘구부러진 안팎’(2018, 그룹전 전시전경, 촬영 홍철기)

2015년 이후 SNS로 ‘리부트’된 넷페미니즘, 특히 메갈리아, 워마드와 같은 급진적 현상으로 대변되는 시대 변화, 태도 변화를 실험적으로 가시화하고 예술적으로 체감시키는 미술계 콜렉티브 활동이 두드러졌다.

그 가운데 2015년 개관한 비영리예술공간 ‘합정지구’는 이론가, 작가, 기획자들이 연대하여 협업을 근간으로 ‘함께 살아가기를 실천’하고 있는 창작과 기획의 플랫폼이며, ‘아그라파소사이어티’는 이진실, 이연숙, 김진주 등 페미니스트 이론가/기획자로 구성된 기획·출판 콜렉티브로 2019년부터 웹진 ‘세미나’를 통해 페미니즘 예술 담론을 생산하고 있다.

‘노뉴워크(No New Work)’는 강력한 추진력으로 정치적 액티비즘과 미학적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미술계의 급진적 페미니스트 콜렉티브이다. 2016년 미술작가 봄로야(본명 김은진)를 비롯해 윤나리, 자청, 혜원, Q9 등 5인의 시각예술 종사자가 SNS를 통해 결성했으며, 미국 여성 미술작가 엘런 맥마흔의 책 이름에서 그룹 명칭을 빌려왔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만연한 가부장적 폐혜, 여성에게 가해지는 가시적/비가시적 폭력, 그에 대한 불편함, 결핍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여성이자 작가로서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를 공감하기 위한 예술적 결단의 표명으로, 이 콜렉티브는 성폭력을 주제로 한 전시 ‘불편한 고리들: 폭력의 예감’(2016)을 비롯해 여성 이슈에 대한 문제의식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출품작들에는 피해 여성들이 느꼈을 두려움, 좌절과 분노, 그럼에도 굴복하지 않는 저항과 결기가 담겨 있다. ‘구부러진 안팎’전(2018)에서 새로움의 창안이나 미학적 달성보다는 공유 감각의 개발로 공동의 세계를 창조하려는 협업의지가 선행되었다.

노뉴워크 ‘A Research on Feminist Art Now’(2017, 프로젝트 진행 전경, 촬영 이승하)

노뉴워크 ‘A Research on Feminist Art Now’(2017, 프로젝트 진행 전경, 촬영 이승하)

이들의 협업은 전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학교 내 성폭력 고발 운동인 ‘스쿨미투’와 낙태죄 폐지 운동에 연대했을 뿐 아니라, 해시태그 트위터 이벤트 ‘여성 영웅 드로잉 프로젝트’(2016), 여성영화 공동체 상영회 ‘노뉴무비’(2016~2018), 여성신문이 주최한 성평등 행사 ‘Gender Equality, 문화예술이 젠더를 말하다’(2017, 2018) 등, 외부의 예술가, 비평가, 전시기획자들과 다양한 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지 스크리닝과 라운드 테이블로 진행했던 페미니즘 미술사 리서치 프로젝트(2017)를 바탕으로 출간한 페미니즘 비평서(2018)는 페미니즘 행사가 일회적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담론으로 정착되어야 한다는 확연한 의지를 표명한다.

6. ‘같이 살아가기, 함께 살아남기’

한국 미술사를 통틀어 볼 때 단체, 공동체, 연대체는 새로운 사조나 양식이 등장하거나 미학적 패러다임이 변화되는 중대한 시기에 모습을 드러낸다. 민중미술의 경우에서 보듯이, 집단적 연대 활동은 국가적 탄압이나 제도적 억압에 저항하는 실천적, 정치적 방안이었다. 페미니즘 콜렉티브 역시 남성 중심 화단에서 홀로서기가 어려운 여성작가들이 집단화를 통해 정치력과 권력을 획득하고 젠더평등을 이룰 수 있는 유효한 기제로, 그것은 ‘같이 살아가기, 함께 살아남기’라는 예술적 실천이자 공생의 실험으로 각인된다.

공생은 공유된 경험과 체화된 인식으로 가능해진다. ‘입김’의 정정엽은 여성의 일상, 노동현실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배운 삶의 페미니스트이다. ‘노뉴워크’의 봄로야는 미투 사건과 화단의 성폭력으로 경각된 넷페미니즘의 매개자이다. 이들은 첨예한 성인식과 타자를 배려하고 환대하는 공감 능력을 가진 미술작가이자 운동가로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페미니스트 콜렉티브의 리더, 한국 미술사 속의 실천적 액티비스트로 자리매김된다. 창작자로서의 기량에도 불구하고 활동가의 면모로 이들의 콜렉티브 활동을 기술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김홍희

[김홍희의 페미니즘 미술 읽기](13)남성 본위 화단에 맞서 투쟁…집단화로 권력 획득한 ‘공생의 실험’

김홍희는 미술사학자이자 평론가·큐레이터다. 서울시립미술관과 경기도미술관, 대안공간 쌈지스페이스 관장 등을 거쳐 현재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이다. 카셀도큐멘타14 감독선정위원·광주비엔날레 총감독·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등을 지냈다. 다수의 페미니즘 미술전과 백남준·미디어아트 전시를 기획했다. 저서로 <여성과 미술> <굿모닝 미스터 백> <큐레이터는 작가를 먹고산다> 등이 있다. 김세중상(저작출판), 석주미술상(평론), 월간미술대상(큐레이터)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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