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거장들’ 특별기고

(1)팬데믹과 초자연 그리고 초현실주의

정준모(큐레이터,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초현실주의 거장들’ 전을 찾은 시민들이 르네 마그리트의 ‘금지된 재현’(1937)을 감상하고 있다.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 마르셸 뒤샹 등 초현실주의 거장들의 원화를 직접 볼 수 있는 이번 전시회는 3월6일까지 진행된다. 우철훈 선임기자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초현실주의 거장들’ 전을 찾은 시민들이 르네 마그리트의 ‘금지된 재현’(1937)을 감상하고 있다.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 마르셸 뒤샹 등 초현실주의 거장들의 원화를 직접 볼 수 있는 이번 전시회는 3월6일까지 진행된다. 우철훈 선임기자

요즘 팬데믹으로 우리는 일상을 빼앗긴 채 살고 있다. 전혀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던 만남이 두려움으로 변한다. 모두가 외출을 삼간다. 이런 미증유의 현상은 인류가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사건이자 재난이다. 이른바 ‘초현실’ 그 자체이다. 20세기 이후 만물의 영장이라고 우쭐대며 논리와 지성, 과학으로 세상의 주인처럼 행세하던 인류가 갑자기 닥친 미생물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패닉 상태에 빠져들어 2년째 모두가 혼란 속에 지내고 있다. 인간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이 속수무책인 상태에서는 지성보다는 감성이, 합리적인 것보다 비합리적인 것이, 논리보다는 비논리가, 필연보다는 우연이 더 힘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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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다다이즘도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이성을 넘어선 인류의 광기를 목도한 작가들에 의해 비롯됐다. 대단하다 여겼던 인류 이성이 더 이상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인간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초자연적인 힘에 기대기 시작하며 탄생했다. 이 다다이즘이 초현실주의로 발전했다.

팬데믹과 맞물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올해 11월27일부터 내년 3월6일까지 열리는 ‘초현실주의 거장들: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 걸작전’은 환경위기에서 시작된 지질학적 인류세와 함께 인간의 삶과 운명을 관장하는 미증유의 무시할 수 없는 초자아, 초자연, 초현실의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코로나19로 취약해진 인간의 실존적 불안을 반영한다.

이처럼 팬데믹 이후 초현실주의 미술의 의미를 새롭게 읽어보려는 비슷한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영국 테이트모던과 공동으로 1920년대 초현실주의가 등장한 이후 약 80년간 45개국에서 제작된 작품들을 모은 ‘국경 너머의 초현실주의(Surrealism Beyond Borders)’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또 많은 미술관이나 미술전문매체들이 초현실주의를 다룬다. 이런 현상은 초현실주의가 갖는 현실 너머에서 인간의 삶과 운명을 관장하는 어떤 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절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초현실주의 전시는 지구 전체를 망라하는 집단적 관심과 전 지구적인 인간 삶을 관장하는 미지의 힘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생각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었거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초현실주의에 대해 신선한 이해를 돕는 한편 매우 부족했던 지식의 폭을 새롭게 채워준다.

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박물관(Museum Boijmans van Beuningen)은 네덜란드의 대표적 미술관 중 하나다. 네덜란드의 미술관 하면 수도 암스테르담의 고흐미술관과 국립미술관 라익스미술관(Rijksmuseum), 시립미술관 스테델릭미술관(Stedelijk Museum) 등을 떠올리는데, 네덜란드에는 이 외에도 각각 특징 있는 자신만의 컬렉션으로 자기 색채가 분명한 미술관이 많다. 인구나 국토 면적으로 따지면 세계 최고의 미술관을 갖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이들의 문화적 역량은 15세기부터 해양국가로 세계를 잇는 항로를 확보해 무역을 통해 일군 부가 바탕이 되었을 터다. 많은 의식 있는 이들이 작품과 재원을 기증해 주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시민들은 좋은 미술관이 자신의 자존심이라 생각해 이들을 존경하고 감사하게 생각했고, 국가에서도 여러 가지 지원을 통해 권장했다.

판뵈닝언미술관이 있는 로테르담은 암스테르담에 이어 네덜란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항구를 중심으로 산업이 발달해 네덜란드를 먹여 살리는 도시이기도 하다. 이 도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략적 요충지라는 이유로 나치 독일의 철저한 폭격을 받아 폐허가 됐다. 전후 컨테이너 항구로 부활하면서 산업도시로, 현대건축의 전시장이라 할 정도로 새로 많이 들어선 건물들로 건축의 도시이자 문화적인 도시로 자리를 잡았다. 로테르담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가들의 건축사무소가 자리한 건축 도시로 더욱 유명하다. 네덜란드의 대표적 건축가 램 쿨하스(Rem Koolhaas, 1944~ )의 건축사무실인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와 뉴텔링스 & 리다이크(Neutelings & Riedijk), 몽상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건축가사무소 MVRDV와 에릭 판에게라트(Erick van Egeraat, 1956~ ) 등 건축가들이 로테르담에서 새로운 건축의 지평을 국제적으로 펼쳐나가고 있다. (2회에 계속)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김기남 기자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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