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돈 빨리 갚겠다는데…시중은행은 ‘수수료 장사’를 한다?

유희곤 기자

5대 시중은행, 6년간 ‘가계 주담대 중도상환수수료’ 6483억 수취

국회 정무위 국감서 ‘폐지’ 거론됐지만…전문가들은 “부과 합당”

고금리 카드론은 별도 부과 없어…일각서 “적용 대상 개선 필요”

지난달 23일 서울의 한 시중은행 창구에서 고객들이 은행원과 상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3일 서울의 한 시중은행 창구에서 고객들이 은행원과 상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의 주요 이슈 중 하나는 중도상환수수료였다. 차주가 약정기간 전에 일부 또는 전부를 갚을 때 은행 등에 내는 비용을 뜻한다.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에 따르면 한국주택금융공사(주금공)는 2016년부터 올 6월까지 보금자리론 등에 대한 중도상환수수료로 2031억원을 거뒀다. 같은 기간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이 수취한 가계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중도상환수수료는 6483억원이었다. 집값은 급등하고 금융당국의 대출 옥죄기는 계속되는데 금융사는 수수료 장사를 한다는 비난 여론이 커졌다.

이에 주금공은 지난 10월25일부터 내년 6월 말까지, 기업은행은 11월9일부터 내년 3월까지 중도상환수수료를 각각 70%와 50%씩 감면하고 있다. 기업은행이 11월 말까지 면제한 수수료는 1억5100만원, 상환받은 가계대출액은 1112억원이다. 우리은행과 농협은행도 연말까지 가계대출 중도상환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국회가 2012년 처음 공론화한 후 중도상환수수료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주담대는 은행이 담보권을 설정한 만큼 연체가 발생해도 원금 회수가 원활한데 왜 수수료를 떼어가느냐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법적으로든 경제학적으로든 금융사의 중도상환수수료 부과는 합당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민법은 “변제기 전이라도 채무자는 변제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의 손해는 배상하여야 한다”(제468조)고 규정하고 있다.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도 “대출계약이 성립한 날부터 3년 이내에 상환하는 경우”와 “다른 법령에 따라 중도상환수수료 부과가 허용되는 경우”(제20조)는 금융사의 불공정행위가 아니라고 적시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중도상환수수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현행 법령은 없지만 타 법이 개정될 경우에 대비해 만든 조항”이라고 말했다.

은행여신거래 기본약관(제9조), 대부거래 표준약관(제13조)도 채무자가 기한 전에 돈을 갚을 수 있지만 미리 정했던 수수료는 부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대부거래 표준약관은 채무자가 일부만 상환할 경우 “비용, 이자, 원금의 순서로 충당한다”(제14조)고 명시했다.

국내 은행 등은 민법에서 말하는 ‘손해’, 즉 차주가 대출금을 (3년 내에) 중도상환했을 때 청구하는 비용으로 근저당권설정비용, 담보물감정평가수수료, 인지대, 대출모집인수수료, 대출심사비용, 신용조사비용, 담보물자체감정평가비용을 들고 있다. 차주가 중도에 상환하지 않을 것을 전제로 면제해주는 대신 대출 전 기간 동안 상각해 회수하려고 한 게 중도상환수수료라는 것이다.

여기에 중도상환받은 대출금으로 새로운 대출을 하기까지 이자수익을 얻지 못해 발생하는 손해, 주담대 채권을 담보로 발행된 주택저당증권(MBS)이나 커버드본드(CB)가 주담대의 중도상환으로 상환기일이 빨리 와 투자자가 입는 손실도 있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거대 협상력이 있는 은행이 양보를 하고 약자인 가계 차입자를 보호하자는 정책은 있을 수 있지만 경제학적 관점에서는 차주에게 중도상환권이 무료로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해외 대부분의 국가도 대출금의 중도상환수수료가 있다. 다만 은행이 입은 손해 이상으로 부과돼 차주가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상한선을 두고 있다.

최성현 한국금융연수원 명예교수의 ‘중도상환수수료의 정당성, 적정성 및 개선방안’ 연구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적격고정금리대출에 한해 중도상환수수료를 부과할 수 있고 수수료율은 2년 이내 상환 시 2%, 3년차 상환 시 1%를 각각 초과할 수 없다. 스페인은 중도상환 ‘보상금’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데 고정금리·변동금리 모두 5년 이내 상환 시 0.5%, 5년 이후에는 0.25%를 각각 초과해서는 안 된다. 일본도 상환액의 0.5~2.0%의 중도상환수수료율을 적용하고 있다.

국내 은행들은 은행여신거래 기본약관에 따라 대출 후 3년 이내의 중도상환에 한해 ‘상환액×수수료율×(잔존일수/대출기간)’ 산정방식에 따라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은행별 수수료율은 담보대출 기준 1.2~1.5% 수준이다. 수수료율이 1.5%라면 차주는 1년이 지난 후에는 상환액의 1.0%, 2년 후에는 0.5%만큼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최 명예교수는 “국내 중도상환수수료율이 외국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중도상환수수료 산정방식이 담보대출과 신용대출, 고정금리대출과 변동금리대출의 차이를 반영하지 못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출 계약을 체결할 때부터 차주가 중도상환할 수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상품을 분리하는 방안도 제기된다.

빈기범 교수는 “현재는 거의 모든 은행 대출이 차주의 조기상환권을 허용하고 있는데 중도상환수수료 자체를 없애는 대신 조기상환권이 가능한 대출 금리는 높게, 그렇지 않은 상품은 낮게 적용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카드사에서 받는 장기카드대출(카드론)은 중도상환수수료가 없다. 신용카드 개인회원 표준약관도 “상환기간이 끝나기 전에 카드론을 상환할 수 있다. 다만 대출당일에 상환할 경우에는 1일의 정상이자가 부과될 수 있다”는 규정만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은행권 등의 담보대출처럼 심사가 복잡해 비용이 발생하는 상품이 아니고 금리도 12~13% 내외의 고금리인 데다가 차주가 통상 1~2년 정도면 갚기 때문에 카드론에 별도의 중도상환수수료는 부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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