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거장들’ 특별기고

(3)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 함마허의 안목과 컬렉션

정준모(큐레이터,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예술의전당에서 개최 중인 ‘초현실주의 거장들’ 전의 작품들은 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초현실주의 작품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있는 이 미술관의 가장 대표적 컬렉션이다. 초현실주의 운동은 프랑스 작가 앙드레 브르통(1896~1966)에게서 비롯됐다. 그는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문’에서 예술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초현실주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쳤다. 초현실주의는 자신의 진정한 생각을 발견하고, 그것을 말이나 이미지로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잠재의식 즉 꿈이나 무의식, 광기에 주목했고, 이를 인간 정신의 자유로운 발로라 여겼다. 초현실주의란 ‘내 안에 (또 다른) 나 있다’란 말로 규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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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통은 예술가들이 스스로 무의식에 접근함으로써 이성과 합리성을 우회하고, 또 다른 실체에 다가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성 통제를 받지 않는 무의식 상태나 미학이나 윤리의 통제를 받지 않는 순수한 원시적 상태에 도달하려고 했다. 선입견·고정관념 없는 상태에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 인간의 의식 아래에 존재하는 원시적 무의식의 세계에 이르려고 했다. 예술가들은 모든 것을 의식하지 않은 채 창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자동기술법’에 크게 의존했다. 의식 세계가 아닌 무의식 세계를 탐구하는 초현실주의 시기를 두고 ‘수면의 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르네 마그리트, 붉은 모델 Ⅲ, 1937, 캔버스에 유채, 183 × 136㎝ ⓒ Rene Magritte,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르네 마그리트, 붉은 모델 Ⅲ, 1937, 캔버스에 유채, 183 × 136㎝ ⓒ Rene Magritte,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이런 초현실주의에 가담했던 작가로는 막스 에른스트(1891~1976), 앙드레 마송(1896~1987), 호안 미로(1893~1983), 만 레이(1890~1976) 등이다. 그룹에 참여하지 않은 파블로 피카소(1881~1973), 폴 클레(1879~1940), 이브 탕기(1900~1955), 살바도르 달리(1904~1989), 알레르토 자코메티(1901~1966) 등이 그룹 밖에서 세를 보탰다.

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의 초현실주의에 대한 관심은 현대미술부 큐레이터로 1962년부터 1978년까지 16년을 일한 레닐데 함마허(1913~2014)에게서 시작됐다. 미술관은 1965년 함마허의 제안으로 에른스트와 마그리트(1898~1967)의 작품 수집을 시작했다. 1967년 마그리트의 첫 유럽 회고전이 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에서 열린 것도 우연은 아니다. 이 전시회는 첫 번째 초현실주의 전시였다.

함마허는 1970년 겨울 달리의 회고전을 조직했다. 당시 네덜란드 관객들은 브르통이 왜 달리를 ‘달러 추종자(Avida Dollars)’라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초현실주의도 충분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전시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오프닝에 달리가 참석한 것도 화제였다. 수천의 관객들이 전시회를 보려고 추운 날씨에 줄을 섰다. 두 달 동안 약 20만 관객을 모았다.

살바도르 달리, 아프리카의 인상, 1938, 캔버스에 유채, 91.5 × 117.5㎝ ⓒ Salvador Dali, Fundacio Gala-Salvador Dali - SACK, Seoul, 2021

살바도르 달리, 아프리카의 인상, 1938, 캔버스에 유채, 91.5 × 117.5㎝ ⓒ Salvador Dali, Fundacio Gala-Salvador Dali - SACK, Seoul, 2021

미술관은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작품 15점을 소장하고 있다. 마그리트는 특히 ‘일상의 신비’를 보여주려 했다. 일상 환경과 사물을 분리시켜 서로 낯선 것들을 병치시키는 데페이즈망 기법을 통해 관객이 상상할 수 있는 픽션을 넘어서 픽션을 사실화하려 했다.

미술관이 소장한 마그리트와 달리 작품 12점은 1930년대 두 예술가의 후원자이자 은인이기도 했던 영국의 시인 에드워드 제임스(1907~1984)의 컬렉션에서 왔다. 이번 서울 전시에 출품된 제임스의 뒷모습을 그린 ‘금지된 재현’(1937)이나 맨발이 신발로 변하는 모습을 그린 ‘붉은 모델Ⅲ’(1937), ‘젊은 시절의 그림’(1937) 등이 그것이다. 1970년대 초 소장가로부터 대여한 작품을 인수해 소장하게 됐다. 미술관은 초현실주의 작품을 다양화하고, 맥락을 만들기 위해 2016년 마그리트 초기 작업을 모은 전시를 기획한다. 이 과정에서 1928년 작 ‘살아있는 거울’을 모금을 통해 소장한다. 미술관 명성은 이렇게 끊임없이 컬렉션을 보강하고, 완성도를 높이는 데서 나온다.

2005년 달리의 ‘입술소파’(1938), 2007년 탕기의 ‘분홍 구름이 있는 풍경’(1928), 2009년 조셉 코넬(1903~1972)의 ‘그림자 상자’를 소장했다.

미술관은 초현실주의 전문 컬렉션을 갖추도록 노력한 업적을 기려 함마허 탄생 100주년에 그의 컬렉션을 바탕으로 전시를 기획했다. 새로 개관한 수장고 디팟 옥상에 개관한 레스토랑에 그의 이름을 붙여주었다.미술관의 초현실주의 컬렉션은 회화 작품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을 비롯한 관련 문헌, 전시도록, 팸플릿, 브로슈어, 선언문, 사진자료, 작가들의 비망록과 스케치 같은 시시콜콜한 자료까지 망라된 2차 문헌 자료 아카이브가 있어 컬렉션은 더 빛을 발한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내년 3월6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엔 이 컬렉션 대부분이 왔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김기남 기자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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