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기획(2) 나비가 아무도 모르게 산을 오른다

한라산 산굴뚝나비, 더위에 삶터 잃어…해발 1700m 이상으로 피신

강한들 기자
2022년 겨울, 전국적으로 발생한 꿀벌 실종 사건은 ‘미스터리’가 아닌 악재에 악재가 겹친 복합 재난의 결과였다. 사라지고 있는 것은 꿀벌뿐일까. 꿀벌기획 마지막 편은 제주 아고산대에서만 사는 멸종위기종 산굴뚝나비의 ‘조용한 등산’을 다룬다. 제주도 한라산 아고산대에서만 서식하는 이 나비는 기후변화로 서식지 기온이 상승하자 조금이라도 기온이 낮은 곳을 찾아 점점 더 산 위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기온이 계속 올라 서식 공간이 줄어든다면, 산굴뚝나비 역시 꿀벌처럼 자취를 감추게 될지도 모른다.

제주 한라산의 한 바위에 앉아서 쉬고 있는 산굴뚝나비. 산굴뚝나비는 자신의 날개 문양과 비슷한 땅이나 바위 등에서 쉬는 것을 즐긴다. 생물보전연구소 제공 사진 크게보기

제주 한라산의 한 바위에 앉아서 쉬고 있는 산굴뚝나비. 산굴뚝나비는 자신의 날개 문양과 비슷한 땅이나 바위 등에서 쉬는 것을 즐긴다. 생물보전연구소 제공

지난달 29일 한라산 해발 고도 약 1000m 어리목 광장. 아래로는 제주조릿대가 땅도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하게 자라 있었다. 한라산 자생식물인 제주조릿대는 왕성한 번식력으로 다른 식물들의 생육을 막는다. 침엽수림이 시작되는 해발 1400m에도 제주조릿대는 여전히 땅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해발 1500m가 되자 비로소 제주조릿대 사이로 듬성듬성 다른 풀과 땅이 보이며 넓은 들판이 펼쳐졌다. 공기는 부쩍 차가워졌다. 한라산 윗세오름 초입이다. 이곳은 10년 전까지만 해도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인 산굴뚝나비가 관찰되기 시작했던 지점이다. 하지만 현재 이곳에서 산굴뚝나비를 찾기는 쉽지 않다. 나비를 만나기 위해선 해발 1700m 이상 올라야만 한다. 왜 산굴뚝나비는 더 높이 올라간 것일까.

서늘한 아고산대 찾아온 나비
1969년 1300~1400m부터 관찰
2013년엔 1500m에서 관찰 시작

■ 한라산에 갇혀버린 나비

서늘한 곳을 좋아하는 산굴뚝나비는 남한에서는 한라산 아고산대 초지에서 살기 시작, 지금도 이 지역에서만 서식한다. 아고산대는 저산대와 고산대 사이로, 기온이 낮아 주로 침엽수가 분포하는 곳이다. 한반도로 범위를 넓혀봐도 다른 서식지는 북한 함경도, 양강도 지역 정도다.

산굴뚝나비는 한라산에서도 7~8월 두 달만 볼 수 있다. 한반도 전역에 분포하는 호랑나비는 알에서 깨어나 애벌레를 거쳐 나비로 태어나 다시 알을 낳는 과정을 1년에 2~3번 정도 반복하는 다화성 나비다. 하지만 산굴뚝나비는 1년에 단 한 번만 그 과정을 거치는 일화성 나비다. 산굴뚝나비의 알은 한라산의 여름이 다 가기 전에 깨어나 겨울을 나기 위해 열심히 먹이를 먹는다. 1년 중 대부분의 시간은 애벌레로 보낸다. 주된 먹이 식물은 벼과 식물인 ‘김의털’이다. 먹이를 먹고 2~3령 애벌레로 자란 시점이 되면 한라산의 날씨가 추워진다. 애벌레는 이때부터 땅속, 식물의 잎 사이, 돌틈 사이 등으로 숨어 겨울을 견뎌낸다. 이듬해 5월, 온도가 높아지면 나비가 될 준비를 한다. 산굴뚝나비는 7~8월 사이 번데기를 거쳐 7월 중순에서 8월 사이 10여일간 나비로서의 삶을 산다.

일반적으로 나비는 날씨가 더워지면 위도가 높은 지역으로 이동하며 자신에게 적절한 기후대를 찾는다. 하지만 한라산 아고산대에서만 서식해온 산굴뚝나비는 다른 나비들처럼 지역을 이동해 새로운 기후대를 찾기 어렵다. 한라산 안에 갇혀있는 셈이다. 살아남으려면 한라산 안에서 맞는 온도를 찾아야 한다. 결국 산굴뚝나비가 점점 더 높은 곳을 향해 이동하는 이유는 온난화로 인해 한라산 아고산대의 기온이 높아지면서, 예전처럼 살기 좋은 서식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영숙 한라산국립공원 주무관은 “산굴뚝나비는 7월 보름에서 20일 정도에는 1700m 높이 정도에서 보이고, 8월로 넘어가면 장구목 오름(1813m)에서 보인다”며 “8월15일이 넘어가면 백록담 근처에서만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경향은 연구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2013·2015·2016년 진행된 ‘멸종위기종 산굴뚝나비의 종 및 서식지 보전·복원연구’를 보면 월별 나비의 이동 변화가 뚜렷하다. 연구는 2015년에 나비에 특별한 표시를 해서 다시 잡히는 위치를 분석해 검은 선으로 7월, 붉은 선으로 8월의 이동 경로를 표시했다. 그러자 특히 수컷 나비의 8월 이동경로가 7월보다 유독 고도가 높고 서늘한 지역에 집중돼 있는 것이 확인됐다. 연구를 진행한 김도성 생물보전연구소장은 “8월이 되니 수컷 나비가 더워서 점점 활동 온도대에 맞춰서 올라가는 게 보인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산굴뚝나비가 출현하는 시작점 자체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1969년 문헌에서는 해발 1300~1400m에서 산굴뚝나비가 관찰됐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2013년 김 소장이 연구를 시작할 때 나비가 관찰되기 시작한 곳은 해발 약 1500m 지점부터였다. 당시 나비는 약 50개체 미만이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상대적으로 고도가 낮은 지역에서 개체 밀도가 점점 줄어드는 경향이 관찰됐다. 2016년에 관찰된 나비 수는 20개체 이하였다. 지난해 진행된 멸종위기 곤충 조사에서는 산굴뚝나비가 해발 1500m 지점에서 아예 사라졌다. 김 소장은 “1500m 고지에서 나비가 출현하는 시점에 맞춰 현장을 찾았는데도 나비가 관찰되지 않았다”며 “1500m 고지에 살던 개체군은 사라졌다고 단언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제 산굴뚝나비는 해발 1650m의 윗세오름에서부터 발견된다. 이 지역은 김 소장의 연구에서 산굴뚝나비 분포지 변화관찰을 위해 모니터링할 것을 제안한 곳으로, 위험-경고-심각 세 단계 중 ‘경고’ 단계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는 장소다. 윗세오름에서 100개체 이하로 나타나면 ‘경고’ 수준으로 본다. 이 단계가 되면 보전 대책 수립이 필요하고, 개체군 감소 원인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난해 현장 조사에서는 윗세오름 초입에서는 아예 나비가 발견되지 않았고,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5개체가 확인되는 등 크게 줄어 있었다. 이제 산굴뚝나비의 주 서식지는 장구목, 남벽, 백록담 총 세 군데밖에 남지 않았다. 모두 해발 1700m 이상 지점이다.

제주 한라산 해발 1200m 지역이 지난달 29일 제주조릿대로 가득 차있다. 강한들 기자

제주 한라산 해발 1200m 지역이 지난달 29일 제주조릿대로 가득 차있다. 강한들 기자

이상고온·폭염 겹쳐 폐사율 높고
자생식물 제주조릿대 영향으로
먹이이자 삶터인 ‘김의털’도 줄어

■ 사라지는 먹이식물에 이상고온까지

현장 연구자들은 산굴뚝나비의 개체 수가 10년 전에 비해 10~20%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느끼고 있다. 이영돈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 녹지연구사는 “2013년에는 나비가 가장 많은 8월10일경에 날씨가 좋으면 장구목에서 1000마리 정도 보였다. 지금은 제일 많이 나오는 날 가도 많아야 100~200마리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기후변화와 떼놓고 설명할 수 없다. 김도성 소장은 2016년 산굴뚝나비 개체 수가 감소하는 이유 중 하나를 2016년 봄의 고온과 7~8월 폭염의 영향으로 분석했다. 그해 윗세오름과 한라산 정상에서는 한낮 최고기온이 40도까지 상승한 때도 있었다. 김 소장은 “산굴뚝나비는 6~7월에 번데기 상태가 되고 7~8월에 산란을 하는데, 이상고온 현상이 심하게 나타나 적응 범위를 벗어나면 폐사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산굴뚝나비의 먹이식물이자 삶터인 ‘김의털’의 감소도 나비 개체 수 감소에 영향을 준다. 산굴뚝나비의 애벌레는 김의털을 위쪽에서부터 먹으며 내려와 먹이를 다 먹고 난 뒤에는 김의털의 뿌리 쪽에 숨어 천적을 피한다. 번데기가 될 때도 김의털 사이나 토양층 등에 자리를 잡고, 나비가 돼서도 김의털 근처에서 쉬곤 한다. 산굴뚝나비는 알을 낳을 때 마른 김의털 사이에 낳는다. 알의 색이 마른 풀과 비슷하고, 애벌레가 태어난 후에도 바로 식물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의털과 산굴뚝나비는 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하지만 이름의 유래가 ‘김씨 성을 가진 이의 털’일 정도로 흔한 풀이었던 김의털은 한라산에서는 분포 범위가 줄어들고 있다. 빠르게 확장하는 제주조릿대 때문이다. 제주조릿대는 잎이 넓고 빽빽하게 자란다. 김의털처럼 제주조릿대에 비해 키가 작은 식물은 제주조릿대 밑에서는 햇빛을 못 받아 제대로 자라기 어렵다. 이영돈 연구사는 “10년 전에 비해 김의털이 20% 정도 줄어든 것 같다”며 “산굴뚝나비는 날다가 앉는 습성이 있는데, 제주조릿대에는 잘 앉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제주조릿대 때문에 피해를 보는 건 다른 식물도 마찬가지다. 제주에 많이 살았던 손바닥난초, 한라송이풀, 제주달구지풀 등도 자랄 땅을 잃었다. 김영숙 주무관은 “2017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어승생악 오름이 가장 체감이 크다. 올라가는 탐방로에 제주조릿대가 늘어나 야생화가 거의 안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어리목 탐방로가 시작하는 해발 1000m 지점부터 약 1700m 지점까지 제주조릿대가 가득했다. 한라산 남사면의 영실탐방로도 마찬가지였다. 한라산연구부에 따르면 이미 한라산 아고산 지역의 88.3%를 제주조릿대가 차지하고 있다.

한상곤 한라산국립공원 주무관이 지난달 29일 한라산 중턱에서 ‘김의털’을 설명하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 날 낮 12시쯤 제주조릿대로 가득한 한라산 해발 1500m 지점 기온이 17.5도를 보이고 있다(가운데 사진). 산굴뚝나비의 이동경로를 보면 7월(검은 선)보다 더 더워지는 8월(붉은 선)에 이동이 집중되는 지역의 고도가 약 150m 더 높다(오른쪽사진).  강한들 기자

한상곤 한라산국립공원 주무관이 지난달 29일 한라산 중턱에서 ‘김의털’을 설명하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 날 낮 12시쯤 제주조릿대로 가득한 한라산 해발 1500m 지점 기온이 17.5도를 보이고 있다(가운데 사진). 산굴뚝나비의 이동경로를 보면 7월(검은 선)보다 더 더워지는 8월(붉은 선)에 이동이 집중되는 지역의 고도가 약 150m 더 높다(오른쪽사진). 강한들 기자

작년 1650m서 겨우 5개체 확인
멸종위기 ‘경고’ 단계 수준
서식지 장구목·남벽·백록담뿐

■ 어떤 생물도 건강할 수 없다

김도성 소장은 앞으로 산굴뚝나비가 1700m 이하에서 남지 않는 데에 10년 이상 걸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산굴뚝나비가 남한에서 아예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선 산굴뚝나비에게 ‘적응 훈련’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했다. 북방 계열 나비인 큰주홍부전나비는 과거 북한 지역에만 있었으나, 1997년에는 수도권까지 내려왔고 지금은 전국에 살고 있다. 김 소장은 “북방 계열 나비는 기후변화로 점점 위쪽 지방으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됐으나 체질이 변한 것”이라며 “산굴뚝나비도 적어도 5년 동안은 해발 1500m 정도로 이주시켜 정착시키는 실험을 시도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산굴뚝나비의 수난은 한라산 아고산대에 서식하는 구상나무가 겪는 일과도 비슷하다. 구상나무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아고산대에서 서식한다. 지리산과 한라산 등이 주요 서식지다.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구상나무의 분포 변화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구상나무의 분포 면적은 606㏊로, 2017년 대비 5% 감소했다. 또 국립산림과학원이 2019년 8월 발표한 멸종위기 고산 침엽수종 실태조사에서 구상나무의 고사목 발생 현황과 생육목의 건강도를 분석한 결과, 구상나무는 한라산에서 39%의 쇠퇴도를 보였다. 제주조릿대도 구상나무에 악영향을 미친다. 김종갑 한라산연구부 녹지연구사는 “제주조릿대 뿌리가 수세미 같은 형태”라며 “그 사이에서 어린 구상나무 씨앗이 잘 성장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이영돈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 녹지연구사(왼쪽)와 김도성 생물보전연구소 소장이 산굴뚝나비의 서식지 이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이영돈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 녹지연구사(왼쪽)와 김도성 생물보전연구소 소장이 산굴뚝나비의 서식지 이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이주 정착실험 등 시도 필요
만약 사라진다면 기후변화로
특정 종 사라지는 것 확인돼

곤충은 변온동물이라 기후변화에 민감하다. 특히 나비는 기후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파악하기 위한 생물종으로 적합하다. 농촌진흥청은 2017년 ‘농업부문 기후변화 지표생물 30종’을 선정하며 남방노랑나비, 배추흰나비, 호랑나비, 노랑나비 등 4종의 나비를 포함시켰다. 산굴뚝나비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상훈 국립생태원 생태정보팀장은 “먹이그물 차원에서 보면 식물이 1차 생산자이고, 곤충이 식물을 먹고 양서류, 파충류, 조류, 맹금류 등 최상위 포식자가 있다”며 “한 종이 사라지면 연쇄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세웅 목포대 환경교육과 교수는 “산굴뚝나비가 사라진다면 우리나라에서 한 종 자체가 없어지는 국지적 멸종”이라며 “기후변화로 인해 특정 종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시리즈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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