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부가 ‘흰 코끼리’에 집착하는 까닭은

김서영 기자
미얀마 군부가 지난 3일(현지시간) 공개한 흰 코끼리. 지난달 미얀마 여카잉주에서 태어났다. AFP연합뉴스

미얀마 군부가 지난 3일(현지시간) 공개한 흰 코끼리. 지난달 미얀마 여카잉주에서 태어났다. AFP연합뉴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지 1년 7개월이 된 미얀마 군부가 정통성 확보 수단으로 흰 코끼리를 동원하고 있다.

미얀마 현지 언론들은 8일 미얀마 군부가 지난 3일 태어난 지 열흘 된 아기 흰 코끼리 사진을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이 흰 코끼리는 미얀마 서부 여카잉주에서 지난달 23일 포획상태로 태어난 수컷이다. 33살 어미에게서 태어났으며 몸무게는 약 80kg이다.

미얀마 관영 매체 ‘글로벌 뉴라이트 오브 미얀마’는 이 코끼리가 진주 빛깔의 눈, 흰 털, 부드러운 적갈색 피부, 큰 귀 등 ‘흰 코끼리의 조건’ 8가지 중 7개를 충족한다고 설명했다. 이 매체는 기존에 발견된 흰 코끼리 9마리 중 오직 한 마리만이 7가지 조건에 해당하고 나머지 8마리는 6개밖에 충족시키지 못했다면서 이번 코끼리의 의의를 강조했다. 코끼리 사진은 이 신문 1면에 실렸으며, 국영TV 또한 이 코끼리가 어미를 따라다니고 밥을 먹는 모습 등을 보도했다.

미얀마 군부가 이처럼 흰 코끼리를 내세운 데에는 이유가 있다. 불교 인구가 다수인 미얀마에서 흰 코끼리는 그 자체로 귀한 동물로 여겨진다. 현지 매체 이라와디는 “전통적으로 흰 코끼리는 매우 상서로운 동물이었으며, 전통시대 군주들은 자신들의 행운을 위해 흰 코끼리를 가능한 한 많이 소유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또한 과거 군주들이 ‘흰 코끼리의 주인’이라는 칭호에 집착을 보였는데, 이는 그들이 소유한 흰 코끼리의 수가 그들의 우월성이나 국가의 번영을 상징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매체는 설명했다. 예를 들어 흰 코끼리가 발견되면 훌륭한 통치자 덕에 나라에 길조가 들었다고 여기는 식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과거 군부 독재자들은 정통성 확보를 위해 흰 코끼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흰 코끼리를 처음 정치적으로 이용한 인물인 딴쉐 장군이 “흰 코끼리는 왕과 정부가 나라를 잘 통치할 경우 나타나며 국가에 좋은 징조”라고 발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흰 코끼리를 홍보에 활용하는 걸 넘어서 적극적으로 숭상하기도 했다. 이라와디는 “일설에는 딴쉐 장군이 군부 전용 비행기를 흰색으로 칠한 뒤 이름을 ‘흰 코끼리’로 지었다고도 한다”고 전했다. 킨늉 장군은 흰 코끼리에게 이름과 음식을 바치는 의식을 주관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관영매체는 흰 코끼리가 현 군부 지도자 민 아웅 흘라잉 장군의 덕과 리더십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군부독재에 항거한 8888항쟁 34주년을 맞은 8일(현지시간) 미얀마 양곤에서 시민들이 ‘8’이 적힌 우산 4개를 나란히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군부독재에 항거한 8888항쟁 34주년을 맞은 8일(현지시간) 미얀마 양곤에서 시민들이 ‘8’이 적힌 우산 4개를 나란히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라와디는 “민주 정부 시기 발견·포획된 흰 코끼리는 한 마리도 없는 반면 군부 집권 하에선 이번까지 총 10마리가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얀마 국민에게 흰 코끼리는 단지 특이한 피부색을 가진 코끼리일 뿐 그 이상도 아니다”면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국민이 코끼리를 숭상하는 이들에게 지배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밖에도 현 군부는 파고다(불탑) 건립, 루비 홍보 등 이전 군부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벌였던 전적을 따라가고 있다. 군부는 지난달 7일 거대한 루비가 발견돼 이를 현 군부 통치체인 국가행정위원회(SAC)로 이름 지었다고 발표했다. 민 아웅 흘라잉 장군은 수도 네피도에 세계에서 가장 큰 불상을 짓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주 캄보디아에서 열린 아세안 외교장관회의에 초대받지 못했으며, 국내적으론 지속적인 저항에 맞부딪힌 상황이다. 아울러 제재와 기후변화, 고물가 등으로 미얀마에서 식량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이라와디는 “민 아웅 흘라잉은 흰 코끼리가 국제사회와 경기침체 압박으로부터 관심을 돌려주길 바랄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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