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주 32시간 근무하다 숨진 증권사 직원 ‘업무상재해’ 인정···왜

박용필 기자
서울행정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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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근로시간을 넘지 않았다는 기록, 사망원인과 업무 사이의 관련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는다는 전문가 소견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사망한 증권사 직원에 대해 업무상재해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근로시간 기록 대신 실적을 기준으로 과로 여부를 판단했는데, 업무가 발병 원인은 아니더라도 병의 악화에 영향을 끼쳤을 개연성이 크다면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제7부(재판장 정상규)는 A씨의 유족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등 부지급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지난 15일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1일 밝혔다.

한 증권사 부지점장으로 근무하던 A씨는 2020년 10월 12일 경련과 구토, 팔다리 마비증세로 병원에 실려가 지주막하 뇌출혈 진단을 받았다. 치료 후 상태가 다소 호전됐으나 일주일 뒤 사망했다.

A씨의 유족은 A씨의 사망이 ‘업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로 인한 재해’라며 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으나 공단은 거부했다. 이에 유족은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공단이 산정한 A씨의 근로시간은 발병 전 1주간 32시간, 발병 전 4주간 평균 30시간, 발병 전 12주간 평균 32시간이었다. 법정근로시간인 40시간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질병의 과로 및 스트레스 인정기준에 따르면, 발병 1주일 이내의 업무량이나 시간이 발병 전 12주 간(발병 전 1주 제외) 평균보다 30% 이상 많아야 하는데, 이 기준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법원 감정의는 A씨의 사인은 ‘지주막하 뇌출혈’로 인한 패혈증이며, 지주막하 뇌출혈이 발생한 명확한 위험인자는 ‘흡연’이라는 감정 결과를 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의 사망을 업무상재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 업무의 특성상 고객들과의 전화통화, 문자메시지 수·발신 등을 통해 수시로 업무를 처리한 것으로 보이고, 실제 A씨가 병원에 입원한 이후에도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고 주식 매수와 관련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으로 업무를 지속했다”며 “공단이 출퇴근 시간 등을 근거로 산정한 근무시간은 실제 근로시간을 정확하게 반영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망하기 전 A씨의 성과급과 실적이 크게 오른 점을 근거로 업무량이 급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공단이 산정한 근로시간이 고용노동부 고시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과로 가능성을 배제한 데 대해 “해당 고시는 과로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서 하나의 고려요소일 뿐 절대적 판단 기준은 아니다”라고 했다.

흡연을 지주막하 뇌출혈의 위험인자로 판단한 감정의 소견에 대해서도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적어도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에 겹쳐서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켰다면 인과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그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그 증명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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