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장벽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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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 김보미(전국사회부) 배문규·김한솔·김지혜(스포트라이트부)

‘여성 노동자 일터 내 화장실 이용 실태 및 건강영향 연구’(2021)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지난해 3월 펴낸 보고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여성국의 의뢰로 시작된 이 보고서는 학교 비정규직과 백화점·면세점 판매직, 고객센터 상담직, 건설 노동자, 학습지 교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성 노동자들이 일터에서의 화장실 이용에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다각도로 분석했다. 보고서는 “그동안 화장실은 주요 작업환경과 조건이자 여성 노동자의 건강과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문제화’ 되지 못했다”며 화장실이 건강권 문제이며, 중요한 노동조건이라는 사회적 인식 개선 변화와 함께 법제도 개선도 필요하다고 했다.

‘화장실 보고서’ 연구책임자인 김규연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와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를 인터뷰했다.

김규연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화장실 보고서’ 연구책임자인 김규연 전문의. 그는 현재 보건관리대행 전문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사업장 내 보건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가 어떤지 살피는 일을 한다. 성동훈 기자

‘화장실 보고서’ 연구책임자인 김규연 전문의. 그는 현재 보건관리대행 전문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사업장 내 보건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가 어떤지 살피는 일을 한다. 성동훈 기자

- ‘화장실 보고서’ 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김규연(이하 김) = 사실 인턴 때 저도 방광염에 걸린 적이 있어요. (바빠서) 장시간 물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니까 어느날 소변이 벽돌색으로 나왔어요. 놀라서 주변에 이야기를 했더니 대수롭지 않게 ‘그거 나도 걸렸었어, 약 먹으면 나아’ 라고 하는거예요. 그 반응에 더 충격 받았어요. 우리는 사업주랑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보상으로 임금을 받기로’ 계약을 하잖아요. 거기에 내 건강을 해치겠다는 내용은 없거든요. 그런데 ‘일 바쁘게 하다보면 방광염 걸리지’ 라면서 자기 건강권이 침해되는 것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지경이 되었다는게 충격적이었어요. 그 이후에 여성 노동자의 특수성에 대해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고민했죠. 마침 민주노총이 여성 방광염 문제를 다뤄보자고 제안했고, 그걸 넓혀서 화장실 전반을 다뤄보게 됐어요.

- 연구를 하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김 = 중간중간에 ‘내가 이 문제를 좀 쉽게 생각했구나’ 하고 반성했어요. 제가 겪었던 것처럼 화장실 갈 시간이 없어서, 아니면 시설이 없어서 못 간다고만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단순히 공간이 있고 없고 뿐만이 아니라 공간 이용에 문화적, 차별적 요소들이 많이 섞여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 화장실을 안 가려고 ‘물 안 마시기’를 택하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건강에 어떤 영향이 있나요.

김 = 비뇨기계 증상으로는 방광염입니다. 소변이 방광 안에서 저류하는 시간이 길수록 걸릴 위험이 커지죠. 물을 자주 마셔 소변 배출을 해야 위험도가 낮아집니다. 배뇨통, 빈뇨도 방광염 관련 증상이에요. 가임기 여성은 월경을 하잖아요. 젖은 생리대로 인해 외음부에 습한 환경이 지속되면 세균이 번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러다 보면 피부에 발진이나 질염에 걸리기 쉽습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기립성 저혈압’이 있는 분들이 많은데, 그 자체는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혈압이 낮은 분들이 물도 많이 못 먹고 여름에 땀을 많이 흘리면 머리가 핑핑 돌고 어지러울 수 있어요.

[투명장벽의 도시③]“저도 인턴 때 방광염 있었는데…” 일터 화장실을 바꾸는 법

- 성인 기준 하루에 물을 얼마나 마셔야 하나요.

김 =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을 찾아보니 1.5~2ℓ 정도를 섭취하라고 돼있어요. 몸에서 매일 빠져나가는 소변, 땀, 호흡할 때 나가는 수분, 우리가 모르게 피부로 빠져나가는 수분이 대략 2~2.5ℓ 라고 보기 때문에 최소 1.5~2ℓ를 섭취해야 한다는 거죠. 종이컵 한 잔이 한 200㎖ 정도라고 본다면 7~10잔 정도는 드셔야합니다.

- 일하는 동안에 물을 전혀 안 마시다가, 집에 와서 1.5ℓ를 한꺼번에 마셔도 되나요.

김 = 아주 규칙적일 것까진 없지만, 공복 시에 물을 마시는 등 어느 정도 주기가 있어야 돼요. 밥도 한 번에 몰아서 먹으면 안 좋은 것처럼, (물도 한번에 마시면) 위에 부담이 될 수 있어요. 물 권장량을 다 채운다고 될 일은 아니에요. 내가 원할 때, 꾸준히 마시는 게 중요합니다.

- 화장실 관련 연구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김 = 화장실 이용이 굉장히 사적인 것, 때로는 사소한 것, 터부시되는 경향까지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공론화가 되지 못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너도나도 방광염을 앓고 있으면서도 서로 모르고 있었던 거죠.

지난달 초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규연 전문의. 그 자신도 인턴 때 장시간 근무를 하다 방광염에 걸린 적이 있다. “여자 동기들한테 ‘나 방광염 걸렸어’ 그랬더니 ‘그거 나도 며칠 전에 걸렸어. 어디가서 어떻게 약 처방 받으면 돼’ 라고 알려주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이미 몇 명이 걸렸더라고요. ‘그거 그럴 수 있어, 약 빨리 먹어’ 정도의 반응이지‘ 어떻게 일하다가 그렇게 되니?’ 라는 반응은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성동훈 기자

지난달 초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규연 전문의. 그 자신도 인턴 때 장시간 근무를 하다 방광염에 걸린 적이 있다. “여자 동기들한테 ‘나 방광염 걸렸어’ 그랬더니 ‘그거 나도 며칠 전에 걸렸어. 어디가서 어떻게 약 처방 받으면 돼’ 라고 알려주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이미 몇 명이 걸렸더라고요. ‘그거 그럴 수 있어, 약 빨리 먹어’ 정도의 반응이지‘ 어떻게 일하다가 그렇게 되니?’ 라는 반응은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성동훈 기자

- 누군가는 이 문제에 대해 ‘힘들겠지만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딨어, 어쩔 수 없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김 = 두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요. 하나는 나는 사업주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기로 계약을 했고, 그럼 사업주는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제공받기 위해 노동 환경을 보장해야 해요. 그게 사업주에게도 이익이죠. 내가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내 건강 상태가 괜찮아야 해요. 내 건강이 괜찮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일을 시켜야 해요. 그래서 ‘나를 잘 쓰고 싶으면 나에게 최상의 환경을 줘라’ 라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예전에는 ‘휴게실’이라는 공간도 잘 없었어요. 제가 2015년도에 환경미화원 연구를 할 때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올해 8월부터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으로 휴게시설 마련이 제도화됐어요. 의무화된 거죠. 세부규정에 휴게실 위치, 크기, 조도, 소음, 마감재까지 들어가 있어요. 사업장들은 ‘공간도 없는데 휴게시설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고 하지만, 법적으로 의무화가 되면 어떻게든 마련합니다. (화장실 문제도) 법적으로 드라이브를 걸면 한두개씩 개선이 되다가, 언젠가는 문화로도 자리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2003년 출범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삶이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노동자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연구 등을 꾸준히 진행해 오고 있는 곳이다. 성동훈 기자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2003년 출범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삶이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노동자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연구 등을 꾸준히 진행해 오고 있는 곳이다. 성동훈 기자

- 화장실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이나래(이하 이) = 우연이었어요. 2017년에 건설현장의 노동강도를 평가하는 사업을 했어요. 큰 아파트 공사현장에 방문 조사를 갔는데,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어요. 원청 직원이 나와서 안내를 하는데 바로 옆에 있는 이동식 화장실 대신 ‘원청 화장실’로 안내를 하는거예요. 왜 거기로 가라고 할까 생각했죠. 그때는 노동강도 평가 사업이어서 더 많은 고민을 하진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화장실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어요.

- 일터의 화장실은 왜 노동환경으로 인식되지 못할까요.

이 = 저희도 연구하면서 그런 토론을 많이 했어요. 제 생각에 사업주는 아직 화장실을 생산력을 담보하는데 중요한 시설로 인식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제조업 현장에서의 컨베이어벨트, 마트에서의 무인 판매대 같은 것은 잘 설계돼 있잖아요. 그런데 화장실은 어떤 형태로 설계돼 있건 노동자들이 거기에 맞춰서 일을 보거든요. 그러니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강해요. 화장실 가는게 굉장히 개인적인 일이고, 사적인 공간이라고 치부하는 것과 맞물리면서 화장실이라는 공간을 노동과 분리시킨 것도 한 몫 하죠.

이나래 활동가는 ‘화장실 보고서’를 만들 때 고민됐던 점 중 하나는 연구 대상이 여성으로 한정된 것이었다고 했다. “여성의 일로만 이해되는 것에 대한 경계가 있었어요. 건설 현장, 이동 노동은 여성 뿐 아니라 남성들도 많이 종사하고 있잖아요. 여성에 비해 화장실 접근이 좀 쉽긴 하지만, 남성들 스스로도 부끄럽고 싫은 형태로 화장실 이용을 하거든요. ‘젠더 관점’으로 보는 일터가 ‘모두를 위한 노동 환경’을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들을 연구하면서 많이 고민하게 됐어요.” 성동훈 기자

이나래 활동가는 ‘화장실 보고서’를 만들 때 고민됐던 점 중 하나는 연구 대상이 여성으로 한정된 것이었다고 했다. “여성의 일로만 이해되는 것에 대한 경계가 있었어요. 건설 현장, 이동 노동은 여성 뿐 아니라 남성들도 많이 종사하고 있잖아요. 여성에 비해 화장실 접근이 좀 쉽긴 하지만, 남성들 스스로도 부끄럽고 싫은 형태로 화장실 이용을 하거든요. ‘젠더 관점’으로 보는 일터가 ‘모두를 위한 노동 환경’을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들을 연구하면서 많이 고민하게 됐어요.” 성동훈 기자

- 연구를 하면서 예상과 달랐던 결과가 나온 것이 있나요.

이 = 방광염이 많을 것이란 예상은 했었는데, 방광염 말고도 비뇨기, 생식기 관련 질환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어요. 병원 진단을 받진 않아도 ‘화장실 가고싶다’ 라는 생각을 하면 그 순간부터 참을 수 없게 소변이 마려워지는, 과민해지는 증상도 있었어요. 물 섭취를 못하니 입마름을 호소하는 분들도 많았어요. 정신건강 문제도 심각했어요. 화장실을 못 간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초조함으로 연결되더라고요. 약간 예상치 못했던 점은, ‘화장실을 못 갈 때 어떤 감정이 드는지’ 에 대한 노동자들의 답변이었어요. 단 한 명도 ‘화’ 라는 감정에 표시를 안 하더라고요. 화장실을 못 갈 때 왜 화를 내지 않고 ‘우울’로 갈까. 화를 낸다고 작업환경이 바뀌었던 경험이 너무 없어서,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있는 거예요.

- 해외 제도도 많이 찾아보셨을 텐데,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이 = 해외는 그 사회가 그런 기준을 정착시킬 수 있었던 정치경제적인 맥락들이 있었어요. 그런 면에서 ‘노동을 어떻게 존중한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차이가 난다는 생각을 했어요. 세부적인 기준이 있는 건 좋죠. 그런데 사업장마다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곳도 많을 거예요.사업주가 그걸 자기 책임으로 인식하고 문제를 개선하려면 노동자와 터놓고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해야돼요.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경직돼 있고, 여전히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해요. 그러다보니 화장실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가장 밑에 놓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해외 사례를 봤을 때 한국 사회는 ‘노동자가 어떻게 존중받으며 일할 것이냐’ 라는 원칙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니다.

화장실 찾아 전력질주? 직업별 화장실 이야기 | 투명장벽의 도시 ep2 | 경향신문 창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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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장벽의 도시③]“저도 인턴 때 방광염 있었는데…” 일터 화장실을 바꾸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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