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장벽의 도시
투명장벽의 도시

기획취재팀 | 김보미(전국사회부) 배문규·김한솔·김지혜(스포트라이트부)

실내 노동자들의 화장실 가는 길

학교 급식, 면세점·백화점, 콜센터 상담사 인터뷰

화장실이 많아도 사용하기 어렵거나

깨끗하고 좋은 화장실 있어도

심리적 압박·차별에 눈치보다 못 써

학교 급식 조리실무사

[투명장벽의 도시③]샤워·용변·세탁을 동시에…고객 화장실에선 ‘양치 금지’

김영애씨는 학교의 급식조리실무사다. 그가 일하는 공간은 학교다. 학교에는 화장실이 많지만, 모두가 편리한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김씨는 급식노동자들이 쓰는 화장실, 그리고 휴게공간은 ‘서로를 배려할 수 없게 만드는 공간’이라고 했다.

-지난해 9월까지 일했던 학교의 화장실 상태는 어땠나요.

김영애(이하 김) =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샤워하는 곳과 화장실(변기)이 붙어있었어요. 환기할 만한 창문은 없고 환풍기 하나만 달려 있었어요. 습하고 어둡고, 전기도 잘 나갔어요.

-화장실과 샤워실이 어떻게 붙어 있나요.

김 = 휴게실에 들어가면 신발 벗는 곳 옆에 문이 또 하나 있어요. 그 문 안에 화장실이 있는 거예요. 샤워실과 세탁실을 겸하고 있어요. 굉장히 복합적인 공간으로 화장실을 쓰고 있는 거예요. 그나마 그 학교는 샤워하는 공간에 칸막이를 했더라고요. 대부분의 학교들은 칸막이도 없어요. (샤워 부스는 몇 개인데요?) 샤워부스는... 샤워 꼭지 2개 정도.

-그럼 내가 볼 일을 볼 때 누가 옆에서 샤워를 할 수도 있는 건가요.

김 = 그렇죠. 심지어 양치질도 급하니까 그냥 해요. 그런 것들을 불편해하잖아요? 까탈스러운 사람 취급 받는거죠. 왜냐하면 너무 바쁘니까. 문 잠그고 볼일 보는 사람이 있으면 굉장히 불편하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를 배려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닌 거죠.

변기와 세면대, 세탁기, 샤워기가 한 공간에 들어가 있는 어느 학교의 급식노동자용 화장실. 김영애씨 제공

변기와 세면대, 세탁기, 샤워기가 한 공간에 들어가 있는 어느 학교의 급식노동자용 화장실. 김영애씨 제공

학교 급식조리실무사 김영애씨가 지난달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유진PD

학교 급식조리실무사 김영애씨가 지난달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유진PD

- 화장실에 있을 때 누가 들어와서 당황했던 경험도 있을 것 같아요.

김 = 그런걸 당황해하면 학교 급식실에서 일 못해요. 학교 급식노동자들이 그거에 적응 못하면 그냥 샤워 못하고 집에 가는거죠. 문 잠그고 볼일 보면 밖에서 계속 문 두드려요.

- 보통 비슷한 시간에 화장실을 이용할 수 밖에 없으니까….

김 = 첫 번째 화장실 갈 수 있는 시간은 작업하기 전, 두번째는 배식하기 전이요. 배식 끝나고 식판 닦기 전 물에 불릴 때 한 번 더 가는 경우도 있어요. 퇴근 전까지 그렇게 세 번 정도 가요. 여름철에는 그나마도 안 가죠. 참 난처한 게 생리할 때. 생리혈에도 옷이 축축하고 불편한데, 생리대마저도 생리혈로 젖는게 아니라 땀으로 젖어버려요. 건강하지 못한 여성 생식기 관리가 되는거죠. 너무 우리 스스로에게 가혹해요.

-생리 할 때는 세 번 가는 걸로는 부족할 것 같은데요.

김 = 부족하죠. 일하다 보면 작업복에 (피가) 묻어있는 동료도 봐요. 그럼 ‘화장실 다녀오라’고 하는데, 그러려면 우리가 그 동료가 빠져도 될 수 있게끔 배려해야 돼요. 혼자 들지 못하는 물건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면세점·백화점 판매사원

[투명장벽의 도시③]샤워·용변·세탁을 동시에…고객 화장실에선 ‘양치 금지’

김수현씨는 면세점 판매사원, 허영미씨(가명)은 백화점 판매사원이다. 두 사람이 일하는 공간은 깨끗하고 편리하다. 고객의 동선에 맞춰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가 있고, 화장실도 늘 물기하나 없이 반짝인다. 두 사람은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이 공간에서 보내지만, 잠깐 머물다 떠나는 고객에 비해 공간을 누릴 자유는 적다. 화장실은 ‘고객용’과 ‘직원용’이 구분돼 있고,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탈 때에는 직원인 걸 드러내지 않기 위해 명찰을 뗀다.

- ‘고객용 화장실’을 사용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나요.

김수현(이하 김) = 5년 전에 대형 백화점 면세점이 오픈했는데, 그 층에 직원 화장실이 없었어요. 지배인에게 화장실을 어디로 가냐고 하니까 위나 아래층으로 가라는 거예요. 그런데 매장 앞에 한 30초면 갈 수 있는 고객 화장실이 있었거든요. 나중에 미팅 때 ‘화장실 다녀오다 고객을 놓칠 수 있다, OO백화점은 직원도 고객 화장실을 쓴다’고 하니 쓰라고 하더라고요.

허영미(이하 허) = 저희는 고객용 이용 가능해요. 다만 청소하시는 분들이 백화점 오픈 전에는 자제해달라고 해요. 양치질은 안돼요. 직원이 양치질 하는 걸 고객이 불편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까요. 화장은 고쳐도 된다고 하는데,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고객 화장실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한 소리 듣기 싫으니 그냥 (하지 말라는 건) 안 하는 경우가 많죠.

- 양치를 못 하게 하는 게 이해가 안가요.

허 = 고객한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라고 느끼는 것 같아요. 어떤 완벽한 모습을 고객이 보길 바라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의 한 백화점 면세점 전경.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의 한 백화점 면세점 전경.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고객 화장실과 직원 화장실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김 = 고객 화장실은 너무 좋잖아요. 거기서 휴식을 취하는 분들이 계실 정도죠. 직원용 화장실은 몇 칸 되지도 않고, 어느 칸 하나는 늘 고장 나 있어요. 조명이 나가 있기도 하고, 좁아요. 핸드타월도 안 갖춰져 있고, 물비누가 없는 경우도 많아요.

- 면세점, 백화점에서 일 하면서 화장실 문제로 불편을 겪을 거라는 걸 예상하셨나요.

김 = 사회생활을 면세점에서 처음 했어요. 그전엔 고객용만 가봤는데 직원 화장실 처음 가보고 놀랐어요. 그런데 20년 전이랑, 지금이랑 큰 변화가 없어요. 고객 화장실 조명 나가면 시설팀에서 득달같이 와서 바로 교체해요. 직원 화장실은 1달 동안 불이 나가 있어도 안 고쳐요.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쓰면 안 되는건가요.

김 = 회사마다 다른데요. 기본적으로 (어느 회사든) 유니폼 입고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타는 걸 싫어해요. 저는 탈 때 명찰을 떼는 게 습관이 됐어요. 잘못된 일이어서 이름을 가리는 느낌이에요. 제가 그거 탄다고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허 = 아직 특별히 쓰지 말라는 말은 없었는데, 탈 때 기본적으로 명찰은 떼요. 그냥 고객 입장에서, 고객이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고객에게 직원인 것을 티 내지 말라는 의미인 건지, 아무튼 하지 말라고 했던 것 같아요. 우리 스스로도 눈치를 봐요. 위축이 돼서요.

면세점 판매사원 김수현씨가 자신이 일했던 한 대형 백화점 면세점의 화장실 지도를 그리고 있다. 최유진 PD

면세점 판매사원 김수현씨가 자신이 일했던 한 대형 백화점 면세점의 화장실 지도를 그리고 있다. 최유진 PD

- 고객용과 직원용 구분이 없다면 어떨까요.

김 = 제가 마지막에 있었던 곳은 인천공항 면세점이었어요. 너무 좋았어요. ‘고객,직원 화장실 구분이 없으니 이렇게 편하구나’ 싶었어요. 공항 면세점에서만 일했던 직원들은 화장실에 대한 불편함을 모르더라고요.

허 = “‘고객용’이라고 붙어있지 않으면 불편할 일이 없죠. 고객용이라고 하니 불편한 거죠.

- 애초에 왜 구분돼 있을까요.

김 = 회사가 직원들을 숨긴다는 느낌을 받아요. 면세점에서 예쁜 유니폼, 예쁜 화장하고 서 있으면 월급도 많이 받을 것 같고, 외국어를 잘 하니 공부도 많이 했을 것 같다고 고객이 말씀하세요. 저희를 브랜드 홍보를 하는 수단으로만 이용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하나의 인간이라고 생각했으면 이 긴 시간 동안 (편의시설에) 발전이 없을 수 없거든요? 자존심 상해요.

- 고객 화장실을 못 쓰게 했을 때, 화장실을 원할 때 자주 못 갔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나요.

김 = 익숙하기도 한데 우선은 짜증이 나요. 무시당하는 느낌인거죠. 화장실은 가장 원초적인 거잖아요. 사람이 가장 원초적인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자존심 상했어요. ‘진짜 무시하는구나, 이 매출 누가 올려주는데 이렇게 취급하나’ 같은 생각 많이 했어요.

허 = 인격적으로 차별대우 받는 느낌. 나도 사람이고 그들도 사람인데, 나는 단지 여기 직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왜 내가 고객용을 사용할 수 없는지…. 불합리한 대우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고객센터 상담사

[투명장벽의 도시③]샤워·용변·세탁을 동시에…고객 화장실에선 ‘양치 금지’

박기연씨(가명)는 6년 차 공공기관 콜센터 상담사다. 그가 일하는 사무실과 화장실 간 물리적 거리는 가깝다. 화장실 내 변기 수가 사용자에 비해 적긴 하지만, 가스 점검원이나 학습지 교사처럼 화장실을 찾아서 거리를 헤매야 할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화장실 가는 것을 스스로 억제하도록 만드는 노동의 구조다. 회사는 상담사를 실적에 따라 S부터 F까지 등급을 매긴다. 등급에 따라 받는 돈이 달라진다. 한 개의 콜이라도 더 받아야 실적이 쌓이기 때문에, 화장실 가는 횟수도 가능한 한 줄이려고 한다. 눈치도 보인다. 상담사들은 화장실 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 컴퓨터의 ‘개인 사유’ 버튼을 누르고, 다녀와서는 해지해야 한다. 사무실에는 130명의 상담사들이 일한다. 이들 모두에게 매번‘나 화장실 간다, 나 화장실 다녀왔다’고 공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콜센터 화장실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박기연(이하 박) = 공간 자체의 문제보다는 시스템적인 문제가 있어요. 상담사 스스로가 화장실을 제한하기 위해 물을 덜 마셔요. 수당을 몇 만원 더 받기 위해 화장실 두 번 갈 거 한 번 가요. 그런 것을 부추기는 게 있어요.

- 어떻게 부추기나요.

박 = 지금은 없어졌는데 ‘프로모션’이라는게 있었어요. 조건을 제시하고 그걸 달성하면 가점이 쌓이고, 그 가점으로 인센티브를 결정해요. 콜센터에는 경력단절 여성이 많아요. 본인과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분들이죠. 5만원, 10만원에 목숨 걸게 돼요. ‘오늘 1시간에 20콜 이상 받으면 가점 0.1점’ 이렇게 프로모션을 거는거죠. 0.1점에도 등급이 왔다갔다 하거든요. 화장실에 가려면 ‘개인사유’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하루종일 개인사유 버튼 사용 안 하면 가점 3점’을 주는 프로모션이 있었어요. 1시간에 20콜 받는 가점이 0.1점인데, 3점이면 엄청 큰 거죠. 지금 보면 인권위에 신고를 해야 할 일인데, 그때는 잘못된 거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노조가 생긴 뒤로 가장 먼저 프로모션을 없앴어요.

서울 영등포구 질병관리본부 1339콜센터에서 상담 중인 상담사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 영등포구 질병관리본부 1339콜센터에서 상담 중인 상담사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노동조합이 생긴 뒤로는 무엇이 바뀌었나요.

박 = 하루에 30분 휴식이 생겼고, ‘개인사유’도 30분을 쓸 수 있게 됐어요. 총 1시간을 쉴 수 있게 된거죠. 휴식은 아침에 10분, 오후에 20분을 쓰고, 한 번 쓸 때 10분 이상 쓰지 말라는 조건은 있어요. 다만 휴식 쓰는건 평가에 반영이 안 되는데, ‘개사’는 평가에 들어가요. 그걸 많이 쓰면 그만큼 내가 실적이 많이 떨어지는거예요. 휴식은 어쩔 수 없이 주는거니까 너네 마음대로 써, 그런데 화장실 가지 마, 라는 뜻이죠.

- 화장실 갈 때도 여전히 ‘개사’를 누르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 = 저희한테는 너무 당연해요. 그런데 상담사가 아닌 다른 사람한테 말하기는 좀 부끄러워요. ‘개사’는 화장실 아니면 담배예요. 제가 담배 안 피우는 건 다 알잖아요. 그럼 제가 화장실 간 걸 타인에게 오픈을 하는 셈이에요. 한 번은 화장실 갔는데 10분이 넘어갔어요. 그래서 화장실 안에서 팀장님한테 전화를 했어요. 나 화장실에서 아직 못 나갔다고. 이거 좀 서럽지 않나요? 지금은 퇴사한 (동료) 언닌데 그 언니는 50대였어요. 그런데 몇 년 전에 콜이 너무 많아가지고 생리하는 중에 화장실에 못 간거예요. 그래서 샜어요. 그걸 너무 힘들어했어요.

화장실 찾아 전력질주? 직업별 화장실 이야기 | 투명장벽의 도시 ep2 | 경향신문 창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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