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제일교회 탄압부터 납북까지…진실화해위, ‘민간인 국가폭력’ 인정

윤기은 기자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24일 서울제일교회 정치 탄압, 정부 비판 교사 불법 구금, 보안사 간첩 조작 의혹, 강제 납북, 지역 민간인 학살 등 5개 국가폭력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교인 감금·목사 폭행에 ‘경찰서 예배’

현재 고인이 된 박형규 목사가 1972년 서울 중구 서울제일교회 담임 목사로 부임한 이후 이 교회 교인들은 노동자 야학인 ‘형제의 집’을 만드는 등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박 목사는 1973년 부활절 예배일에 ‘민주주의의 부활은 대중의 해방이다’고 적힌 전단을 교인들에게 배포해 내란음모예비 혐의로 박정희 정권에 의해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에도 민주화 운동을 이어가자 1984년 전두환 정권은 정권은 폭력배를 동원해 박 목사를 폭행하고, 박 목사의 활동에 동조하는 교인들을 교회 건물 안에 감금했다. 이런 사태가 3개월간 지속되자 서울제일교회 교인은 1984년 12월부터 7년간 서울 중부경찰서 앞에서 노상 예배를 드렸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국군보안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종교계의 민주화 운동을 막기 위해 ‘교계 저항세 무력화 대책’을 세운 뒤 종교인들을 포섭, 회유해 서울제일교회 교인들을 분열시키려 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이 폭력 사건을 소극적으로 수사하고, 안기부는 이 사건을 의도적으로 지연 수사한 정황도 파악했다.

진실화해위는 “서울제일교회를 대상으로 보안사가 공작한 것은 방첩, 군 첩보 수집 등 직무 범위를 벗어난 위법행위이며, 폭력 사건 방치·축소·은폐를 공모한 수사기관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이라고 했다.

1989년 3월19일 서울제일교회 교인들이 서울 중부경찰서 앞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제공

1989년 3월19일 서울제일교회 교인들이 서울 중부경찰서 앞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제공

진실화해위는 남파 간첩의 지인 3명을 간첩으로 몰아 유죄를 선고한 ‘보안사 간첩조작 의혹 사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남파 간첩 A씨의 지인들은 1960년 A씨로부터 북한 선전·통일 사업에 협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보안사는 지인들을 간첩 혐의로 12일~16일간 불법 구금했고 피의자 신문조서와 압수 조서를 위조했다. 결국 피해자 세명은 국가보안법 등 위반 혐의로 각각 징역 2년, 3년6개월, 5년형을 받았다. 진실화해위는 국가가 이들에게 사과하고, 재심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1978년 대전의 한 고등학교 교사였던 B씨는 수업 중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대통령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수사당국에 불법 구금돼 가혹행위를 당한 뒤 징역 3년6개월을 확정받았다. 진실화해위는 B씨에 대한 재심을 사법기관 등에 권고했다.

“국민 안전 못 지켰다”…납북 사건도 ‘국가폭력’ 인정

한국전쟁 시기 한국에 거주하던 시민을 북한이 강제 납북한 사건도 국가 폭력 피해로 인정됐다. 진실화해위가 한국전쟁 시기 납북사건에 대해 진실을 규명해 결론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실화해위는 1950년부터 3년간 민간인 68명이 북에 끌려갔으며, 이들 중 일부는 북한 형무소 등에 수용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은 농민, 한국 정계 인사, 북한 체제에 저항한 인사, 전문직 종사자 등이었으며, 자택에서 주로 납치됐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부터 서울이 수복(1950년 9월28일)되기 전까지 납북된 이들이 다수였다. 진실화해위는 “가해 주체는 북한 인민군, 지방 좌익, 정치보위부 등 다양하지만 결국 북한 정권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한국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지킬 의무를 다 못했다”며 북한 정권의 공식 사과 촉구, 납북자들의 생사 확인과 생존 납북자들의 송환 촉구,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기념 지정 검토 등을 국가에 권고했다.

10세 이하도 희생된 ‘함평 학살’

함평 양민학살사건 위령비. 진실화해위 제공

함평 양민학살사건 위령비. 진실화해위 제공

한국전쟁 발발 전후인 1950년 4월과 11~12월 전남 함평군 월야면 주민들이 군경에 의해 희생된 ‘함평 양민 학살사건’의 희생자 6명도 진실화해위 조사를 통해 추가로 확인됐다. 이를 포함해 지금까지 진실화해위가 확인한 희생자는 11명, 부상자는 2명이다. ‘좌익 세력’으로 몰린 희생자와 부상자 대부분은 농업과 가사에 종사하는 민간인이었다. 여성 2명과 10세 이하의 어린이 3명이 희생자·부상자 명단에 포함돼 있다. 2009년 과거사정리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이 학살사건의 희생자는 898명에 이른다.

경북 청도군 주민 41명이 1950년 7월에서 8월까지 “좌익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청도경찰서, 미 첩보부대 CIC 청도지구 파견대, 육군 정보국 소속 호림부대에 예비검속된 후 집단 살해된 사건도 진실규명됐다.

진실화해위는 두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무고한 민간인을 적법한 절차 없이 살해하고, 유족에게 고통을 준 것은 잘못”이라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 사건의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사과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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