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품 수어로 쉽게 설명하기...우리의 영원한 숙제” LG전자 수어상담사

이재덕 기자
LG전자 하이텔레서비스의 유민지 선임이 27일 화상전화를 이용해 청각 장애인 고객과 수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재덕 기자.

LG전자 하이텔레서비스의 유민지 선임이 27일 화상전화를 이용해 청각 장애인 고객과 수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재덕 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마곡의 LG전자 하이텔레서비스 본사. 수어상담실의 유민지 선임이 화상전화를 이용해 청각장애인 고객과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유 선임이 손가락으로 알파벳 ‘L(엘)’자 모양을 만들어 얼굴에 대며 인사를 했다. LG전자를 뜻하는 수어다. 그가 엄지와 검지로 컵을 집어 들어 입에 가져가는 손짓을 반복했다. 물과 관련된 상담인 것 같았다. 상담이 끝난 뒤 유 선임은 “고객이 정수기의 이전 설치를 문의했다”고 설명했다.

카카오톡 같은 채팅 방식으로 상담하면 될 텐데 왜 별도의 수어 상담이 필요할까. 옆에 있던 이정민 책임은 “청각장애인들은 문자를 소리와 함께 배우지 않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며 “이들에게 한글은 ‘외국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현재 하이텔레서비스에서는 유 선임과 이 책임 등 2명의 수어컨설턴트(수어상담사)가 근무 중이다. 청각장애인 고객을 대상으로 LG전자 제품과 서비스 관련 상담을 하거나, 매장 직원이나 설치·서비스 기사와 대화할 때 화상전화기나 스마트폰 화상통화를 통해 수어로 통역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이들은 새 제품이 나오거나, 기능이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수시로 교육을 받는다. 유 선임은 “가장 신경 쓰는 일은 새로운 제품과 기능을 수어로 어떻게 쉽게 표현하느냐는 것”이라며 “이 책임과 수시로 논의하면서 수어 표현을 가다듬는다”고 말했다.

예컨대 ‘공기청정기’만 해도 수어 표현법이 다양하다. ㄱ(기역)·ㄴ(니은)·ㅏ(아)·ㅑ(야) 등의 한글 철자를 손동작으로 보여주는 ‘지문자’를 사용할 수 있지만, 지문자를 모르는 고객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일반적으로는 두 손가락으로 코를 가리키는 수어(공기)와 눈앞을 손으로 닦아내는 수어(청정), 손가락을 서로 맞물려 돌리는 수어(기계)를 차례로 조합해 공기청정기를 표현한다.

공기 청정기를 뜻하는 수어. 유민지 선임이 두 손가락으로 코를 가리키는 수어(공기)와 눈앞을 손으로 닦아내는 수어(청정), 손가락을 서로 맞물려 돌리는 수어(기계)를 조합해 공기청정기를 표현했다. 이재덕 기자.

공기 청정기를 뜻하는 수어. 유민지 선임이 두 손가락으로 코를 가리키는 수어(공기)와 눈앞을 손으로 닦아내는 수어(청정), 손가락을 서로 맞물려 돌리는 수어(기계)를 조합해 공기청정기를 표현했다. 이재덕 기자.

제품 외관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표현한 공기 청정기 수어. 이정민 책임이 둥근 기둥 위에 원판이 돌아가는 모습을 표현했다. LG전자의 퓨리케어 360도 공기청정기 작동 모습을 묘사한 수어다. 이재덕 기자.

제품 외관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표현한 공기 청정기 수어. 이정민 책임이 둥근 기둥 위에 원판이 돌아가는 모습을 표현했다. LG전자의 퓨리케어 360도 공기청정기 작동 모습을 묘사한 수어다. 이재덕 기자.

하지만 수많은 공기청정기 중 특정 제품을 언급할 땐 어떤 수어를 활용해야 할까. “청각장애인이 아닌 고객 중에도 이런 식으로 말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게 뭐더라.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둥글고 길쭉하게 생겨서 그 위로 원판이 움직이는 제품 있잖아요?’ 수어로 그대로 묘사하면 돼요.” 이 책임이 한 손으로 기둥 모양을 만들고 다른 손을 그 위에 올려 좌우로 돌리며 말했다. LG전자의 ‘퓨리케어 360도 공기청정기’를 가리키는 수어다.

신제품이나 신기술을 표현할 땐 이처럼 직관적인 수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아래는 세탁기, 위는 건조기인 ‘트롬 워시타워’는 두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어 1층과 2층을 만든 뒤 원을 그리며 돌리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식물재배기인 ‘틔운’은 두 손바닥을 마주 보게 한 뒤 위아래로 움직이는 방식으로 ‘풀이 나는 기계’로 묘사한다. 이 책임이 “지문자는 몰라도 수어로 기가 막히게 표현하는 어르신들이 있다”며 “어르신 고객들에게 배우는 표현도 많다”고 말했다.

LG전자 하이텔레서비스의 수어 상담·통역 서비스는 2021년 10월 시작됐다. 초기에 상담·통역 건수는 한 달 수십 건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입소문이 나서 한 달 100여 건에 달한다. 건당 30~40분, 길게는 1~2시간까지 상담·통역이 이어지는 일도 예사다.

이 책임은 비장애인 어머니를 위한 ‘깜짝 선물’로 대형 TV를 산 40대 청각장애인 고객과의 상담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77인치 대형 TV가 배달된 날, 이 책임은 고객의 수어를 어머니에게 말로 전했다. “시력이 나빠진 엄마가 작은 화면으로 TV 보는 걸 힘들어해서 샀어. 이제는 소파에 앉아서 큰 TV로 편하게 봤으면 좋겠어. 이건 내가 선물하는 거야. 엄마 사랑해.”

최근에는 외국인 고객들의 문의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 책임은 중국 수어를 배웠고, 유 선임은 미국 수어와 유사한 국제 수어를 한다. 이 책임은 “다양한 고객들에게 LG전자 제품과 서비스를 수어로 쉽게 설명하는 일. 그게 우리의 영원한 숙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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