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1급 기밀, 작년 10월 이미 ‘게임 채팅방’에 유출?···“공개 문서, 빙산 일각일 수도”

선명수 기자

속속 드러나는 문건 ‘유포 경로’

10대들 모인 ‘디스코드’서 시작

“자기 과시용 유출로 보여”

1급 기밀 접근 권한 125만명

미 정부 허술한 관리 도마에

미국 워싱턴의 국방부(펜타곤) 청사.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워싱턴의 국방부(펜타곤) 청사.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신 첩보와 동맹국 도청 내용이 포함된 미국 기밀문서의 첫 유출 시점이 앞서 알려진 지난 1월보다 훨씬 이전인 지난해 10월로 추정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유출된 문서가 현재까지 파악된 100여개보다 더 많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 이 문서가 처음 유출된 곳은 청소년들이 포함된 소규모 ‘게임 채팅방’으로, 채팅방 이용자들이 미국의 1급 국가기밀을 자기 과시용 ‘놀잇거리’처럼 공유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미국 정부의 허술한 기밀 관리로 인한 사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밈 공유하는 게임 채팅방에 ‘과시용’으로 올라온 1급 기밀

현재까지 알려진 기밀문서의 첫 유출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게임 채팅 플랫폼인 ‘디스코드(Discord)’다. 지난 2월 말~3월 초 이 커뮤니티 내 온라인 게임 ‘마인크래프트’ 채팅방에 미 정보기관의 기밀 문서가 대량으로 올라오며 본격적인 유포가 시작됐다.

그러나 오픈소스 데이터를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영국 탐사저널리즘그룹 벨링캣은 디스코드 채팅방 이용자들과 접촉해 유출 경로를 역추적한 결과, ‘마인크래프트’ 채팅방 유포 이전에 20명이 참여하는 디스코드 내 또다른 소규모 채팅방에서 기밀 문건이 처음 등장했다고 전했다.

이 채팅방은 다양한 이름으로 바꿔가며 운영됐지만 주로 ‘터크 셰이커 센트럴(Thug Shaker Central)’이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군사·무기 유튜버 ‘옥사이드(Oxide)’의 팬들로 구성된 소규모 모임이었다. 구성원 중 일부는 10대 청소년들이었다.

채팅방 이용자들에 따르면 한 이용자가 다른 이용자들에게 과시 목적으로 기밀문서 한 장을 게시했고, 이에 일부가 놀라워하는 반응을 보이자 더 많은 문서를 올렸지만 그 이후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문건들 중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사상자 숫자 등이 담긴 ‘1급 기밀(Top Secret)’이 포함돼 있었고, 일부 문서엔 외국과 공유하지 않는 기밀이라는 뜻인 ‘NOFORN’이란 표식도 있었다.

2월 말까지 채팅방 안에서만 공유되던 문서들은 ‘루카(Lucca)’라는 닉네임의 10대 이용자가 107개의 기밀문서 사진을 ‘와우마오(WowMao)’ 등 또 다른 채팅방에 퍼나르며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됐다.

이후 디스코드 채팅방 참여자들은 문서 일부를 지난달 5일부터 극우 성향 익명 온라인 게시판인 ‘포첸(4chan)’에 퍼날랐고, 이후 트위터·텔레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현재까지 알려진 유포 경로다. 러시아 측 사상자 수 등을 포함한 일부 문건은 텔레그램 유통 과정에서 원본의 수정·조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채팅방에 있었던 이용자들은 벨링캣에 “와우마오에 올라온 파일들은 첫 채팅방에 업로드됐던 문서와 비교했을 때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말했다. 가디언은 벨링캣 등을 인용해 기밀 문서의 최초 유포 시점은 알려진 것처럼 지난 1월이 아니라 지난해 10월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유출 문서가 이제까지 파악된 100여개보다 훨씬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이날 브리핑에서 문건 유출 위협이 현재로서 억제된 것이냐는 질문에 “우리는 모른다. 정말 모른다”고 답한 것도 미 당국이 유출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갖게 한다.

유출된 문건 규모, ‘빙산의 일각’일수도…미 기밀 접근권 보유자 125만명

미 정보기관의 기밀 문건이 온라인에 대량으로 유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러시아의 교란 작전 등 여러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유출된 문서의 내용이나 유출 경로를 봤을 때 러시아가 배후일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채팅방 이용자들과 접촉한 벨링캣의 아릭 툴러는 “지난 몇달간 채팅방에서 문서 유출을 지켜본 사람들과 이야기해본 결과, 러시아가 배후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툴러는 “이 채팅방은 전쟁 관련 소식을 공유했지만 (이용자들) 대부분이 실제 전쟁에는 관심이 없었고, 대부분은 ‘콜 오브 듀티’ 게임을 하면서 음성 채팅을 하고, 밈을 공유하는 젊은이들이었다”고 말했다.

이 채팅방의 한 참여자는 기밀 문서의 최초 유포자가 ‘the OG’라는 닉네임으로 불렸으며, 문건을 채팅방 외부로 퍼나른 ‘루카’는 “그저 어린애일 뿐”이라고 AP통신에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참여자는 최초 유포자가 “어떤 이념에 이끌리거나 정부 기밀을 광범위하게 폭로하려는 목적보다는, 그저 다른 채팅방 이용자들에게 (자신의 정보력에 대한) 인상을 주려고 했던 것으로 보였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채팅방 참여자의 증언 등을 토대로 “최초 유포자는 미군의 기밀 접근 권한을 가진 사람으로 게임과 무기 애호가로 보이며, 다른 이용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려는 것 외에 더 복잡한 동기를 가지고 유포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가디언은 “이번 사태로 미국 정부가 얼마나 부주의하게 기밀을 취급했는지 드러났다”며 이는 러시아의 해킹이나 미국의 의도적인 허위 정보 유포 등 일각에서 제기하는 가능성보다 “더 걱정스러운 진실”이라고 꼬집었다.

미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유출된 기밀 문서들은 마크 밀리 합동참모의장을 비롯한 미군 수뇌부 보고용으로 지난해 겨울부터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군 수뇌부 뿐만 아니라 보안 승인을 받은 다른 미군 인력과 계약자들도 이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 미국 국가정보국(DNI)에 따르면 2019년 미국 정부의 1급 기밀 자료에 접근 권한을 가진 사람은 125만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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