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진화 ‘사각지대’(2)

생태보고 DMZ·민북지역, 산불에 속수무책···골든타임 맞추려면?

김기범 기자

보전가치 높은 DMZ, 민통선 이북서 대형산불 빈발

지상진화 어렵고, 헬기 출동에 장시간 소요

골든타임 50분인데, 민북 헬기 출동엔 1시간11분

산림당국과 군당국 협력체계 강화 필요

산불위험에 노출된 DMZ

지난 5월15일로 ‘봄철 산불 조심 기간’이 끝났다. 올해 산불 피해 면적은 지난해보다 적었지만, ‘충격’은 더 컸다. 지난달 2일 서울 인왕산에서 불기둥이 솟구쳤고 하루 동안 전국 30여곳에서 산불이 발생하기도 했다.
산불 진화에는 난관이 많다. 송전선이 있으면 헬기가 진화에 나서기 어렵다. 산불 현장 인근에 담수지가 없으면 헬기가 많아도 효율이 낮다.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이북, 군 사격장 등은 산불이 나도 대응이 쉽지 않다.
환경단체들은 기후위기로 인해 앞으로 산불이 더 자주, 크게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경향신문은 녹색연합과 함께 산불 대응의 ‘사각지대’를 찾아 그 실태를 점검했다.

2019년 3월 8일 산림청 진화 헬기가 비무장지대에서 산불을 끄기 위해 물을 투하하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2019년 3월 8일 산림청 진화 헬기가 비무장지대에서 산불을 끄기 위해 물을 투하하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2019년 3월 경기 연천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산불은 9일 동안 이어졌다.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DMZ 산림을 불태운 이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산림청 진화 헬기 총 76대가 투입됐다.

지난해 4월에는 강원 양구 송청리에서 시작된 산불이 41시간20분 동안 산림 720㏊를 태운 뒤 꺼졌다. 헬기 69대와 3378명의 인력이 사투를 벌여 겨우 주불을 잡았다.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민통선 이북(이하 민북)과 DMZ에는 생물 다양성이 높아 보호 가치가 큰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 다수 있다. 그런데 민북 지역과 DMZ는 군 사격장이 다수 배치돼 있어 산불이 나기도 쉽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훈련을 해도 포 사격 훈련 등에서 불꽃이 튀는 것을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북한 쪽에서 예상치 못한 산불이 내려오면 발생 초기엔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 지역의 산불은 산림 생태계를 파괴할 뿐 아니라 군 장병들의 안전과 군사시설마저 위협하고 있다.

2019년 3월 8일 산림청 진화 헬기가 비무장지대에서 산불을 끄기 위해 물을 투하하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2019년 3월 8일 산림청 진화 헬기가 비무장지대에서 산불을 끄기 위해 물을 투하하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산림청이 2020년 작성한 ‘DMZ, 민북지역 산불대응’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DMZ에서 발생한 31건의 산불은 모두 2082㏊가량의 산림을 소실시켰다. 2019년 1월1일부터 4월5일 사이 경기 북부에서는 군 사격장 관련 산불로 피해를 본 면적이 75.21㏊에 달했다. 이는 축구장 105개 면적에 해당한다.

이처럼 심각성이 큰데 산불 진화 전력의 8할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진화 헬기가 민북지역 산불에서 제 역할을 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비행금지구역에 헬기가 진입하려면 군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진입한 뒤에도 군부대 주변의 헬기 착륙을 위한 임시계류시설을 사용하지 못한다. 먼 거리를 왕복하다 보면 산불 진화 효율이 극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직 민북 지역에는 바로 출동이 가능한 산림항공관리소가 없어 산불이 발생하면 서울, 원주, 강릉 세 곳의 산림항공관리소의 진화 헬기가 출동한다. 이런 이유로 민북 지역에 산불이 발생하면 진화 헬기들은 골든타임을 훌쩍 넘겨 현장에 도착하는 사례가 많다. 산림청에 따르면 산불 진화를 위한 헬기 출동에서 골든타임은 50분이다. 민북 지역의 출동 시간은 평균 1시간11분으로 집계됐다.

2019년 3월 8일 산림청 진화 헬기가 비무장지대에서 산불을 끄기 위해 물을 투하하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2019년 3월 8일 산림청 진화 헬기가 비무장지대에서 산불을 끄기 위해 물을 투하하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지상에서 산불을 진압하기는 더욱더 어렵다. 우선 군 사격장에는 불발탄이 곳곳에 있어 현장 접근이 어렵다. 또 헬기와 마찬가지로 산불 현장에 가기 위해 군부대 출입 절차를 거치다 보면 골든타임을 놓치기 일쑤다. 현장에 들어가도 지뢰 때문에 자유로운 진화 활동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기 진화에 실패하면 작은 불도 대형 산불로 번질 수 있다. 1996년 강원도 고성의 한 군 훈련장에서 폭발물을 처리하다 발생한 산불은 서울 여의도 면적의 13배인 3762ha를 태웠다. 2000년에는 북한 쪽에서 남하한 산불로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송현리 일대 1420ha가 피해를 보았고, 2008년에는 철책선 쪽에서 남하한 산불로 강원도 고성군 수동면 외인리 일대 500ha가 불에 탔다.

2020년 3월 28일 산림청 초대형 진화 헬기가 경기 연천의 민통선 이북지역에서 산불을 끄기 위해 인공 저수조에서 물을 담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2020년 3월 28일 산림청 초대형 진화 헬기가 경기 연천의 민통선 이북지역에서 산불을 끄기 위해 인공 저수조에서 물을 담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민북 지역 군 사격장 인근 지역에는 불에 잘 타는 소나무 군락도 다수 분포돼 있다. 소나무 군락은 고성, 인제, 화천, 철원, 파주 등 민북 지역에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산림청은 이런 군의 작전지역들이 산불에 매우 취약하다고 판단한다. 소나무 군락 주변에는 장병 거주 시설과 소초 등 다수의 군사시설이 배치돼 있어 산림청은 이들 지역을 우선 진화지역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본다.

산림청은 민북 지역의 산불 상황을 관제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산불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 남북 군 당국 연락체계 마련 등을 중장기 과제에 포함했다. 또 산림청과 군의 협력체계를 강화해 합동 훈련을 실시하고, 헬기 계류장과 주변 담수지 등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한국군의 산불 대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부대별로 세부 산불 매뉴얼을 작성하고, 산불 대응훈련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화 헬기를 빨리 투입하기 위한 항공관리소 추가도 중요한 대책으로 꼽혔다. 산림청은 군과 협의 해 2024년 강원도 철원 중부전선에 민북산림항공관리소를 만들 예정이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DMZ와 민북지역은 10만이 넘는 국군장병들이 생활하는 곳이라는 관점에서 산불재난에 대해 체계적인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소나무 밀도가 높은 중동부 전선에서 지뢰와 불발탄으로 산불이 발생하면 지상 진화는 불가능하다”며 “산림생태계와 장병들의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산림 당국과 군 당국의 산불 대책 협조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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