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의 최고령 ‘리어왕’, 원작 충실했지만···

허진무 기자
연극 <리어왕>에서 리어왕을 연기하는 현역 최고령 배우 이순재. 연우무대·에이티알 제공

연극 <리어왕>에서 리어왕을 연기하는 현역 최고령 배우 이순재. 연우무대·에이티알 제공

브리튼 왕국을 지배하는 늙은 왕 리어는 권력과 영토를 세 딸에게 나눠주려 한다. 그는 세 딸을 불러모아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첫째 딸 고너릴과 둘째 딸 리건은 거짓 아양을 떨어 왕국의 3분의 1씩을 받는다. 가장 총애한 막내딸 코딜리아만이 정직하게 대답하지만 리어왕은 격노한다. 리어왕은 코딜리아의 몫까지 고너릴과 리건에게 주고 코딜리아를 추방한다. 자신에게 직언하는 충신 켄트 백작도 추방한다. 하지만 고너릴과 리건은 원하던 재산을 받은 이후 리어왕을 냉대하며 쫓아버린다. 리어왕은 뼈저린 후회와 절망에 빠져 폭풍우 속에서 광야를 헤맨다.

한국 현역 최고령 배우 이순재(88)가 주인공인 셰익스피어 원작 연극 <리어왕>으로 돌아왔다.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이순재 주연의 <리어왕>은 2021년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에 이어 두 번째이다. 관악극회는 공연이 끝나면 이순재를 ‘세계 최고령 리어왕’으로 기네스북 등재를 신청할 예정이다.

공연시간은 200분에 달한다. 셰익스피어 원작을 각색하거나 압축하지 않고 무대에 올렸다. 원작 그대로의 <리어왕>을 관람할 수 있는 귀한 기회이다. 이순재는 지난달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에는 독백과 방백이 섞여 있고 리듬이 있다. 대사가 문학적이고 철학적이며 비유와 상징이 들어 있다. 이걸 잘라내면 이야기의 전달일 뿐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진수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셰익스피어의 시적 언어가 품은 향취를 살리려면 우선 배우들이 방대한 대사를 외워야 한다. 특히 리어왕 역의 대사량은 살인적이다. 기자가 관람한 1일 첫 공연에선 이순재를 비롯한 일부 배우들의 대사 실수가 종종 나왔다. 음향이 또렷하지 못해 대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 대목이 많았고 특히 이순재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발음이 뭉개지기도 했다. 연출과 음악의 스케일이 넓은 무대를 가득 채우지 못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프리뷰 기간(1~2일)인 점을 감안하면 남은 회차에서 계속 보완해나갈 여지가 있어 보인다.

배우 이순재(맨 왼쪽)가 연습실에서 연극 <리어왕>의 리어왕을 연기하고 있다. 연우무대·에이티알 제공

배우 이순재(맨 왼쪽)가 연습실에서 연극 <리어왕>의 리어왕을 연기하고 있다. 연우무대·에이티알 제공

배우 최종률(맨 왼쪽)이 연습실에서 연극 <리어왕>의 글로스터 백작을 연기하고 있다. 연우무대·에이티알 제공

배우 최종률(맨 왼쪽)이 연습실에서 연극 <리어왕>의 글로스터 백작을 연기하고 있다. 연우무대·에이티알 제공

리어왕 역은 극의 중심을 잡고 끝까지 이끌어가는 체력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이순재는 절대 군주에서 정신을 놓은 노인으로 전락하는 리어왕의 다양한 표정을 보여준다. 글로스터 백작 역을 맡은 최종률도 거짓말에 속아 두 눈까지 잃은 처절한 연기가 돋보인다. 이순재와 최종률을 비롯해 리건 역 서송희, 콘월 공작 역 염인섭, 켄트 백작 역 박용수, 오스왈드 역 김인수의 배역은 2년 전 그대로이다. 지주연이 고너릴에서 코딜리아로, 박재민이 에드가에서 에드먼드로 배역을 바꿨다. 고너릴 역에는 권민중이 새로 나섰다.

<리어왕>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으로 꼽히는 작품이지만 시종일관 비극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리어왕이 리건에게 ‘고너릴과 손을 잡으려 하느냐’고 호통을 치자 리건과 고너릴이 다정하게 손을 맞잡는 장면처럼 원작의 여백을 재치 있는 코미디로 살린 대목들이 있다. 리어왕이 온갖 비유들로 두 딸을 저주하고 욕설하는 장면은 원작에 충실했는데도 우스꽝스럽게 받아들여 웃음을 터뜨리는 관객이 많았다. 시대가 변하면 감수성도 변한다.

18일까지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서울에서 공연한다. R석 9만9000원, S석 7만7000원, A석 4만4000원.

연우무대·에이티알 제공

연우무대·에이티알 제공


Today`s HOT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