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페달 밟는 만큼 포인트…자발적 탄소감축 쏠쏠한데?

주영재 기자

지자체·시민단체 이어 카카오도

도보·자전거·대중교통 보상 추진

[주간경향]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일은 번거롭다.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더 큰 비용이 들 때도 있다. 특히 전기차 소유자라면 더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전력 효율이 좋은 요즘은 200원 정도로 7~8㎞를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때론 돈을 써가면서 친환경 활동을 해도, 주변이 따라주지 않으면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친환경 실천은 간헐적인 경우가 많다. 곰도 춤추게 할 칭찬이 필요하다. 개인의 탄소감축 활동에 보상을 준다면, 친환경 활동을 좀더 끈기 있게 이어갈 수 있다.

기자 개인의 예를 들어보면,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손목닥터9988’ 사업에 참여한 이후, 하루 8000걸음 이상을 걸을 때마다 출석체크 10원에 활동 포인트 200원씩 받고 있다. 금융 플랫폼 토스의 만보기 서비스도 이용하고 있어서 5000걸음 이상이면 20원, 1만 보 이상 걸으면 40원을 받는다. 이렇게 소소하게 받는 작은 포인트가 의외로 걷게 만드는 적지 않은 유인책이 된다. 기록을 세울 때마다 성취감이 든다.

최근 여기에 또 하나를 추가했다. 시민단체 녹색교통운동이 지난 6월 20일 선보인 ‘움직이는 소나무’ 앱이다. 승용차 대신 걷기와 자전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개인의 자발적인 탄소감축 활동을 지원한다. 감축 활동에 따라 하루 최대 150포인트(원)를 받을 수 있다. 포인트는 협약을 맺은 제로웨이스트 상점 등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 최대 50%까지 쓸 수 있다. 탄소감축량과 이동 거리가 제한 없이 기록된다. 이용자가 줄인 탄소감축량을 소나무의 탄소 흡수량으로 환산해 이용자가 몇 그루의 소나무를 심은 것과 같은 효과를 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기자의 경우 이틀 동안 걷거나 버스를 타면서 3.99㎏을 줄여 소나무 0.4그루를 심은 것으로 나온다.

정연주 카카오 액티브그린플랫폼 팀장이 지난 6월 19일 임팩트투자사 소풍벤처스가 주최한 월간 클라이밋 행사에서 ‘카카오 카본 인덱스’와 이용자 탄소감축 보상 방안을 소개하고 있다. 소풍벤처스 제공

정연주 카카오 액티브그린플랫폼 팀장이 지난 6월 19일 임팩트투자사 소풍벤처스가 주최한 월간 클라이밋 행사에서 ‘카카오 카본 인덱스’와 이용자 탄소감축 보상 방안을 소개하고 있다. 소풍벤처스 제공

기업·NGO의 자발적 탄소 시장 진출

기업이 아닌 민간단체에서 앱을 만들어 친환경 활동을 보상하는 건 보기 드문 사례다. 김장희 녹색교통운동 교통환경팀장은 “승용차 수요를 줄이지 않으면 친환경 이동수단인 자전거나 대중교통으로 전환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에 전기차든 내연차든 승용차 이용은 배제하고 있다”면서 “그간 여러 차례 캠페인을 벌였지만, 일회성으로 끝났다는 지적이 있어 시민이 365일 참여할 수 있고, 인증하는 번거로움도 줄일 방법으로 앱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자발적 탄소 시장(VCM·Voluntary Carbon Market)의 확대 흐름에 발맞춰 개인이 자발적인 탄소 감축 활동을 인정받아 탄소배출권을 얻고, 이를 기업과 거래할 수 있는 형태로 추진할 계획이다. 김장희 팀장은 “개인과 기업의 거래가 가능하려면 이용자가 줄인 탄소배출량을 인증받는 절차가 필요하다”면서 “현재 관련 인증을 받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래알 같은 개인의 친환경 활동을 엮어 탄소배출권으로 만들고 이를 시장에서 거래하게 만들면, 개인의 탄소저감 실천을 촉진하고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카카오가 올해 중 선보일 이용자 탄소 보상 서비스도 이런 목표하에서 준비 중이다. 정연주 카카오 액티브그린플랫폼 팀장은 지난 6월 19일 임팩트투자사 소풍벤처스가 주최한 월간 클라이밋 행사에서 “친환경 기여 데이터를 계량화한 지표인 ‘카카오 카본 인덱스’와 이용자 탄소감축 보상을 통해 자발적 탄소 시장을 확대하는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정 팀장은 개인의 친환경 활동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핵심을 측정과 보상이라고 봤다. “측정하면 개선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요. 이용자가 나의 친환경 활동을 트레킹할 수 있고, 이것이 실질적인 탄소감축에 기여하는 형태로 측정될 수 있다면, 나아가 이것이 보상이나 아니면 (탄소) 기본소득으로 연결될 수 있다면 아마 많은 이용자가 효능감이나 보상을 경험하고 더 많은 ‘그린 옵션’이나 액션을 선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친환경 실천을 추적해 데이터를 수집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일상에서 밀접하게 연결된 서비스와 플랫폼을 가진 카카오라면 문제를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차원에서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 카카오T나 카카오맵으로 전기차와 자전거 등 친환경 수단의 주행 거리를 측정할 수 있고, 카카오톡 지갑을 통해 종이문서 대신 전자문서나 전자영수증을 청구한 건수를 파악할 수 있다. 카카오는 이용자들이 서비스와 플랫폼을 통해 참여한 다양한 친환경 활동을 계량화한 후 쿠폰과 이모티콘 등 카카오 내 보상, 지자체·기업 제휴를 통한 보상, 포인트나 탄소배출권과 연계된 현금성 보상 등을 제공할 계획이다.

자발적 시장과 규제시장 호환도 준비

쓰레기를 버릴 때 종량제 봉투를 사서 버리듯, 탄소를 배출할 때도 배출권이 필요하다. 이런 배출권을 거래하는 시장은 크게 ‘규제시장’과 ‘자발적 시장’ 두 종류로 나뉜다. 2015년 탄소배출권 거래제(K-ETS)로 도입된 규제시장은 감축 의무 기업 간 배출권을 거래하는 시장이다. 정부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 맞춰 매년 배출 한도를 설정하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사업장에 연 단위로 배출권을 무상 또는 유상(현재 10%)으로 지급한다.

자발적 시장은 감축 의무가 없는 다양한 주체(기업·기관·비정부기구·개인 등)가 자율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추진하고, 그 실적을 인정받아 배출권 거래에 참여하는 시장이다. 현재 자발적 탄소 시장 규모는 전체 탄소 시장의 1%인 3억6000만달러(2020년 기준)에 불과하지만 2030년이 되면 500억달러(약 63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203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기업의 자발적 감축 목표량 5억t에 배출권 가격 100달러(t당)를 가정해 추정한 수치다.

녹색교통운동에서 출시한 ‘움직이는소나무’ 앱의 메인화면(왼쪽)과 앱스토어 소개 화면. 녹색교통운동 제공

녹색교통운동에서 출시한 ‘움직이는소나무’ 앱의 메인화면(왼쪽)과 앱스토어 소개 화면. 녹색교통운동 제공

2021년 10월 국내 최초의 자발적 탄소 거래 플랫폼으로 개설된 팝플의 경우 현재 국내에서 6건, 해외에서 1건의 프로젝트가 등록돼 있다. 올해 5월 기준 약 1만2500개의 크레딧(약 1억6000만원 규모)이 발행됐다. 시장 규모로만 보면 자발적 탄소 시장은 국내에서 아직 태동기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자발적 탄소 시장의 확대는 정해진 미래라고 보고 있다. 팝플을 서비스하는 그리너리의 김지영 상무는 “전 세계가 제출한 자발적 감축목표(NDC)를 모두 달성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파리협약 상의 1.5℃ 제한 목표를 달성하기엔 역부족”이라면서 “한국도 2030년까지 배출량이 정점에 달했던 2018년 대비 40% 줄이겠다고 했지만, 배출권거래제를 통한 감축은 15%만 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의무 시장 외의 자발적 감축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공급망 탄소중립이 일종의 무역장벽처럼 되는 상황도 감안해야 한다. 최가영 국가녹색기술연구소 글로벌사업화센터 연구원은 “탄소중립은 공급망에서의 글로벌 이슈가 됐고, 환경가치를 중요하게 보는 소비자도 늘어나고 있어서 탄소감축에 힘쓰지 않는 기업은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면서 “자발적 탄소감축이 규제시장에서 꼭 인정받지는 않더라도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차원에서 자발적 시장에서 만들어진 감축 크레딧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규제시장에서의 탄소배출권이 1t의 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라면, 자발적 탄소 시장에서의 탄소감축 크레딧은 1t의 탄소를 줄였다는 인증서라 할 수 있다. A기업이 1t의 탄소를 줄이고, 그만큼 배출할 권리를 B기업에 판매한다면, A기업 입장에선 탄소감축 크레딧이, B기업 입장에선 탄소배출권이 된다. 두 개는 표현만 다를 뿐 같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아직 규제시장에 속한 기업이 자발적 시장에서 감축 크레딧을 구매해 배출량 감축 의무를 이행했다고 주장할 순 없다. 마치 코인을 상장 시장에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과 비슷한 문제라서 두 시장의 통합은 국제적인 기준이 마련되는 걸 지켜봐야 한다.

파리협약은 6.2조(협력적 접근법)에서 두 시장의 호환을 염두에 두고 있다. 자발적 시장에서의 배출권이라고 해도 국가 간 ‘상응조정’을 거치고, 정부가 승인하면 NDC상의 감축 의무를 이행하는 배출권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가령 한국의 A라는 기업이 베트남에서 불법 벌목으로 훼손된 숲을 복구하는 조림사업을 해 탄소감축량을 100t만큼 인정받았다고 하면, 베트남과 한국 정부가 서로 얼마나 가져갈지 협의하는 상응조정을 거쳐 NDC상의 의무 이행에 활용할 수 있다.

아직 절차가 마련되지 않아 NDC 이행수단으로 활용하지 못하더라도 자발적 시장에서의 감축 크레딧은 여전히 활용 가능성이 크다. 특히 감축 의무가 없는 기업들이 감축 실적을 인정받을 때 유용하다. 예를 들어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 자사의 공급망에 속한 기업들에 넷제로(탄소중립)를 요구할 경우 자발적 시장에서 구매한 크레딧을 보여주며 넷제로 활동을 입증할 수 있다. 홍보에 활용할 수도 있다. 자발적 시장에서 크레딧을 구매해 탄소감축에 기여할 경우 기후위기와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소비자들의 호응을 끌어낼 수 있다.

김지영 상무는 자발적 거래 시장이 저탄소 문화를 빠르게 정착시키는 유인책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개인의 친환경 활동으로 만든 크레딧을 판매해 얻은 수익을 시민에게 돌려주면 의외로 빨리 저탄소 문화로 바뀔 수 있습니다. 소비자가 소비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뒤편에 있는 산업의 배출량까지 줄어드는 영향력이 있습니다. 소비자가 움직이는데 기업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죠.” 다만 자발적 탄소 시장이 활성화하려면 배출권을 인정받기 위한 행정절차와 비용을 간소화해야 한다. 김 상무는 “제3자의 검증을 받는 비용은 1회당 500만원 정도로 여전히 부담이 크다”면서 “정부가 이 부분을 보조한다면, 자발적 탄소 시장에 참여하는 중소기업의 진입장벽이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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