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식물인간···대법, “후견인이 대신 가해자 처벌 면해줄 수 없어”

이혜리 기자
대법원 청사 전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법원 청사 전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범죄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는 원칙적으로 피해자 본인만 밝힐 수 있고, 성년후견인이 대신할 수 없다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판단했다. 성년후견인제는 법원 허가를 통해 질병·장애·노령 등 이유로 판단능력이 없는 사람의 주요 의사결정을 도울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A씨의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상)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금고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17일 확정했다.

A씨는 2018년 11월 전방을 제대로 주시하지 않고 자전거를 운행하다 B씨(당시 69세)를 들이받아 중상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사고로 인해 피해자는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이른바 ‘식물인간’이 됐고, 피해자의 배우자가 성년후견인으로 선임됐다. 성년후견인은 A씨 측으로부터 합의금을 받은 뒤 ‘A씨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문서를 법원에 냈다.

쟁점은 의사무능력자인 피해자의 성년후견인이 반의사불벌죄에 관해 피해자를 대리해 처벌 불원 의사를 결정하거나, 처벌 희망 의사를 철회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을 경우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범죄이다. 1·2심 모두 성년후견인의 처벌 불원 의사를 받아들이지 않고 A씨를 유죄로 판단했다.

이날 대법원 다수의견(대법관 8명) 역시 “명문의 규정이 없는 한 성년후견인이 반의사불벌죄에 관해 의사무능력자인 피해자를 대리해 피고인의 처벌 불원 의사를 결정하거나 처벌 희망 의사를 철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반의사불벌죄에서 처벌 불원 의사처럼 소송의 ‘조건’과 관련된 규정은 절차적 안정성과 명확성을 위해 문언의 객관적 의미를 충실히 해석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2항은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규정하는데, 성년후견인의 처벌 불원 의사는 식물인간인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법에 처벌 불원 의사의 대리를 허용하는 규정은 없는데 대법원은 이를 ‘대리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입법자의 결단’이라고 봤다.

대법원은 “피해자 본인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한 형사소송절차에서 성년후견인에 의한 대리를 허용하는 것은 형사사법이 추구하는 보호적 기능의 구현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에 역행한다고 볼 여지도 있다”며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는 금전적·경제적 보상과 함께 정당한 형사처벌을 기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만 대법원은 성년후견인의 처벌 불원 의사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요소로는 참작될 수 있다고 했다.

박정화·민유숙·이동원·이흥구·오경미 등 대법관 5명은 반대 의견을 냈다. 이들은 “의사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도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의사무능력이라는 이유로 의사결정 가능성을 봉쇄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성년후견인은 법원이 선임하기 때문에 공적인 특성이 있는 점, 의사능력이 결여되거나 부족한 사람을 지원·보완하려는 제도 취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으나 다수 의견에 이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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