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밀수’ 류승완 감독 “‘김혜수·염정아’ 투톱이라면 안 볼 이유가 없지 않나”

오경민 기자

개봉 5일만에 100만 관객 넘기며 흥행중

“캐러멜·바나나·양담배 밀수하던 시절 이야기”

“중력 지배 덜 받는 수중 액션에 재미”

해녀 춘자(김혜수·왼쪽)와 진숙(염정아·오른쪽), 다방을 운영하는 옥분(고민시·가운데)은 밀수 사건에 연루된다. NEW 제공. 사진 크게보기

해녀 춘자(김혜수·왼쪽)와 진숙(염정아·오른쪽), 다방을 운영하는 옥분(고민시·가운데)은 밀수 사건에 연루된다. NEW 제공.

영화 <밀수>의 한 장면. 진숙(염정아·오른쪽)과 가족처럼 지내던 춘자(김혜수·왼쪽)는 군천을 떠났다가 3년 만에 돌아왔다. 그녀는 고옥분(고민시·가운데)네 다방에서 지내며 밀수 사업을 진행시키려 한다. NEW 제공. 사진 크게보기

영화 <밀수>의 한 장면. 진숙(염정아·오른쪽)과 가족처럼 지내던 춘자(김혜수·왼쪽)는 군천을 떠났다가 3년 만에 돌아왔다. 그녀는 고옥분(고민시·가운데)네 다방에서 지내며 밀수 사업을 진행시키려 한다. NEW 제공.

“처음부터 그냥 김혜수, 염정아였단 말이에요. 연락을 받고 두 배우가 너무 흔쾌히 사무실로 왔어요. 대본을 드리면서 저희가 준비한 걸 최대한 보여드렸죠. ‘우리가 이렇게나 준비했어’ 이런 마음으로요. 두 배우가 저희가 준비한 자료들, 해녀 영상이나 수중 영상을 보고 너무 감동을 한 표정으로 말도 못하고 입을 벌리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뭐 이렇게까지 감동을…역시 난 대단한가봐’ 싶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김혜수 배우는 물을 보고 공황이 온 거고 염정아 배우는 ‘나 수영 못하는데’ 싶어서 대화가 끊긴 거예요. 그걸 며칠 뒤에야 알았죠.”

류승완 감독이 가상의 도시 군천 앞바다 해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밀수>로 돌아왔다. 물을 두려워 하던 두 배우는 수중 훈련 끝에 수중 촬영을 훌륭하게 마쳤다. 영화는 순항 중이다. <엘리멘탈>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1> 등 7월 내내 외국영화가 차지하고 있던 일별 박스오피스 1위를 지난 26일 개봉과 함께 탈환했다. 지난달 24일 <범죄도시3>가 박스오피스 정상에서 내려온 이후 약 한 달 만이다. 개봉 첫 날 31만8090명의 관객을 모으더니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넘겼다. 류 감독과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영화 <밀수>는 가상의 도시 ‘군천’의 해녀들 이야기다. NEW 제공. 사진 크게보기

영화 <밀수>는 가상의 도시 ‘군천’의 해녀들 이야기다. NEW 제공.

-해녀들의 밀수 이야기는 어떻게 다루게 됐나.

“(제작을 맡은 영화사 외유내강의) 조성민 부사장이 군산에 촬영을 갔다가 박물관에서 본 짧은 기록에서 시작됐다. 과거 군산 지역에서 밀수가 횡행했는데 해녀들이 가담했다는 내용의 기록이었다. 저는 그보다 조금 전에 ‘미스테리아’라는 잡지에서 부산 여성 밀수단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와 이거 재밌다’ 했다. 처음엔 직접 연출할 생각은 없었다. <모가디슈>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을 할 때 <밀수> 각본 초안이 나왔다. ‘바다에서 해녀들이 이런 활극을 벌인다고? 이건 어디서도 못 봤던 건데’ 싶었다. 제가 연출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그렇게 시작했다. ‘안 해봤던 걸 해 볼 수 있다, 내가 본 적이 없으니 관객들에게도 새로운 것을 보여드릴 수 있겠다’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유는.

“지금의 밀수와 1970년대의 밀수는 너무 다르다. 당시에는 캐러멜, 바나나 이런 게 다 밀수품이었다. 어른들 따라 다방에 가면 어른들이 007가방에서 ‘라이방’ 선글라스, 양담배, 해외잡지 이런 걸 꺼냈다. 남대문시장에서는 ‘탱’이라는 주스가루, 청심환 이런 걸 몰래 팔았다. 익숙했지만 그게 범죄였다. 지금은 밀수품이 마약, 금괴 이런 ‘센 것’들이지만 당시 사람들은 밀수를 큰 범죄라고 생각을 안 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이 정도야’ 이랬다. 근데 그게 어느 선을 넘고, 조금 더 넘고, 이러면서 욕망이 스스로를 위험한 쪽으로 몰아가게 되는 과정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1970년대의 패션과 음악도 좋았다. 부모님 옛날 사진을 보면 나팔바지, 넓은 카라, 자유분방한 헤어스타일이 그 안에 있다. 길에서 치마 길이를 자로 재고, 장발 단속을 한다고 머리카락이 귀를 덮으면 잘라버리던 때다. 계속 사회는 무언가를 금지 혹은 강요하고, 개인은 그것을 벗어나려고 하던 그 시기가 흥미롭다. 제 어린 시절이라 그 시절이 안락하고 좋고 편한 것도 있다.”

-보기 드문 여성 투톱 영화다. 흥행 부담은 없나

“흥행은 완전히 실패했지만 전에 (여성 투톱 영화를) 만들어 보긴 했다.(류 감독은 21년 전 배우 전도연, 이혜영 주연의 느와르 <피도 눈물도 없이>를 연출했다.) 저는 제가 하고 싶으면, 맞다는 확신이 들면 한다. <모가디슈>도 아프리카 가서 민간인들이 고립되는 게 무슨 흥행 요소가 있겠나. 어느 순간부터 흥행하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처럼 돼 버렸지만 흥행 관련 숫자보다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반응이 제겐 더 중요하다. 당대에 흥행을 못해도 언젠가는 (걸맞은) 평가를 받기 때문에 그걸 보고 간다.

이 영화가 꼭 여성 투톱인가 생각하면, 여성 둘이 리드를 하긴 하지만 엄진숙(염정아)이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주변 사람이 변하는 이야기다. 해녀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당연히 여성들이 주요 배역으로 나와야 했다. 대본의 뼈대가 두 친구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어떤 계산도 없이 본능적으로 김혜수, 염정아를 떠올렸다. ‘김혜수, 염정아’라면 저라도 당장 보고 싶다. 여러분도 안 볼 이유는 딱히 없지 않나. ‘여성 투톱’이 모험적인 선택이라고 봐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제가 그렇게 모험심 있는 사람은 아니다.”

-관광호텔에서 조인성과 박정민의 액션 장면이 인상 깊다. 두 배우에게 어떤 지시를 했나.

“권 상사(조인성)의 액션은 굉장히 장르적인 멋과 쾌감이 넘쳐났으면 했다. 영화를 만들면서 지금까지 배경을 가상의 도시로 설정한 것은 <짝패>와 이 영화, 두 개가 있다. ‘이것은 장르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라는 일종의 안내다. 실제로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 액션신과 같이) 그렇게 싸움이 벌어질 수 없다. 저조차 액션 영화 팬으로서 되게 멋있는 액션을 보고 싶은 욕망이 있다. 액션 동작이 아무리 화려하고 멋있어도 관객이 인물에 몰입을 못하면 겉으로만 화려한 게 된다. 결국 권 상사가 가진 멋, 품위, 스타일을 조인성 배우가 다 채워줬다. 장도리(박정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다. 처절한 몸부림을 하고, 권 상사가 갖지 못한 활어 같은, 펄떡거리는 느낌의 액션을 해냈다. 저희가 디자인해도 배우가 어떻게 그 안에서 설칠 것인가(가 중요하다). 제 생각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알아서 다 해주셨다.”

한국 밀수 업계를 꽉 잡고 있는 권 상사(조인성)는 부산항 단속이 심해지자 다른 활로를 찾던 중 군천에 관심을 가진다. NEW 제공. 사진 크게보기

한국 밀수 업계를 꽉 잡고 있는 권 상사(조인성)는 부산항 단속이 심해지자 다른 활로를 찾던 중 군천에 관심을 가진다. NEW 제공.

-그 장면에서 권 상사가 조춘자(김혜수)와의 사이에서 어떤 관계나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춘자를 지켜준다.

“그 장면의 동력이 뭐냐고 한다면, 바로 기사도다. 지금으로선 사라져 가는 태도고 가치다. 남성이 여성을 보호한다고 하면 지금은 ‘뭐?’ 이럴 수 있다. 그걸 표현하기 위해 오히려 제가 둘 사이에 로맨스를 형성 안 시켰을 수도 있다. 권 상사의 태도는 명확하다. 그냥 동료이고 동지로서, 내 편인데 내가 이 사람보다 좀 더 세니까 일단 뒤로 숨게 해주고 자신이 앞에 나선다. 전형적인 옛날 사람이다. 둘 사이에서 로맨스보다 훨씬 큰 가치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영화 마지막에 춘자는 권 상사를 향해 사랑이 아닌 의리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그런 점들이 흥미롭다. 인물들이 자신의 성별을 넘어서는 위치에서 서로 관계를 맺는다. 제 의도가 그래도 배우들이 그 매력을 못 끌어내주면 힘들다. 설명할 수도 없고 뉘앙스이기 때문이다. 결국 배우들이 해냈다.”

-영화의 백미는 해녀들의 수중 액션 장면이다. 연출을 위해 어떤 고민들을 했나.

“처음에는 막연하게 물에 들어가면 뭔가 새롭고 재밌는 게 있을 것 같았다. 무술감독과 함께 찾아가는 과정을 거쳤다. 지상에서는 칼싸움, 주먹싸움, 총싸움 다 해봤다. 움직임에 중력이 주는 한계가 있다. 물속이 재밌는 건 중력의 지배를 덜 받는다는 거다. 대신 물의 저항을 받아서 속력이 느려지긴 하지만, 일부러 멋있게 보이려고 슬로우 모션을 걸기도 하는데 어떤가 싶었다. 물속에서는 숨을 못 쉰다는 제약이 단순히 빠른 액션이 주지 못하는 서스펜스를 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물속에선 남성과 여성이 육체적인 대결을 벌이는 게 말이 될 것 같았다. 물에 익숙한 사람이 물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유리하지 않나. 김혜수 배우가 뒤로 공중제비를 하는 동작 같이, 땅에서 찍으면 공상과학 영화나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영화가 아니면 구사하기 힘든 동선을 시도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가수 장기하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 전작들에 비해 음악이 과잉됐다는 평가도 있다.

“일부러 그랬다. 제가 예전에 좋아했던 영화들이 이렇게 과잉된 영화들이었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비열한 거리>나 <카지노> 같은 영화들 보면 음악이 계속 나오지 않나. 이 영화가 아주 매끄러운 영화가 되기를 원치 않았다. 개성이 넘치는 영화였으면 했다. 매끄러운데 개성 없는 영화보다 좀 거칠지만 개성있는 영화가 저는 더 좋다.”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부담감이나 책임감을 느끼나.

“전혀 아니다. 창작자는 자유로움이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제 영화를 잘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 제가 오래 영화를 찍었다고 갑자기 무슨 기가 막힌 정책을 내놓고, 문화 산업에서 어떤 발언권을 가지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창작자로서 어느 순간 분명히 딜레마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했던 말이 족쇄가 되고, 하고 싶은 걸 못하게 되고, 눈치를 보게 되고 하는 건 위험한 것 같다. 그런 걸 잘하는 분들은 따로 계신다. 저는 잘 못한다. 제가 있는, 제가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열심히 할 뿐이다.”

류승완 감독. NEW 제공. 사진 크게보기

류승완 감독. NEW 제공.

-감독으로서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 같다.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저도 영화를 열 몇 편 만들었다 보니 저를 향한 선입견이 있다. ‘류승완 영화는 이럴 것이다’ 하는. <베테랑>을 많이 좋아해 주셨지만 <다찌마와리> <주먹이 운다>부터 제 작품은 모두 다르다. 제가 저질렀지만 필모그래피가 참 ‘갈 지’ 자다. 액션 장면이 많은 영화를 주로 찍긴 했지만 현실적인 영화부터, 판타지, 코미디, 어두운 것도 찍었다. 왜 그랬나 생각해보면 항상 제가 해 놓은 것으로부터 멀리 가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나 시험해 보고 싶었다. 영화를 찍을 때 가장 위험한 것이 성공을 재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베테랑> 속편 촬영을 마치긴 했지만 그간 강박적으로 속편을 만들지 않으려고 피해 왔다. 익숙함과 새로움의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 너무 멀리 가면 관객이 당황한다. 잘 되는 영화의 공식대로 만들면 한두 번은 어떻게 갈 수 있겠지만 서서히 침몰하는 거다. 그러니까 실패를 하더라도 한 걸음만 더, 한 걸음만 더…이렇게 하려고 한다. 저도 두렵다. 저도 성공도 실패도 해보면서 시간이 쌓이니 ‘안 되면 다음에 잘하면 되지 뭐’ 하게 되는 게 있다.”

류승완 감독. 외유내강 제공. 사진 크게보기

류승완 감독. 외유내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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