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랄라~ 절로 나오는…‘녹색의 낙원’ 오만 살랄라

조혜임

아라비안 라이프 - ‘중동의 스위스’를 아시나요?

살랄라에서 가장 유명한 계곡인 와디 다르바트의 아름다운 풍경. 6~9월 성수기에는 무려 60만명이 살랄라를 찾는다.

살랄라에서 가장 유명한 계곡인 와디 다르바트의 아름다운 풍경. 6~9월 성수기에는 무려 60만명이 살랄라를 찾는다.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나가면 종종 말을 걸어오는 필리핀이나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있다. 하늘색이나 옅은 분홍색 유니폼을 입고 있는 그들은 이곳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고 흔히 내니(Nanny)라고 불린다.

“혹시, 내니 안 필요해요?”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온 그 여성은 거절할 틈도 없이 자신의 경력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5년, UAE에서 5년을 살며 아이들을 돌봤으며 쌍둥이를 포함해서 네댓 명의 자녀도 한 번에 볼 수 있는 체력과 능력이 있다며 스스로를 소개했다. 평소라면 “괜찮아요”하고 돌아섰겠지만 그의 유창한 화술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외로웠기 때문인지 그날은 나도 모르게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말벗이 필요했던 날이었는지 지난 10년간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스스럼없이 풀기 시작했다. 그는 현지인 가정에서 일을 하면 휴가를 가도 내니와 함께 다녀서 덕분에 중동 여러 곳을 여행해볼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놓칠세라 “가본 데 중에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라고 물었다. 그는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살랄라(Salalah). 오만.”

살랄라? 태어나서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날 저녁 아이들을 재워놓고 살랄라라는 이름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아랍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초록이 가득한 사진들이 눈길을 끌었다. 폭포에서는 물이 떨어지고 사람들은 계곡에서 배를 탔으며 낙타들은 한가로이 푸르른 바닷가를 산책하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에 홀린 듯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한국의 인터넷 포털에 ‘오만’을 검색하면 그들의 정식 명칭인 ‘오만 술탄국’보다 ‘오만함’이나 ‘오만 원권’이 더 눈에 뜨이지만 중동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인기 있는 여행지이다. ‘중동의 숨겨진 보석’ ‘중동의 노르웨이’ ‘중동의 스위스’ 등 온갖 근사한 수식어를 차지한 오만은 아라비아반도의 남동쪽과 페르시아만 입구에 걸쳐 위치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UAE, 예멘과 국경을 맞대고 있을 뿐 아니라 뉴스에서 자주 들리는 그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이란 등과도 해상 국경을 공유하고 있으니 안전하고는 거리가 멀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 바로 옆나라인 예멘은 외교부에서 정한 여행금지국가이며 예멘과 국경을 맞댄 사우디아라비아의 남부 지역 또한 출국 권고지역이다. 그러나 우려와는 다르게 오만은 민족이나 정파 간의 갈등이 없고 국제무대에서도 중간자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현자들의 나라이다. 낮은 범죄율과 친절하고 온화한 사람들 그리고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유하고 있다.

놀이터에서 처음 만난 아이돌보미 “제일 좋았던 곳? 살랄라!”
가족과 함께 간 그곳은 서늘한 공기가 반기는 한 폭의 별천지
초록을 경배하는 아랍인들 마음 이해돼…그윽한 유향도 유명

나의 오만 여행 소식을 들은 친구들은 “이 날씨에 무스카트(오만의 수도)를 가려고? 거기 지금 40도야”라며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니, 무스카트 말고 살랄라 갈 거야”라고 그들을 안심시켰다. 날아다니는 파리조차도 태워버릴 것 같은 맹렬한 여름 날씨에도 살랄라는 기온이 30도를 넘지 않는 신비로운 지역이다. 그 이유는 6월부터 9월까지 몬순의 강한 영향을 받기 때문인데 이곳의 몬순은 우리와는 다르게 두꺼운 안개구름이 도시를 감싸고 있는 형태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기간에만 흐르는 폭포와 푸르른 풍취를 즐기기 위해 살랄라를 찾는다.

인천공항만큼이나 깨끗하고 현대적인 살랄라 공항을 빠져나오자 축축하고 서늘한 공기가 단숨에 폐로 훅 들어왔다. 마치 한국의 장마철 기간에 한 차례 비가 퍼붓고 난 뒤의 음산한 날씨 같았다. 장마철 하면 우리가 뉴스에서 쉽게 접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식중독이다. 습도 90%가 넘는 날씨 탓인지 아이는 도착 첫날부터 배가 아프다고 데굴데굴 구르며 구토를 하고 밤이 되자 열이 들끓기 시작했다. 아름답다는 칭찬이 자자했던 그 풍경들을 보러 가기도 전에 우리는 살랄라 시내의 한 병원부터 들렀다.

시골의 작은 의원 같은 모습을 한 진료실에서 정성스레 아이를 살펴본 의사는 세균에 의한 위장염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항생제를 처방해주었다. 아이에게는 아이스크림 금지령을 내리고 바나나와 같은 부드러운 음식을 추천했다. 그리고 “이 주변에 유명한 바나나 농장이 있으니 가서 신선한 바나나를 사 먹여보라”는 따스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덕분에 병원을 나서는 길에 근처 농장의 과일 가판대를 찾아가보았다.

울창한 농장 앞에 쪼르르 세워진 가판대에는 초록빛의 바나나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살랄라는 몬순 기후 덕분에 농업이 발달했고 바나나뿐 아니라 코코넛, 타마린드를 비롯한 열대 작물과 토마토, 오이 등 중동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채소를 재배하고 이를 주변국가에 수출한다. 주인장이 이 지역 특산 품종이라면서 건네준 바나나는 마트에서 파는 필리핀산보다는 작고 아담했다. 하지만 한 입 베어 무니 새콤한 맛과 달콤한 맛이 절묘하게 잘 어우러져 왜 살랄라산 바나나가 유명한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배가 아프다고 울던 아이도 작은 바나나 하나를 뚝딱 해치웠다. 항생제 덕분인지, 바나나 덕분인지 아이는 빠르게 회복되었고 꿈에 그리던 살랄라의 자연을 만나러 갔다.

와디 다르바트(Wadi Darbat)라고 불리는 계곡 주변에 다다르자 나가려는 차들과 진입하려는 차들로 작은 도로가 빽빽했다. 살랄라의 6월에서 9월을 카리프(Khareef) 시즌이라 부르는데 이는 아랍어로는 ‘가을’이라는 뜻이지만 실상 가을이 없는 이곳에서는 몬순을 뜻한다. 아랍지역에서는 흔하지 않은 날씨이기에 인기가 많은 곳이라 이 기간 동안만 무려 60만명이 작은 도시를 찾는다. 도착해보니 풀밭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랍식 돗자리를 펴고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개구쟁이 아이들은 수영복도 없이 계곡에 들어가 노느라 홀딱 젖어있었다. 말이나 망아지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마치 동화책의 한 장면 같았다. 분무기로 흩뿌리는 듯한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도 누구 하나 자리를 뜨지 않고 그 비를 맞으며 시간을 이어가고 있었다. 비를 맞기 위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인 양 한껏 즐거운 모습이었다. 감상에 젖어 있는데 산통 깨기 달인인 남편이 입을 삐쭉 내밀며 한마디 한다.

“가평만 가도 이런 곳 수두룩한데….”

사실 그랬다. 사시사철 푸르른 산과 자연을 바라보고 자랐던 대한민국 사람에게는 귀엽고 아담한 사이즈의 계곡이었다. 단지 여기가 아랍이라는 것이 신기했을 뿐이다. 게다가 한창 개발이 진행 중이라 걸어다닐 만한 장소에는 철근과 콘크리트가 마감되지 않은 채 놓여있어 일부 구간은 아이들이 다니기에 꽤나 위험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랍사람들이 이곳을 느끼기 위해 찾고 있었다.

이슬람 성서인 코란에서 약속한 낙원의 모습은 ‘푸르름이 풍부하며 녹음이 우거진 곳’ 혹은 ‘정원’으로 묘사된다. 또한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책인 하디스에 따르면 그는 녹색 옷을 가장 즐겨 입었다고 한다. 이러한 지리적 그리고 종교적인 배경 때문에 초록은 그들에게 있어 비옥함과 평화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상서로움 그 자체이다.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국가들의 국기만 보아도 초록에 대한 열정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각종 관개수로와 오일머니로 아부다비 시내 곳곳에서 대추야자나무나 잔디를 만날 수 있지만 차를 끌고 나가 도시 외곽을 둘러보면 모래 먼지와 흙만 나뒹군다. 이를 보고 있노라면 가끔은 마음조차 메마른 느낌이 든다. 그와 비교되는 살랄라의 생동감은 당연지사 아랍 사람들의 마음을 매료시켰을 것이리라.

한국인에게는 다소 약소한 푸름에도 불구하고 살랄라 여행을 추천하겠냐 물어보면 나는 자신 있게 “YES”를 외칠 것이다. 살랄라의 매력은 그것 하나뿐이 아니기 때문이다. 9월 말이 되면 몬순에 의해 어둑했던 하늘이 말갛게 걷히고 성난 파도도 잠잠해진다. 깎아지른 듯 아찔한 절벽 아래에는 맑다 못해 투명한 아라비아해가 펼쳐져 있다. 운이 좋으면 해안가에서 뛰노는 돌고래를 만날 수 있는데 그러한 해변이 도시 곳곳에 숨겨져 있다고 하니 이를 발견하는 묘미 또한 훌륭하리라. 그뿐인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향나무(보스웰리아) 재배지가 있어 예로부터 유향 무역으로 유명했던 지역이었던 만큼 아랍의 향을 느끼기엔 이루 말할 수 없이 훌륭하다. 유향은 예로부터 귀한 보물로 여겨졌으며 최근에도 약재와 화장품 등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를 태워 향을 맡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하여 명상의 도구로도 사용되고 있다. 도시 어디에서도 화를 내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니 유향이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데 효과가 있는가보다. 길게 석양이 지는 퇴근길에 풀을 뜯던 낙타떼가 도로를 가득 메워 교통 체증이 빚어져도 누구 하나 경적을 울리거나 불편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에 발맞추며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삶에 익숙해져 있는 나에게 살랄라의 시간은 좀 더 느긋하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그들의 성서에서 말한 낙원이 살랄라와 비슷한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아부다비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조혜임

조혜임


▶조혜임

국내외 기업에서 커뮤니케이터로 일했다. 현재는 남편, 쌍둥이 딸과 아랍에미리트연합에 거주하며 현지의 일상을 글과 그림에 담아 소셜 플랫폼에 연재하고 있다.


<조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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