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맞은 일대일로, ‘공동발전 모델’인가 ‘채무의 덫’인가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사이 월드] 10년 맞은 일대일로, ‘공동발전 모델’인가 ‘채무의 덫’인가

중국의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오는 7일로 정확히 10년을 맞는다. 지난 10년 간 일대일로 사업은 중국의 서쪽인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에서 시작해 아프리카·유럽을 잇고 바다 건너 미국의 ‘뒷마당’인 중남미까지, 지구 한 바퀴를 도는 규모로 확장됐다. 중국은 다음달 17일 베이징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세계 30여개국 정상을 초청해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을 개최하는 등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일대일로는 적지 않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서방은 중국이 일대일로를 앞세워 개도국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한 후 빚을 갚지 못하면 항만 등 기간 시설 운영권을 차지하는 방식으로 ‘채무의 덫’을 놓고 있다고 비판한다. 실제 스리랑카, 잠비아, 우간다 등이 중국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았다가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졌거나 경제 위기에 처해있는 국가들이다.

일대일로는 과연 중국의 주장처럼 개도국의 ‘공동발전 모델’인가, 아니면 서방의 비판처럼 개도국을 채무의 덫에 빠뜨리는 ‘올가미 협정’인가. 일대일로를 통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겠다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원대한 포부는 실현될 수 있을까.

10년 전 시진핑 제안으로 출발, 152개국과 협정

시 주석은 취임 첫해인 2013년 9월7일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대에서 ‘실크로드 경제벨트 공동 건설’을 주제로 강연하면서 일대일로 구상을 처음 제시했다. 중국과 중앙아시아가 손잡고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실크로드 경제벨트를 만들어 공동 번영과 협력의 시대를 열자는 것이었다. 취임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발표였다.

시 주석은 한 달 뒤 인도네시아 의회 연설에서는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을 연결하는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구상을 제시한다. 이 두 개의 구상은 이듬해 중국이 400억달러 규모의 실크로드 기금을 설립하기로 하고 2015년 3월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외교부, 상무부가 공동으로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21세기 해상실크로드 공동 건설 추진의 비전과 행동’이라는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일대일로 이니셔티브(BRI·Belt and Road Initiative)’로 본격화된다.

일대일로는 정책소통(政策溝通), 인프라연통(設施聯通), 무역창통(貿易暢通), 자금융통(資金融通), 민심상통(民心相通) 등 5통(通)을 핵심운영 메커니즘으로 내세운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기반이 되는 건 인프라연통으로 볼 수 있다. 관련국에 도로나 철도, 항만, 공항 등 각종 인프라 시설 건설을 위한 차관을 제공하고, 중국 기업들이 현지에 진출해 직접 인프라 시설을 건설하기도 한다. 이를 기반으로 관련국과의 무역·교류를 확대해 경제 공동체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같은 일대일로 이니셔티브를 ‘개도국 공동발전 모델’이라고 주장한다. 동시에 이는 개도국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외교적 영향력 확대 수단이기도 하다.

중국은 올해 일대일로 10년을 맞아 대대적인 성과를 내세우고 있다. 최근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지난 10년 동안 152개국과 32개 국제기구가 200여건의 일대일로 협력 문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국가의 83%가 일대일로에 참여했다는 설명이다. 동시에 일대일로 참여국에 건설한 역외경제무역협력구에서 42만1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는 점도 성과로 내세운다.

중국은 일대일로 건설로 2030년까지 관련 국가에서 760만명이 극단적 빈곤에서 벗어나고, 3200만명이 차상위 빈곤에서 벗어나며, 전 세계 소득이 0.7∼2.9% 증가할 것이라는 장밋빛 청사진도 제시한다.

부채의 함정, 중국에도 부메랑

그러나 10년을 맞은 일대일로는 적지 않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부채의 함정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급선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에 대해 “기본적으로 부채와 올가미 협정”이라며 “그들은 (중국에) 채무가 있고 진짜 곤겅에 처했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중국이 개도국에 차관을 제공해 인프라 사업을 하면서 해당 국가를 중국에 종속시키는 ‘부채 함정 외교’와 ‘약탈적 대출’을 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실제 지난해 ‘국가 부도’ 사태에 빠진 스리랑카는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차관을 빌려 항만과 공항, 도로 등 대형 인프라 사업을 추진했지만 실적 부진으로 빚더미에 올랐다. 스리랑카는 2010년 중국으로부터 돈을 빌려 함반토타 항구 개발을 추진했지만 운영 적자에 시달리다 빚을 갚지 못하고 99년 동안 장기 임대하는 형식으로 중국 국영기업에 항만 운영권을 넘겨주기도 했다.

빚을 갚지 못해 중국에 항만 운영권을 넘겨준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구. | AFP연합뉴스

빚을 갚지 못해 중국에 항만 운영권을 넘겨준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구. | AFP연합뉴스

중국의 부채 문제는 2020년 아프리카 빈국 잠비아가 디폴트에 빠졌을 때도 불거졌다. 당시 대외부채의 3분의 1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던 잠비아는 달러 고갈로 인해 대출 이자 지급 중단을 중국에 요청했지만 거부당하면서 결국 디폴트를 선언했다.

AP통신은 지난 5월 잠비아와 스리랑카, 우간다, 케냐, 몽골, 라오스 등 디폴트에 빠졌거나 경제 위기에 처한 12개 빈국을 대상으로 채무 상황을 분석해 이들 국가 대부분의 외채 50% 이상이 중국 채무이며, 정부 세수의 3분의 1 이상을 중국에 대한 부채 상환에 쓰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중국은 일대일로 명목으로 지급하는 자금에 통상 IMF(국제통화기금)의 약 두 배 수준인 연 5% 금리를 적용한다

AP는 중국의 일대일로가 애초 개도국의 주요 자원을 독식하고 경제·외교·안보적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의도가 담긴 사업으로, 투자 대상국 입장에서는 합당한 수익 창출이 불가능한 구조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이 같은 비판을 부인한다. 일부 개도국이 직면한 부채 위험 증가는 다양한 외부 요인에 의한 것이며 일각에서 이를 이용해 중국에 ‘부채의 함정’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3월 관련 질문을 받고 “우리는 어느 나라에도 결코 돈을 빌리라고 강요하거나 빚을 갚으라고 강요하지 않으며, 아직까지 일대일로가 부채의 함정을 만들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는 파트너 국가는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지난 7월 발표된 퓨리서치 설문 결과 케냐, 나이지리아 등 일대일로를 통한 중국 자금 유입이 많았던 국가들에서 중국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답한 비율은 각각 23%, 15%에 불과했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든 일대일로 참여국의 부채 문제는 중국에도 부메랑이 되고 있다. 중국도 부채의 함정이라는 비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빚을 독촉하기가 어려워졌고 돌려받을 수 없는 악성 채무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컨설팅업체 로디움그룹은 2020년부터 지난 3월까지 일대일로 사업을 위해 중국이 상대국 인프라 건설을 위해 제공한 부채 가운데 785억달러가 탕감되거나 재협상을 통해 상환 기간을 연장했는데 이는 2017∼2019년에 탕감 또는 재협상된 부채 170억달러보다 4배 이상 많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오른쪽)이 안토니오 타야니 이탈리아 외교장관과 지난 4일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후 이동하고 있다. 이날 왕 부장은 이탈리아가 일대일로 사업 협정 탈퇴 의사를 드러내자 지속적인 참여를 요청했다.  I AP연합뉴스

왕이 중국 외교부장(오른쪽)이 안토니오 타야니 이탈리아 외교장관과 지난 4일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후 이동하고 있다. 이날 왕 부장은 이탈리아가 일대일로 사업 협정 탈퇴 의사를 드러내자 지속적인 참여를 요청했다. I AP연합뉴스

포기 못 하는 시진핑표 사업, 전략 수정할 듯

여러 측면에서 시 주석이 야심차게 시작한 일대일로 사업은 동력을 잃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일대일로는 중국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프로젝트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장훙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연구원은 포린폴리시에 “일대일로는 시진핑 개인의 정치적 유산과 밀접하게 엮여 있다”며 “중국이 일대일로 실패를 인정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10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일대일로 띄우기에 나선 중국은 다음 달 베이징에서 개최할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 준비에 특별히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정상포럼에 대해 “일대일로 제안 10주년을 기념하는 가장 중요한 행사이자 모든 당사자가 고품질 일대일로 협력을 상의하는 중요한 플랫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은 10년의 명암을 돌아다보며 일대일로에 일정한 전략 수정도 가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처럼 대규모 인프라 건설에 주력하기 보다는 다른 분야로의 확장을 꾀할 가능성이 크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일대일로 사업의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줄어든 반면 광물과 광산 분야 투자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를 두고 중국이 일대일로 구상 초기 집중했던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 투자에서 벗어나 ‘고품질’이나 ‘작지만 아름다운 거래’에 집중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이클 콜 미국 국제공화당연구소 중국 선임 고문도 포린어페어스 기고에서 “중국은 거대 인프라 프로젝트에서 벗어나 일대일로의 지속 가능한 모델 추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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