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책, 모비 딕’에서 에코페미니즘을 읽다···여성·자연에 대한 착취 문명 반대하는 에코페미니스트들의 글들

김종목 기자

허먼 멜빌의 <모비 딕>(1851)은 ‘남성의 책’으로 여겨졌다. 소설 주요 인물 중 여성은 없고, “남성 포경선 선원들의 거친 포경 현장”을 주로 다루기 때문이다. 이미숙(영문학 박사. 몸꿈춤 공간 미류 대표)은 “동시대 인기 작가 너새니얼 호손은 여주인공 헤스터와 목사의 간통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주홍글자>를 출간해서 페미니즘 비평의 텍스트로 꾸준히 연구되어왔는데, 멜빌이 호손과 진지하게 교류하며 일 년에 걸쳐 다시 고쳐 쓴 <모비 딕>에서는 왜 여성 인물을 배제했는지도 오랫동안 의문스러웠다”고 말한다.

자연-물질-여성-동물-몸-에로스에 대한 탁월한 메타포

이미숙이 영어 원서를 읽으며 새삼 발견한 건 “저기 고래가 물을 내뿜는다! (There she blows!)”같은 대사의 여성 인칭대명사 ‘She’였다. 이미숙은 ‘검은 몸의 고래’를 “가부장제 문명에서 주변부로 밀려나 성차별을 받아온 타자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타자’로서, 보이지 않는 여성의 실존적 현실을 고발하는 성 정치학의 메타포임을 오랜 연구 끝에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즉 “남성 포경자들이 작살을 겨누고 추격하는 바다의 검은 고래는 가부장제의 이분법적 체계가 중심에 둔 문명-정신-남성-인간-영혼-로고스의 상대적 위계로 배제하고 억압하며 차별해온 다양한 타자들로서 자연-물질-여성-동물-몸-에로스에 대한 탁월한 메타포”다.

<모비 딕> 2010년 영화 포스터(왼쪽)와 1892년 판 삽화. 출처: 위키피디아

<모비 딕> 2010년 영화 포스터(왼쪽)와 1892년 판 삽화. 출처: 위키피디아

이미숙은 <모비 딕> 89장 ‘잡힌 고래와 놓친 고래’ 편 중 “고래를 버려진 ‘아내’에 비유하면서, 고래의 몸에 마지막 작살을 꽂은 남성이 ‘남편’으로서 법적인 소유권을 획득한다는 포경 관습을 언급”하는 대목을 두고 “여성이 자연·몸·동물·소유물·상품으로 대상화되고 있는 젠더의 불평등과 성적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이 소설이 “자본주의의 개발 논리에 의해 훼손되어온 자연과 성차별을 받아온 여성의 몸이 가부장 문명의 역사에서 핍박과 착취를 동시에 당하고 있음을 고발하는 생태 여성주의 비평으로 읽기에 타당한 텍스트”라고 했다.

흰고래는 여성·여신적 존재

흰고래 모비 딕의 상징성을 두고 수많은 해석이 나왔다. 주류의 해석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 자연 혹은 우주의 상징 또는 신적 존재나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투사체”다. 이미숙은 모비 딕을 “소설의 반전인 희생제물의 위치에 놓인 검은 고래와 반대로 ‘가부장제의 남성 포경자들의 추격을 유혹하면서도 동시에 결국 포경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존재”로 해석한다.

이미숙은 생태 여성주의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흰고래 상징이 가부장제의 형이상학적 종교와 철학이 세력을 펼치기 이전에 존재했던 고대의 위대한 어머니 여신 종교의 역사를 추적하는 안내자였다”고 말한다. 소설 마지막 장에서 남성 포경자들이 “악의 화신이자 괴물로 투사한 타자로서의 여성·여신적 존재인 흰고래와 사투를 벌이다가, 가모장의 시대였던 5000년 전의 바닷속으로 모두 수장되면서 최후”를 맞이한 장면을 두고 뽑아낸 해석이다.

유방절제술 받은 여성들이 서로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

이미숙은 이 내용을 ‘<모비 딕>의 고래와 여성의 몸’에 정리했다. ‘여성의 몸’을 두고는 “1993년 4월 15일 만 28세에 유방암 진단을 받고 왼쪽 가슴을 절제”한 자기 몸을 이야기한다. 이미숙은 인공보형물을 삽입하는 가슴복원 수술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했다. “오랜 세월 한쪽 유방만 가진 여성의 몸으로 바디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트라우마를 겪어야 했다”고도 했다. 그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더 잘 싸우기 위해 한쪽 가슴을 자른 여전사 부족인 아마존과 정신적 연대감을 느끼면서 항암 투지를 불태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미숙이 ‘자매애’를 느끼며 의지한 이는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엄마, 연인, 시인”이었던 오드리 로드다. 로드는 유방절제술 경험을 페미니스트 시각에서 담은 <유방암 일기>(1980)를 썼다. 이미숙은 로드의 다음 말을 인용한다.

“인공보형물은 ‘무엇이 달라졌는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야’라는 공허한 위안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달라졌다는 바로 그 사실이 내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 차이를 내 삶을 통해 살아냈고, 이겨냈으며, 이제 그 힘을 다른 여성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유방암을 둘러싼 침묵을 이 고통에 대항하는 언어와 행동으로 바꾸려고 할 때,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은 유방절제술을 받은 여성들이 서로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다. 침묵과 비가시성은 무력감을 동반한다. 인공보형물이라는 가면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스스로를 가식에 의존하는 불완전한 존재로 선언하는 셈이다. 이것은 우리가 서로로부터 더욱 고립시키고 인식할 수 없게 만들 뿐만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광기의 결과를 직면하지 않으려는 그 잘못된 안일함까지도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미숙의 글은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창비)에 실렸다. 에코페미니즘 센터 달과나무에서 낸 책이다. 달과나무는 여성환경연대가 에코페미니즘 관점의 담론 생산과 확산을 위해 2020년 설립한 연구단체다. 책 저자 15명은 모두 달과나무 연구원이다. 책 제목은 ‘에코페미니스트의 다짐’ 중 하나에서 따왔다. 다짐은 ‘우리는 다정함과 우정을 북돋운다’ ‘우리는 여성과 자연을 착취하는 문명에 저항한다’ ‘우리는 여성의 몸을 이해하는 새로운 과학을 요구한다’ ‘우리는 먹거리를 자급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우리는 모든 소수자 및 비인간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기억한다’ 등이다. 15명이 쓴 글은 이 다짐과 이어진다.

에코페미니즘은 자본주의 가부장제의 파괴성을 드러낸다

에코페미니즘은 페미니즘과 생태주의를 결합한 말이다. 정의는 여러 가지다. 논의 지형도 복잡하다. 김은희는 ‘불타는 지구에서 페미니스트로 얽혀 살기’에서 “에코페미니스트라 할 만한 이들 사이에서도 ‘어머니 지구’ ‘어머니 설악’ 같은 표현의 사용을 두고 견해가 달라 중간에서 입장을 조율하느라 곤혹스러웠던 경험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모성은 한편으로 가부장제가 여성들에게 덧씌운 신화지만, 어머니 됨(mothering)은 돌봄을 몸으로 익히고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재구성하는 실천이기도 하다”면서 에코페미니즘의 기본 전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종·계급·젠더·섹슈얼리티·신체 능력·종 등을 기준으로 억압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자연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와 닮아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김은희(달과나무 센터장)는 에코페미니즘을 “자본주의 가부장제가 생산적이라 규정한 것들에 내재한 파괴성을 드러내고, 기존 생산의 개념과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여성과 남성, 자연과 인간을 구분하는 이분법을 비판함으로써 자연을 착취할 자원이 아닌 연결된 존재로 보고, 상호돌봄에 기반해 관계를 재구성하고자 하는 이론이자 실천”으로 정의한다.

달과나무 연구원들 각각의 글은 서로 이어진다. 김현미(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우리는 우주로 떠나지 않는다’에서 ‘바로, 여기에서의 정치’, ‘재거주’, ‘기후 감정’을 강조한다. 이 정치는 “자기 돌봄과 지구 돌봄이 하나라는 점을 강조하며, 지구를 다시 살만한 장소로 만드는 재거주화 인식론”이다. 이 정치는 “도피 욕구와 기술환상주의에서 벗어나 즉각적인 행동주의를 채택할 것을 촉구”한다. 김현미는 “최근의 우주 탐색 또한 다른 행성을 식민지화하는 것과 같은 기술환상주의에서 비롯한다”고 말한다.

에코페미니즘의 재거주 정치는 “남성중심의 자본주의가 파괴하거나 억압해온 대상이 다시 정치적 주체로 서는 과정”이다. 이 정치는 가부장제, 인종주의, 제국주의, 종 차별주의를 기원으로 둔 “북반구 엘리트 남성 중심의 세계 경제 성장 모델”을 거부한다.

기후 감정은 수치심, 죄책감, 분노, 두려움, 희망, 슬픔, 연민, 우울 등 생태학적 비상사태에서 생기는 감정이다. 김현미는 “감정은 관심과 성찰을 구성해가는 인간 능력의 일부이며 의식적인 자기 주제화의 성찰 과정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감정적 연대를 만들어 정치적 가능성의 영역을 열어나갈 수 있다”고 했다.

김현미는 땅, 물, 공기와 다양한 생명체 종들의 사라짐과 앞으로 사라질 것에 대해 깊은 슬픔을 느끼는 ‘생태적 슬픔’과 공동체를 구성하고 연대를 이루는 ‘애도’의 감정도 강조한다.

여성, 식민지, 자연을 해방하는 관점

박혜영(인하대 영문과 교수)은 ‘우리 삶은 왜 외롭고 취약해졌는가?’에서 “타자와의 상호부조로 일구는 좋은 삶, 자유, 자율, 자기 결정, 경제적·생태적 기반의 보존, 문화와 생물 다양성”을 뜻하는 자급 의미를 짚는다. 이 자급은 “자본주의, 가부장제, 식민주의와 근대 산업체제의 구조적 착취를 극복하기 위한 접근으로, 경제성장 논리에 희생되어온 여성, 식민지, 무엇보다 자연을 해방시킬 수 있는 관점”이다.

김신효정(달과나무 부센터장)은 ‘땅에서 시작되는 여성 소농운동’에서 자급의 의미를 짚는다. “에코페미니즘의 자급적 관점은 경제활동의 목표를 ‘더 많은 상품과 화폐의 생산’이 아니라 ‘생명의 창조와 재창조’에 둔다. 자급적 관점은 인간과 비인간 세계의 상호존중과 협력 관계 및 참여적 풀뿌리 민주주의를 통해 사회문제와 환경문제의 연결성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땅과 작물이 탄소를 흡수하고, 감축하게” 만드는 농생태학, 유기농업, 대안농업을 비롯한 생태적 농법도 소개한다. 김혜련(작가)은 ‘자급하는 삶과 몸의 기쁨’에서 15년을 “땅에 몸을 구부리고 씨앗을 심고 모종을 옮기고 풀을 뽑고 양파를 캐”는 일에서 경험한 자급의 삶이 주는 자부심과 위엄, 자기확신, 적극적 기쁨을 이야기한다. “삶의 높은 밀도, 우아함, 이 세계에 받아들여지는 충만함, 자연에 대한 경이, 생명의 신성성, 꽉 차서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삶의 무한한 확장과 연결”에 관한 이야기다.

‘남성의 책, 모비 딕’에서 에코페미니즘을 읽다···여성·자연에 대한 착취 문명 반대하는 에코페미니스트들의 글들

책에 참여한 이들은 연구자, 활동가, 예술가, 농민 등이다. 퀴어 여성과 트렌스젠더 아이를 둔 어머니도 각각 자기 경험과 에코페미니즘을 연결한 글을 썼다. 황선애(독문학박사, 성소수자부모모임 운영 위원)는 ‘트랜스 경험과 퀴어 상상력’을 냈다. 황선애의 “트랜스 경험은 트랜스젠더 자식의 부모가 되는 것”이었다. “성소수자를 볼모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일부 기독교 단체가 보여주듯, 혐오와 차별은 더욱 심해지”는 현실 등을 지적한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유럽 식민주의자들도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를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원주민들의 문화 관행을 근절 대상으로 보고 자신들의 침략을 정당화”했다. 중세 마녀 처형식에서 남성 동성애자들도 함께 처형할 때 사용한 나무막대기 다발이 영어로 ‘faggot’(남성 동성애자들을 비하하고, 모욕하는 말)이라는 역사도 불러낸다.

이성애 규범성에 저항하는 ‘퀴어 생태학’

황선애는 오랜 기간 이어진 ‘이성애 규범성에 대한 저항’과 ‘퀴어 생태학’을 이어낸다. “이성애 규범성에 저항하는 것이 환경문제와 기후 위기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자연파괴·여성 비하·성애혐오의 뿌리가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구 기독교 문화는 인간(남성)중심주의로 여성을 비하했고 여성과 자연을 동일시하면서 자연을 착취의 대상으로 보았으며 남녀의 결합을 통한 생식을 제외한 모든 다른 형태의 성애 형태를 잘못된 것,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해 억압했다.”

황선애는 한국의 일부 기독교 집단의 이성애 중심주의 고수, ‘정상 가족’ 옹호와 연결된 혐오를 “인간을 포함한 자연 세계의 다채로움과 다양성에 대한 무지를 드러낼 뿐이며 무엇보다 생명에 대한 감수성 결여를 보여준다”고 했다. “트랜스젠더와 퀴어는 인간의 생물학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전형이며 인간 정체성의 경계를 확장하는 소중한 존재”라고 했다.

제기랄 썩지도 않고 불멸할, 플라스틱 지층

책은 논문과 에세이, 비평이 열린 채 이어진다. 나희덕(시인,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은 ‘인류세의 퇴적물과 흙의 시학’에서 “흙에 깃들어 있는 생명의 역사와 생물 다양성을 살아 있는 감각”으로 느끼는 시인 정현종의 시 ‘한 숟가락 흙 속에’ 등을 소개한다.

“한 숟가락 흙 속에/ 미생물이 1억 5천만 마리래!/ 왜 아니겠는가, 흙 한 술,/ 삼천대천세계가 거기인 것을!/ 알겠네 내가 더러 개미도 밟으며 흙길을 갈 때/ 발바닥에 기막히게 오는 그 탄력이 실은/ 수십억 마리 미생물이 밀어올리는/ 바로 그 힘이었다는 걸!”(시 전문)/

나희덕은 “이렇게 남아 있는 흙의 생명력을 노래하는 일은 여전히 시인에게 주어진 권리이자 책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의 시 ‘플라스틱 산호초’도 소개한다. 그 시에서 “아주 가볍고 단단하고 질기고 반짝이고 게다가 값이 싼” 이 물질 없이 살 수 없는 ‘플라스틱 중독자’ 또는 ‘플라스틱-인간’이 불러낼 파국을 이렇게 적었다. “점점 뜨거워지는 대기 속에서/ 인간은 색색의 플라스틱 화합물이 되어가고/ 결국 플라스틱 지층으로 발굴될 우리의 세기, 제기랄 썩지도 않고 불멸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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