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화 성공 13종 구리핀, 로봇이 모터코어에 198개 ‘쏙쏙’

이재덕 기자

전기차 심장 ‘구동모터’ 생산 현대모비스 대구 공장

현대모비스 대구공장 모터 생산라인에서 로봇이 모터에 씌우는 하우징을 옮기고 있다. 현대모비스 제공

현대모비스 대구공장 모터 생산라인에서 로봇이 모터에 씌우는 하우징을 옮기고 있다. 현대모비스 제공

동력 성능에 가장 핵심인 코일기술
사각형 구리핀으로 밀도 10% 높여
코로나 때 외국 기술진 입국 못해
“국산화 계기, 월등한 기술 개발로”

희토류 쓰는 네오디뮴 영구자석은
중국 의존 등에 대체재 개발 추진
인휠·유니휠 등 신기술도 개발 중

지난달 21일 대구 달성에 있는 현대모비스의 전기차 모터 공장. 한쪽에 둥글게 말린 구리선과 전기강판으로 만든 원기둥 모양의 모터코어가 쌓여 있었다. 각각 LS전선과 포스코인터내셔널이 공급한 모터 소재·부품이다. 자율주행 로봇들이 공장 바닥에 그려진 노란 선을 따라 이동하며 구리선과 모터코어를 실어날랐다. 2021년 3월 가동을 시작한 공장으로, 아이오닉 5와 코나 EV 등 현대자동차그룹의 전기차에 들어가는 구동모터가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엔진과 변속기 등이 들어간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에서 핵심은 배터리와 구동모터다. 배터리 표준 경쟁이 정리되고 나면 같은 에너지로 얼마나 효율이 높고, 힘 좋은 동력 성능을 내느냐는 본격적인 싸움이 예상된다. 내연차의 연비나 출력 경쟁과 비슷하다. ‘전기차의 심장’인 구동모터 관련 기술 경쟁은 날로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구동모터는 모터코어에 구리선을 감아 만든 전자석(고정자) 안에, 영구자석 역할을 하는 다른 모터코어(회전자)를 넣어 만든다. 고정자의 전자석과 회전자의 영구자석이 서로 당기고 밀어내면서 회전자를 돌리는 방식이다.

이날 고정자를 만드는 ‘스테이터 공정’에서는 말려 있던 구리선이 조금씩 풀리면서 기계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공정을 안내한 직원은 “구리선이 촘촘하게 많이 감길수록 전자석의 자성이 세진다”고 말했다. 구리선이 감기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정작 기계 밖으로 나온 건 세로 15㎝·가로 8㎝ 정도 되는 ‘V자’ 형태의 ‘구리핀’이었다. 머리핀과 비슷한 모양이라 이름마저 ‘헤어핀’이다.

모터 고정자에 헤어핀이 감겨있는 모습. 현대모비스 제공

모터 고정자에 헤어핀이 감겨있는 모습. 현대모비스 제공

모터코어 둘레에 총 13종의 헤어핀을 198개 꽂아 넣은 뒤 핀 끝을 용접해 서로 연결하면 코일이 완성된단다. 헤어핀 단면은 원형이 아닌 사각형이었는데, 이런 헤어핀으로 코일을 형성하면 고정자에 더 촘촘하게 구리선을 넣을 수 있게 된다고 직원이 설명했다. 기존 원형 코일 방식 대비 밀도가 10% 높아졌다. 둥근 구슬은 한곳으로 모으면 사이에 틈이 생기지만, 사각형 블록은 틈이 생기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헤어핀을 만들고 고정자에 연결하는 모든 작업은 로봇에 의해 이뤄졌다. 다만 헤어핀 제작 기술 자체가 상당히 까다로워서 모터 제작에 헤어핀 권선(코일) 방식을 도입한 전기차 업체들은 헤어핀 불량률을 낮추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이전까지 현대모비스도 헤어핀을 생산한 적이 없이 유럽에서 관련 설비를 들여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럽 기술진이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면서 한동안 헤어핀과 아이오닉 5 생산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회전자로 쓰이는 모터코어에는 희토류인 ‘네오디뮴’이 포함돼 있다. 처음에는 자성이 없어 쇠붙이를 갖다 대도 붙지 않는다. 이 모터코어가 강한 자기장이 있는 원통형 장치 안으로 들어가더니 순식간에 영구자석으로 바뀌었다. 네오디뮴계 자석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영구자석이다. 빠른 회전 속도와 강한 토크(힘)가 필요한 전기차 모터에도 대부분 네오디뮴계 영구자석이 활용된다. 다만 시중의 네오디뮴은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되다 보니 국제 정세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채굴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심한 것도 단점이다.

이에 최근에는 희토류를 원료로 쓰지 않는 모터 개발이 한창이다. 테슬라는 지난 3월 “모터에서 희토류 자석을 제거할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현재 테슬라는 페라이트 자석 기반의 구동모터 개발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차그룹도 네오디뮴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모터 개발을 위해 지난해 남양연구소에서 관련 설계 인력을 보강하고 연구를 진행 중이다.

차업계에서는 모터 등 구동 부품을 하나로 합치고 소형화하는 기술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대구 공장에서는 모터 옆에 감속기를 붙여 일체형으로 만든다. 모터에서 발생한 회전 속도를 줄이고 대신 높은 토크를 만들어내는 장치다.

현대모비스는 아예 각각의 바퀴 안에 모터와 조향 기능까지 넣은 ‘인휠’ 모터도 개발 중이다. 공간 활용도를 높일 수 있고 제자리에서 360도를 도는 등 상상하지 못했던 주행도 가능해진다. 양쪽 바퀴에 모터를 나눠 장착할 수 있다 보니 최고출력이 80㎾인 소형 모터를 사용해도 아이오닉 5 후륜 모터 출력(160㎾)과 맞먹을 정도다. 다만 내구성 유지를 위한 기술적 난도가 높다. 현대차그룹은 모터를 제외한 다른 구동 부품만 바퀴에 넣은 ‘유니휠’ 등의 장치도 개발하고 있다.

코일·자석·인휠 등의 모터 기술 중 지금 당장 가장 중요한 것은 구리선을 감는 코일 기술이다. 대구 공장은 지난 4월 헤어핀 기술 국산화에 성공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코로나19 당시 유럽 기술자들이 입국하지 못했던 일이 오히려 기회가 됐다”며 “이후 연구진이 대구 공장에 계속 머물면서 월등한 헤어핀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산화 기술로 모터 불량률을 현저히 낮췄다고 현대모비스는 설명했다. 현대차가 미국에 짓는 전동화 공장에도 이 같은 모터 기술이 적용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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