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 하도급 대금 ‘어음’ 남발…노동자들 임금 못 받아

심윤지 기자

하청사, 현금화 어려움…건설 사업장 11월분부터 미지급

태영건설이 시공 중인 현장에서 임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는 건설노동자들의 증언이 나왔다.

태영건설은 자금난을 이유로 하도급업체에 어음 발행을 남발하고, 하도급업체는 어음을 현금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임금 지급을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후폭풍이 하도급업체를 넘어 ‘가장 약한 고리’인 현장 노동자로까지 전이되는 모양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8일 서울 성동구 용답동 역세권 청년주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태영건설 직원들의 12월 급여는 정상적으로 지급된 반면 태영건설이 시공한 건설 현장의 모든 노동자들은 11월 임금을 아직도 못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가 파악한 임금 미지급 사업장은 서울 용답동, 상봉동, 묵동 청년주택 시공 현장 등 총 3곳이다. 건설노동자들은 매달 1일부터 31일까지 일한 임금을 다음달 15일 받는다. 그런데 일부 협력업체는 원청인 태영건설이 대금을 ‘60일 만기 어음’으로 줬다며 11월 임금 지급일을 지난달 말일로 미뤄줄 것을 요청했다.

노조는 이에 동의했지만, 약속된 날짜가 지난 이날 오전까지도 임금은 지급되지 않았다. 기자회견 직전 용답동 현장 노동자들은 체불임금 전액을 정산받았지만, 상봉동·묵동에서는 40명 이상의 체불임금 2억원이 아직 남아 있는 상황이다. 상봉동 현장에서 일한 철근노동자 박철민씨는 “하루 일해 하루 사는 노동자들은 약속된 지급일에서 10일만 넘어가도 신용불량자가 된다”며 “결국엔 받게 될 돈이라지만 지급일이 조금만 밀려도 노동자들에게는 피해가 크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의 임금체불 배경엔 태영건설의 광범위한 어음 발행이 있다. 태영건설은 유동성 위기가 본격화한 지난해 9월부터 일부 현장의 하도급 대금을 현금 대신 60일 만기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외담대)로 지급했다. 워크아웃 신청 직전엔 외담대 만기를 60일에서 90일로 변경했다. 외담대는 협력·납품업체로부터 물품이나 자재를 구입한 원청업체가 현금 대신 외상매출채권을 끊어주면, 납품업체가 은행에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는 구조다. 원청업체가 만기일까지 채권을 상환하지 못하면 대출을 받은 당사자인 하청업체가 피해를 입는다.

협력업체들은 2013년 건설사 워크아웃 당시 줄도산의 주범으로 꼽혔던 외담대가 연장되자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2일부터 태영건설 하도급업체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대한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직접적인 대금 미지급은 보고되지 않았지만 어음이나 외담대 발행으로 인한 피해 사례는 일부 접수됐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태영건설이 하도급 대금을 현금 대신 외담대로 지급한 것이 이례적이라고 본다. 30년 넘게 철근 작업을 해온 박씨도 “원청사가 하도급 대금을 어음으로 지급했다는 것은 근 10여년간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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