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책건문’은 <화장실 전쟁>(알렉산더 K. 데이비스 지음, 조고은 옮김, 위즈덤하우스)입니다. 제목에서 짐작하실 수 있듯 미국의 공중화장실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을 다룹니다. 출판사는 “가장 사적이면서 공적인 공간에서 펼쳐진 특권, 계급, 젠더, 불평등의 정치”라는 선전 문구를 달았네요. 출판사 선전 문구는 과할 때가 많은데, 이 문구는 적절해 보입니다.
클린턴이 TV토론 무대에 제때 오르지 못한 이유는
책 내용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화장실과 젠더 문제를 두고 미국은 진보 추세에서 퇴행 또는 정체를 반복합니다. 2015년 4월8일 미국 오바마 정부는 백악관 아이젠하워 행정동 건물에 성중립 화장실을 선보이죠. 백악관 단지에 최초로 설치한 성중립 화장실입니다. 같은 해 12월 대통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민주당 TV토론 쉬는 시간이 끝나기 전 무대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세인트 안셀름 대학에 설치된 토론 무대에서 여자 화장실까지 “들렀다 오는” 데 남자 후보들보다 시간이 더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뉴욕타임스 보도를 보면, 여자 화장실이 남자 화장실보다 먼 데 있어 벌어진 일입니다. 클린턴 측이 사전에 연단과 화장실까지 거리를 측정하고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지만, 체육관 환경 때문에 방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가 클린턴이 화장실 간 일을 두고 역겹다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죠.
트럼프 비슷한 사람이 또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나의) 여성적인 면을 발견해서 여자애들과 함께 샤워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뻔했다.” 아칸소 주지사를 지낸 마이크 허커비가 2015년 전미 종교방송인 대회에서 트랜스젠더 시민들의 화장실 접근권 보장을 위한 법적 개입을 빈정대며 한 말입니다.
문화갈등의 피뢰침이자 정치적 포화의 집결지, 화장실
저자는 “미국에서 공중화장실은 거의 두 세기 동안 문화 갈등의 오랜 피뢰침이었다”고 말합니다. 종종 “정치적 포화의 집결지”가 되곤 했죠. 책은 1880년부터 최근까지 공중화장실을 둘러싼 법·제도와 논쟁 역사를 들여다봅니다. 화장실이 어떤 공간인지도 이야기합니다.
<사회적 관행 및 사회적 상호작용의 “뒤편”, 즉 사람들이 타인의 시야에서 크게 벗어나 있을 때 취하는 행동들에 담긴 동학에 관심을 가진 미시사회학자와 사회심리학자들은 특히 공중화장실이 공공 생활의 한복판에 존재하는 개인적 공간이라는 특성을 지적하며 그곳을 연구의 계시적 장소로서 강조했다.>
공중화장실 사용 여부 문제도 중요합니다. 바로 어떤 몸, 정체성, 공동체가 “공공의 공간에 존재해야 한다고 여겨지는지” “제외되거나 환영받는지”를 암시하기 때문이죠.
공중화장실은 불평등을 유지·확장했다
따라서 화장실은 미국에서 범주적 불평등, 즉 인종, 장애, 사회계층과 같은 집단의 차이에 기반한 불평등이 오랫동안 유지, 확장되어온 중요한 장소이다.
공중화장실이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정치적 배제를 생산하는(그리고 재생산하는) 결정적 장소”로 여겨진 거죠. 한 예로 21세기 초 뉴욕시에서 중상류계급 백인 남성은 그리니치빌리지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가난한 흑인은 그 공간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됐습니다. 인종분리를 의무화하는 짐 크로 법은 학교, 직장, 대중교통센터에 새로 생긴 공중화장실 시설에까지 확산하며 적용됐습니다. “부유한 백인 여성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인식되는 것을 무력화하기 위한 법”이었죠. 그 결과 “공공시설에 대한 접근은 젠더, 계급, 인종의 경계에 따라 분열이 지속되거나, 심화”됐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성별 분리라는 지배적 패러다임의 기원
미국의 공중화장실 설계와 건설 역사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사회적 구분은 바로 성별이죠. 저자는 “성별 분리라는 오늘날 지배적 패러다임의 기원”을 추적합니다.
공중화장실이 처음부터 성별 분리가 이루어진 공간은 아닙니다. 19세기 중반 남성들의 노상 방뇨를 막고 집 밖에서 상업활동을 하거나 취업을 추구하는 여성들을 수용하려 설치한 공중화장실 중 상당수는 모든 성별이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만 해도 공장 및 상업 시설에서 성별 구분 없는 화장실은 흔했습니다.
다만 시설이나 관리는 엉망이었죠. 19세기 공중화장실은 배관이 하수도에 연결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행인 수백 명이 볼 수 있는 장소에 놓여 관리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 결과 19세기 후반 미국에 설치된 ‘공중’ 화장실의 압도적 다수가 호텔, 기차역, 백화점 등 개인 소유의 중산층·상류층 시설에 자리 잡게 됩니다.
성별 분리 화장실은 어떻게 제도화됐을까요. 저자는 ‘화장실 전쟁’이 “전통적 가치와 진보적 가치가 대립하여 논쟁을 벌이는 문화 전쟁과는 성격이 사뭇 달랐다”고 말합니다. 저자가 인터뷰한 성중립 화장실 설치 여부의 의사 결정권자들은 성소수자, 모든 성별의 아동 및 노인을 둔 가정, 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해 성중립 화장실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하거나 당연하다는 데 동의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관성. 즉 과거로부터 성별이 분리된 형태로 조직에 전해 내려온 건축적, 법적 인프라의 완고함”이라며 그 역사를 들여다봅니다.
화장실의 성별 분리 요구가 나온 건 20세기 초입니다. 이 논의는 공장 업무가 여성 신체에 미치는 고유의 위험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매사추세츠주는 공중화장실은 반드시 성별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법을 첫 번째로 통과시켰습니다. 뉴욕주도 여성용 수세식 화장실은 남성용과 떨어진 곳에 있어야 한다고 법적으로 의무화했죠.
자손이 왕성하게 자라려면 건강한 어머니가 필요하다
애초 성별 분리 법령의 근거는 “여성 노동자의 건강 및 복지에 관한 언어”를 취했지만 법 제도화 과정에서 ‘젠더화’도 이루어집니다.
남성은 행동을 통제할 수 없고, 여성은 정조를 지킬 수 없다는 신념
여성을 위한 화장실이나 변기 부족은 지금도 문제죠. 이런 부족 문제를 우려하는 데 어떤 문제가 있다는 걸까요? 저자는 당시 직장 내 성별 분리 화장실을 추진한 입법자들이 “화장실 규제 속에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관한 일련의 문화적 신념을 공개적으로 삽입했다”고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예견된 사회문제에 대한 두려움과 상상된 미래 미국을 보호하려는 욕망으로 인해 1920년대까지 미국의 거의 모든 주가 매사추세츠 및 욕 주에 합류하여 직장 화장실의 성별 분리를 의무화하는 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고, 이 기본 규정에 더하여 다수의 사생활 보호 규제 조항을 추가한 주도 많았다.
저자는 즉 “여성의 몸을 특히 나약하고 취약하고 모성적이며, 그 무엇보다도 성적 약탈의 위험을 겪는 대상으로 구분”한 것을 비판적으로 봅니다.
화장실에 국한된 문제는 아닙니다. 19세기 미국에서 젠더 관계는 “분리된 영역”이라는 은유로 묘사되곤 했습니다.
남녀 모두 자유롭게 외출하며 “내장의 평안”을 누려야
20세기 초 젠더화가 된 화장실조차 부족했죠. 여성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은 백화점 같은 준공중화장실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한 보건 전문가는 “휴식 공간으로 삼을 술집조차 없는 여성들은 오직 백화점 주변에 있을 때만 용변을 볼 수 있다”고 한탄했습니다. 몇몇 정치인들은 “유럽의 여러 공중화장실 모델”의 선례를 따르고 공공 인프라에 투자해야 남성과 여성 모두 도시에서 자유롭게 외출을 하면서 “내장의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후 성별 분리 화장실은 노골적인 성차별 공간이 되어갑니다. 1973년 화장실을 직장 내 성차별의 한 가지 경로로 다룬 최초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오스타포비치 대 존슨 브론즈사 소송은 일군의 여성들이 여성 기계공에 대한 의도적 차별을 주장하며 제기한 것입니다. 여성들은 공장 기계가 조립될 때 “설정을 보고 있지 말고 화장실에 다녀오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중요한 교육을 물리적으로 분리하며 여성 노동자들의 접근을 차단한 것이죠. 1978년엔 여성을 위한 “화장실이 없다”는 이유로 애초에 여성을 고용하지 않으려 한 고용주들이 고발 대상이 됐습니다. 2006년에도 “남자 샤워실이 포함된 남자 탈의실”과 “소방서 반려견을 위한 물과 사료” 등 물품을 보관한 창고에 여자 화장실을 둔 소방국이 소송 대상이 됐습니다.
여성 화장실도 늘 부족했습니다. 1990년 7월엔 텍사스주 휴스턴의 실내 경기장 ‘서밋’에서 콘서트를 관람하던 한 여성이 여성화장실 앞에 60명 가까이 줄 서 있자 남자 화장실을 사용했다가 “해당 개인의 성별과 반대되는 성별 전용으로 지정된” 화장실에는 입장을 금지한다는 휴스턴 지역의 조례를 위반한 혐의로 벌금을 받는 일도 벌어집니다. <히든 피겨스>의 장면이 계속 반복된 것이죠.
성중립 화장실의 물결이 나타나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도 오래 공격이나 배제의 대상이 됐습니다. 2005년엔 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남자 화장실을 사용하면서 심각한 신체적 상해”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고, “자신의 사생활이 침해”당하는 것을 우려하게 되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지만, 법원은 “성확정 수술을 완료”하면 해결될 것이라며 피고 편을 들었습니다. 여러 법원이 “트랜스젠더 여성들은 성확정 수술을 이행하지 않는 한 화장실 사생활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앞서 예를 든 허커비 사례처럼 성중립 화장실을 두고도 오랫동안 비아냥과 조롱, 혐오와 배제가 이어집니다.
“남녀공용 화장실의 망령”이라는 선전이 동원된 적도 있습니다. 1970년 8월 “법에 따른 권리의 평등은 성별을 이유로 연방이나 주에 의해 감소되거나 축소되어선 안 된다”고 명시한 수정헌법의 ‘성평등 수정안’을 위한 ‘평등을 위한 여성 파업’이 벌어졌을 때 반대파들은 “만일 성평등 수정안이 통과되면, 우리는 남녀공용 화장실을 써야만 하게 될 것”이라며 반대했죠.
그럼에도 미국의 공중화장실은 진보해왔습니다. 1980~1990년대는 도서관, 박물관, 레스토랑, 시민센터에서 새로운 화장실, 즉 성중립 화장실의 물결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순조롭진 않았지만, 변화를 시도한 것이죠.
2009년에서 2016년 사이 학부생에게 성중립 기숙사 및 화장실을 제공한다고 공개적으로 보고한 대학의 수는 4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저자는 다중시설에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한 의사 결정권자들도 인터뷰했습니다. 한 쇼핑몰에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한 담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2016년 3월 노스캐롤라이나주 의회가 교육, 공공, 업무 공간에서 성별 분리 화장실에 대한 접근을 생물학적 성별이 화장실 문에 지정된 성별과 일치하는 사용자로 제한한 ‘공공시설 사생활 보호에 관한 법률’을 승인했을 때 반대 운동이 일어났죠. 이 법안이 통과된 직후 조지아주의 애선스시의 어느 식료품점이 성중립 화장실에 새로 붙인 안내문 사진이 크게 화제가 됐죠.
친구들이 모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찾아올 수 있도록
저자가 책에서 강조하는 건 ‘공공성’입니다. “성중립 화장실이라는 것은 21세기의 그 어떤 조직에도 가치 없는 목표가 아니지만, 진정으로 화장실에 혁명을 일으키려면 공공성을 민영화하는 모델로부터는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모든 젠더의 사람들에게 열려 있고, 서로 다른 신체를 가진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포용적 화장실’을 공공재이자 집단적 접근 방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모두의 화장실’이 민간 영역에서 주로 이뤄지는 점을 두고 한 말인 듯합니다.
책은 모두의 화장실을 두고 한국에서 벌어진 일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국도 혐오와 배제, 진보가 동시에 이뤄집니다. 한국다양성연구소는 모두의 화장실에 관한 여러 자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