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푸크너(하버드대 영문학과 비교문학 교수)의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허진 옮김, 어크로스) 원제는 ‘Culture: The Story of Us, From Cave Art to K-Pop(문화: K팝부터 동굴 예술까지, 우리들 이야기)’입니다.
K팝 이야기는 별도 장에서 다루진 않고, 에필로그에 나옵니다.
K팝은 문화사의 순환·혼합 지향을 일깨워주는 사례
케이팝이 부상하자 반한감정뿐 아니라 이것이 전혀 한국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뒤따랐다. 케이팝이 전통적이거나 전형적인 한국예술을 대표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가나가와의 거대한파도>가 전통적이거나 전형적인 일본 예술을 대표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다), 케이팝이 1950년대에 미군 기지에서 공연했던 그룹을 비롯한 한국 걸그룹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원기 왕성한 걸그룹들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발전했는데 군사독재 기간 검열을 회피할 수 있었다는 것도 그 부분적 이유였다.…1997년 금융위기 이후 케이팝은 이름과 제목에 영어를 더 많이 쓰면서 새롭게 거듭났고, 이 새로운 현상을 나타내는 용어가 한류에서 ‘케이팝’으로 대체된 것도 그때였다. 그리고 곧 일본, 호주,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일부, 북미 및 유럽에서 상당한 10대 청중을 확보했다.(내가 오슬로에 사는 노르웨이 친구 집에 방문해서 아침 식탁에 앉았을 때 그 집 막내가 한국어 교본을 열심히 읽던 모습이 기억난다‘ 열두 살 짜리 아이가 자신의 우상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아침 식사 전에 혼자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강남스타일’ 패러디 영상이 수없이 만들어진 사실을 두곤 “K팝 해외 팬들의 창의적 에너지를 잘 보여준다”고도 했습니다. 푸크너가 K팝 과거와 현재를 두고 말하려는 건 문화의 ‘이동과 공유’입니다. K팝을 “문화사가 순환과 혼합을 향하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좋은 사례”로 소개합니다.
푸크너는 사상, 서사, 음악 같은 문화와 관련된 15가지 역사 에피소드에서 공유, 순환, 혼합의 순간을 찾아냅니다. 문화의 접목, 차용, 저장, 재발견, 쇠퇴, 부흥을 들여다봅니다. 문화접촉이 지리적으로 넓은 지역에 걸쳐 확산할 때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유산을 발견”한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서문에선 “민족 고유의 문화”나 “자문화의 우수성” 같은 고립, 순수, 소유를 강조하는 이들의 문제부터 살핍니다.
원조 주장은 우월성과 소유라는 주장을 뒷받침
누가 문화를 소유하는지를 두고 지금도 싸우죠. 푸크너는 “우리는 독창성과 온전함, 전유와 혼합에 관해 논의하다가 때로 문화가 소유물이 아니며 다른 사람들도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건네주는 것이라는 사실임을 잊는다” “우리는 문화를 평가할 때 독창성을, 언제 어디서 처음 발명되었는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원조라는 주장은 종종 우월성과 소유라는 미심쩍은 주장을 뒷받침할 때 사용된다”고도 말합니다.
푸크너가 보기에 문화는 “과거의 작은 파편들을 가져와 새롭고 놀라운 의미 생산 방식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재활용 프로젝트”입니다. 문화 소유라는 생각을 거부하며 이 프로젝트를 수행한 이들 중 하나가 몰래 인도로 가 불교 경전을 가지고 돌아온 중국인 현장 법사입니다. 현장은 “문화 이동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힘, 즉 수입된 문화의 머나먼 기원에 대한 유혹”에 이끌린 인물입니다. “(나중에 성지를 찾아 떠나는 기독교도들처럼) 수입된 문화를 쫓아서 그 근원을 찾아간 사람을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각 지역의 지리적 정보를 제공하고, 주민과 문화, 언어, 문자 체계를 설명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대당서역기>는 여행기를 대표하는 고전으로서 문화 이동에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푸크너는 “여행자에서 신화적 인물이 된 현장은. 때로는 만리장성 때문에 외부 세계를 차단한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은 중국 문화가 문화 수입의 중요 사례임을 상기시킨다”고도 말합니다.
문화는 번역가의 노고에 의지한다
푸크너가 여러 문화 이동의 역사에서 주목한 건 ‘번역가’와 그 역할입니다. 이탈리아어의 번역가 트라두토레(traduttore)와 반역자 트라디토레(traditore)는 발음이 비슷합니다. 이 사실을 이용한 농담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은 번역가에게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경향이 있죠. 푸크너는 “우리는 번역가 덕분에 다양해진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때때로 인정받지 못하는 번역가의 노고에 모든 문화가 의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불교 문헌은 인도어에서 중국어로 번역됐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 살면서 그리스어를 쓰는 유대인들은 히브리 성경을 그리스어로 옮겼습니다. 아랍과 페르시아 학자들이 그리스철학을 번역했습니다. 아테네 고대 역사를 기록해 남긴 곳은 이집트입니다.
푸크너는 로마인의 번역을 두곤 “놀라운 문화적 접목 실험의 일부”라고 말합니다. “그리스 문화에서 로마 문화로 자연스럽게 발전했다는 잘못된 생각이 퍼진 것은 이 실험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문화적 접목이 잘 통했던 것이다.”
여행자는 번역가와 마찬가지로 문화적 경계를 넘나드는 인물이며 한쪽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종종 비난받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발생하면 번역가와 여행자 모두 유난히 면밀하게 조시를 받고 종종 첩자로 오해받습니다. 현장도 첩자로 의심받은 적이 있습니다.
“로마는 그리스를 패배시켰다고 해서 그리스 문화를 경멸하지는 않았다”
실험의 성공엔 또 하나의 근거가 있습니다. “로마는 그리스를 패배시켰다고 해서 그리스 문화를 경멸하지는 않았다.” 타임캡슐이라 불리는 폼페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서기 79년 로마의 일상에 대해서 아는 것 대부분이 이 지방 도시 하나에 바탕”을 뒀죠. “어떤 시민이든 폼페이를 한 바퀴 돌면서 그림만 봐도 그리스 문화 속성 강좌를 듣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정도입니다. 에우리피데스의 연극 장면,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페르시아의 다리우스가 맞불은 전투 장면 등을 간직했습니다. 그리스 신들에게 바치는 신전도 많았죠.
“폼페이가 보여주는 로마는 전 세계서, 심지어는 적국에서도 예술과 재화를 끌어오는 제국”입니다. 이집트 여신 이시스의 신전과 인도 여신 락슈미 조각상도 나왔습니다. “이집트 신전은 로마가 외국의 영향에, 심지어 오랜 숙적 카르타고의 영향을 받아들이는 데 얼마나 열려 있었는지 보여준다”고 푸크너는 말합니다. 다른 가능성도 있죠. “어쩌면 외국 신들을 로마의 신전에 편입시킨 것은 군사적 승리를 나타내는 표시였을지도 모른다. 인기 많던 디오니소스 숭배가 금지당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는 때로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고 말합니다.
로마인들은 번역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늑대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신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여긴 베르길리우스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같은 서사시 형태로 로마의 기원을 쓴 게 바로 <아이네이스>입니다.
푸크너는 “오늘날 우리는 국가 통치 기술과 (도로에서 목욕탕에 이르는) 기반 시설, 군사 조직, 정치적 통찰력 때문에 로마를 우러러본다. 그러나 로마의 가장 놀라운 유산은 접목 기술”이라고 말합니다. 접목 기술은 후대에도 이어집니다. 베르길리우스처럼 멋진 포르투갈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한 카몽이스가 쓴 게 ‘포르투갈의 국민시’가 된 서사시 ‘우스 루지아다스’입니다. 카리브해 지역 시인 데릭 월컷은 호메로스 작품을 본보기 삼아 세인트루시아에 대한 서사시 <오메로스>를 썼죠.
프랑스 혁명기 예복 차림을 한 흑인 남성 그림 의미
사상도 순환, 혼합, 공유의 과정을 거칩니다. 푸크너는 “유토피아 사회 건설에 몰두한 몽상가들은 아틀란티스 신화에서 영감을 받았고, 과학 소설 작가들은 대안적 미래라는 면에서 플라톤에게 끌렸다”고 말합니다. 1998년 영화 <트루먼쇼>나 이듬해 나온 <매트릭스>, 최근의 메타버스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림자에 불과하며 이데아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 업데이트 버전이라고 말합니다.
푸크너가 사상의 공유 차원에서 주목한 건 안 루이 지로데의 1797년 작품 ‘생도맹그 대표, ’입니다. 그림 속 프랑스 혁명기 예복 차림인 흑인 남자는 장 바티스트 벨리에입니다. 세네갈에서 태어났으나 노예 상인에게 납치되어 프랑스 식민지 생도맹그(현 아이티)에 끌려갔습니다. 그도 노예를 사고판 이지만, 훗날 노예 제도 폐지를 바라게 됩니다. 최초의 흑인 대표로서 식민주의자들에 맞선 생도맹그의 1794년의 혁명 공회에도 참여합니다. 다음을 선포했죠. “국민 공회는 모든 식민지에서 노예 제도가 폐지되었음을 선언한다. 이에 따라 식민지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은 피부색과 상관없이 프랑스 시민이며 헌법에 따라 보장되는 모든 권리를 누린다.”
이 초상화는 “노예 제도, 경제적 착취, 제국주의 야망에 맞서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은 겁니다. 그림 속 벨리에가 기댄 로마 양식 흉상은 계몽주의 철학자가 된 프랑스 예수회 수사 아베 레이날입니다. 노예 제도가 자연을 거스른다고 생각한 인물이죠. 식민 사업 전체가 의존하는 착취의 상업 체계를 분석합니다. 노예 제도를 들여다보면서 돈이 움직이는 경로를 쫓아갑니다. “레이날의 책을 그토록 강력한 무기로 만든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그의 책은 체제의 경제적 뿌리를 설명하고 그것에 맞선 반란을 정당화했다”. 벨리에 같은 생도맹그 반란군은 자신들을 노예로 삼은 국가에서 시작된 계몽주의 사상을 이용한 것입니다.
오해한 것이라도 유익하고 흥미로운 문화가 될 수 있다
문화 접촉에선 여러 일이 벌어집니다. “복잡하고 불안하게 뒤얽힌 파괴와 창조”가 뒤따릅니다. “과거를 파내어 새로운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과정에서 문화를 단절시키고, 오해하고, 오독하고, 차용하고, 절도하는 경우”도 많죠. 한 예로 아소카왕의 석주는 “세워지고, 버려지고, 오해받고, 잊히고, 재발견되고, 옮겨지고, 마침내 다시 해독”됐습니다. 푸크너는 “아스카가 세운 석주에서 배워야 할 진정한 교훈은 이처럼 복잡한 파괴와 창조의 뒤얽힘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알브레히트 뒤러가 설명만 읽고 그린 코뿔소 목판화는 오해의 사례입니다. 수많은 세부를 정확히 포착했지만 두꺼운 가죽 대신 거북이와 비슷한 껍데기를 가지고 있다고 오해했습니다. 수 세기 동안 잘못된 코뿔소 이미지가 유럽에 퍼져나갔죠. 무조건 나쁘게 볼 건 아닙니다. 푸크너는 한 인터뷰에서 “문화를 한데 모으면 오해가 생길 수도 있지만, 적어도 유익하고 흥미로운 문화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뒤러는 새로운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한 열린 사람이었습니다. 새로운 종에 대한 관심으로 코뿔소를 그렸죠. 또 당시 “고귀한 야만인이니 피에 굶주린 식인종이니 하는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진부한 표현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뒤러는 브뤼셀에서 아스테카 제국의 모크테수마 왕이 자신의 해안에 도착한 스페인 원정대의 군인 에르난 코르테스에게 준 순금 태양과 은으로 만든 달, 갑옷과 각종 무기 등을 보고 이렇게 썼습니다.
문화는 혼합하고 차용할 때 번성한다
책에 가장 자주 나오는 말 중 하나는 ‘혼합’입니다. 푸크너는 독립이라는 목표를 위해 그리스 비극을 이용한 소잉카와 <말을 들어라!: 나이자 여자들, 진실을 이야기하다>(2014)를 두고 “문화가 순수할 때 보다 혼합되었을 때, 혼자 갇혀 있기보다 문화적 형태를 차용할 때 번성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고 말합니다. 여성이 직면한 가정 폭력 등을 다룬 나이지리아의 연극 <말을 들어라!>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 엔토자케 샹게가 쓴 20개짜리 독백으로 구성된 연극 <무지개가 떴을 때/자살을 생각한 흑인 소녀들을 위하여>(1976년)와 섹슈얼리티, 관계, 여성에 대한 폭력에 관한 이브 엔슬러의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1996년)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말을 들어라!>는 나이지리아 초연 후 에든버러 연극 페스티벌과 미국 뉴욕의 공공 극장과 하버드대학 등지에서 상연됐습니다.
알 마문 칼리프가 20년의 통치 기간(813~833년)에 언젠가 바그다드에서 꾼 꿈에 등장한 인물은 죽은 그리스 철학자가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바그다드는 다양한 문화권이 모여드는 곳이었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건설한 그리스 세계의 중심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도 아랍 세계에 통합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서로 다른 전통과 지식 분야를 어떻게 결합해야 할지”에 관한 사상 체계를 만들었고, 알렉산드리아 학자들이 이를 다듬었으며, 아랍의 이븐 시나가 통합합니다. 아랍 통치자들은 예전 것을 뿌리 뽑는 대신 보존하고, 번역하고, 자신의 세계관에 통합합니다. 바그다드 학자들은 선지자 무함마드의 “(멀리) 중국에서 왔을지라도 지식을 추구하라, 지식 추구는 모든 이슬람교도의 종교적 의무”라는 말을 추구했습니다.
순수주의자가 문화를 파괴한다
푸크너는 “산사태, 화산폭발 같은 환경 재해뿐 아니라 무지하고 악의적인 외세 침략자와 식민지 개척자들”에게 파괴된 문화사와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낸 다양한 문화의 만남에서 발생하는 폭력도 비판적으로 들여다봅니다. 폭력과 파괴의 핵심은 순수 이데올로기입니다.
또한 순수주의자는 과거와 다른 사회의 의미 생산 전략을 차단하여 자신의 문화로부터 귀중한 자원을 빼 앗는다. 문화는 다양한 표현 형식과 의미 생산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때 가능성과 실험을 통해서 번영한다. 문화 접촉으로 선택지가 증가하면 문화 생산과 발전은 자극을 받는다. 반대로 순수성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대안을 차단하고 가능성을 제한하며 문화 융합 실험을 감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편협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과거를 무시하고 파괴를 용인하거나 장려함으로써 스스로 가난해진다.
문화는 거대한 재활용 프로젝트일 뿐!
푸크너는 침략과 파괴도 다룬다. “문화사에서 종종 그렇듯 파괴 세력이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십자군은 아랍에서 학자들이 쓴 지식의 요약이라는 새로운 과학이 발전했고, 그리스 철학의 아랍어 번역본이 존재한다는 소식을 유럽에 가져왔습니다. 그 결과 비잔티움, 바그다드, 카이로 등지에서 유입되는 문헌이 증가했고, 무엇보다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이 들어 옵니다.
책에 언급된 공동 문화유산을 두고 그 시대의 가치에 동의하거나 도덕적 모범으로 받아들이려 해서는 안 된다고도 지적합니다.
꿈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대화하기 앞서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형제를 죽인 알 마문도 물론 마찬가지다. 계약의 궤를 약탈한 이들은(실제로 발생한 일이라면) 그 절도 행위 때문에 존경할 수 없고 남반구 인구와 문화의 상당 부분을 말살한 유럽 식민지 개척자들은 말할 것 도 없다. 페놀로사처럼 과거를 보존하려던 19세기 고고학자와 역사주의자들은 종종 부주의하게 과거를 파괴했고 대대적인 절도를 저질렀다. 문화를 창조하는 모든 사람은 문화사의 일부인 폭력과 착취에 맞서 싸우고, 가치관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미래가 자신에게 비슷한 관용을 베풀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종종 오류와 몰이해, 파괴가 뒤따른다 해도 과거와 서로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과거의 문화, 서로의 문화와 절연한다는 것은 문화를 살아 있게 하는 산소를 제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무언가가 본래 어디서 나왔는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이다”라며 이렇게 썼습니다.
원제 이야기로 돌아가면, 푸크너는 ‘동굴 예술’을 쇼베 동굴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인간은 곰이 그랬던 것처럼 동굴 표면, 즉 진흙이 얇게 덮인 오래 된 석회암을 손가락이 나 간단한 도구로 긁어 형체와 풍경을 새겼습니다. 동굴 속 그림과 상징, 의식은 다른 관습으로 발전합니다. 푸크너는 “동굴은 인간이 의미를 만드는 장소였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방법에 대한 지식 노하우(know-how)가 아니라 이유에 대한 지식 노와이(know-why)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