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3000만원에 서울서 갈 데는 반지하뿐인데 ‘반지하는 금지’

김원진 기자

전세임대주택 “현실적 지원으로 주거 상향 유도해야”

지난해 6월 서울 성동구의 한 주택가에 장마 대비 물막이판이 설치돼 있다. 문재원 기자

지난해 6월 서울 성동구의 한 주택가에 장마 대비 물막이판이 설치돼 있다. 문재원 기자

정부가 올해 전세임대주택 지원 대상에서 ‘반지하’를 금지해 서울 지역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세금 지원 한도는 지난해에 이어 1억3000만원으로 동결돼 실질적으로 구할 수 있는 주택이 없는 상황 탓이다.

21일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에 따르면 LH는 오는 4월부터 지원하는 전세임대에서 반지하 주택을 제외한다고 공고했다.

전세임대주택은 선정된 입주 대상자가 직접 주택을 찾으면 전세 계약을 LH·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등이 대신 맺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공적 주거 지원 정책이다. 국토부의 주택도시기금을 통해 지원하는데 집주인이 LH·SH와 전세임대 계약 의향이 있어야 한다.

해당 지원에서 반지하를 제외한 데는 열악한 주거지를 퇴출하려는 목적이 크다. 반지하를 공공에서 매입해 비주거용으로 전환하고 기존 거주자는 지상층으로 이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서울에서 보증금 1억3000만원 수준의 전셋집은 원룸조차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20일 기준 네이버부동산에서 검색한 서울 원룸 전·월세 3만5663개 가운데 1억3000만원 안팎의 가격대는 약 1500개로 4.2%에 불과하다.

부동산 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하위 20% 원룸 전세가 평균은 1억1351만원이었다. 이 중 상당수는 오래된 다가구·다세대 주택의 반지하로 추정된다.

청년 거주자가 많은 마포구 망원역 인근에서 가격 조건이 맞는 전세는 16개뿐이었다. 이 가운데 LH·SH 전세임대가 가능하다고 밝힌 곳은 세 군데였는데 한 곳은 반지하였다. 해당 주택의 전세가는 1억4000만원이다. 반지하 주택이 아니면 사실상 구할 수 있는 전셋집이 없는 셈이다.

마포 일대에서 원룸 임대를 찾고 있는 정모씨(26)는 “전세임대주택 매물 자체가 많지 않은 데다 서울에선 정부가 지원하는 가격대로 반지하가 아니면 살만한 집을 찾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서울 성동구의 한 주택가에 장마 대비 물막이판이 설치돼 있다. 문재원 기자

지난해 6월 서울 성동구의 한 주택가에 장마 대비 물막이판이 설치돼 있다. 문재원 기자

또 LH는 물막이판이 설치된 경우는 반지하도 지원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았는데 이에 침수 위험이 주택이 오히려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가 지난해 침수방지 시설 설치를 지원한 2만8439호를 보면 침수 위험이 크거나 침수 이력이 있는 주택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에 전세임대주택 지원액 한도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정부와 지자체의 공공임대주택 물량·예산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기존 주택을 활용한 전세임대주택은 그나마 대상자들이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수단이다.

예산은 2017년 3조6000억원에서 2020년 4조8128억원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전세사기 문제로 청년층 수요가 급증하면서 추경까지 편성해 4조7330억원 규모를 지켰다. 올해도 4조5469억원이 편성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전세 시세를 반영해 지원한도액을 상향하는 방향을 기획재정부와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반지하 거주 제한을 두지 않은 SH공사 측은 “불법 건축물이 아닌 이상 과도하게 거주자의 선택을 제한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부적절한 주거의 사용과 임대를 규제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한다”면서도 “반지하 거주 가구의 실질적 주거 지원을 하지 않으면서 ‘거주 금지’만 내세우면 결국 수요자가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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