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 총액이 지난해 27조원을 넘어서며 또다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14일 발표한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초·중·고교생 사교육비 총액은 27조1000억원으로, 전년보다 4.5%(1조2000억원) 증가했다. 1년 새 학생 수가 7만명(1.3%) 줄었는데도 사교육비 총액은 더 늘어난 것이다. 사교육을 받은 학생 비율과 학생들의 사교육 참여시간 등이 모두 급증했다. 정부 통계에 잡히지 않는 대입 N수생들의 학원비, 영·유아 사교육비, 교육방송(EBS) 교재 구입비, 방과후 학교 비용까지 고려하면 가계의 실질적인 사교육비 규모는 더욱 커진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사교육 카르텔’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사교육비를 24조원 안팎으로 묶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공염불이 됐다. 무엇보다 대학 입시에 변화가 없었는데도 고교생 사교육비 총액 자체가 7조5000억원으로 8.2% 증가했다. 고교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도 49만1000원으로 6.9% 늘었다. 지난해 6월 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대학수학능력시험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 배제 발언이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안 심리를 자극해 사교육 수요를 크게 늘렸다고밖에 볼 수 없다. 소득과 지역에 따른 사교육비 격차도 여전했다. 월 소득 ‘800만원 이상’ 가구의 사교육비 지출은 월 67만1000원, ‘300만원 미만’ 가구는 18만3000원이었다. 시도별로는 서울이 학생 1인당 월 62만8000원인 반면 전남은 27만9000원으로 2배 넘게 차이가 났다.
사교육은 한국 사회 만악의 근원이다. 부의 대물림 기제로 작용해 계층 이동을 막고, 가계의 소비 여력을 줄여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학력·학벌 경쟁을 심화하고, 청소년들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해친다. 세계 최저 출생률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 노인 빈곤율도 막대한 사교육비가 원인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하에서 사교육은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당장 의과대학 정원 확대,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 존치 결정 등에 따른 대입·고입 사교육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반면 초등학생 대상 늘봄학교는 정부 공언과 달리 일선 학교 참여가 저조하고, 유아 공교육 강화를 위한 ‘유보통합’은 갈 길이 멀다.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이 요즘 지방을 돌며 민생토론회를 열고 있지만 교육이야말로 민생의 핵심이다. 윤 대통령은 공약이 형해화되고 경솔한 발언이 입시 혼란을 불러 사교육 수요를 촉발한 것에 사과하고, 사교육 감축에 실패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을 경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