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총리 “나는 이 자리 최적임자 아냐” 깜짝 사임… 첫 성소수자 총리 퇴진

선명수 기자

성차별적 헌법 개정 부결 후 정치적 타격

사임 이유엔 “개인적이면서 정치적인 것”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가 20일(현지시간) 더블린 정부청사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후임자가 정해지는 대로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EPA연합뉴스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가 20일(현지시간) 더블린 정부청사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후임자가 정해지는 대로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EPA연합뉴스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가 20일(현지시간) 돌연 사임을 발표했다. 최근 개헌 시도가 무산돼 연립정부가 타격을 입긴 했으나 총리 사임을 요구하는 여론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번 발표는 뜻밖의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버라드커 총리는 이날 더블린 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후임 총리가 결정되는 대로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통일아일랜드당 대표직은 곧바로 사임한다.

그는 “바통을 넘겨줄 때가 언제인지 아는 것이 리더십의 일부”라며 “내가 이 자리에 최적임자라는 생각이 더는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총리의 사임은 미홀 마틴 부총리조차 전날 밤 알게 됐다고 밝힐 정도로 급작스러운 발표였다. 마이클 히긴스 대통령 역시 기자회견 직전 총리의 사임 소식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버라드커 총리는 사임 이유에 대해서는 “개인적이면서 정치적인 것”이라고만 밝혔다.

최근 아일랜드 연정은 성차별적인 헌법을 개정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했으나 큰 표차로 부결되며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다만 가디언은 “최근 국민투표 부결에도 불구하고 총리에 대한 눈에 띄는 사임 요구가 없었고 (연정 내) 명백한 반발 움직임도 없었다는 점에서 매우 예상을 깬 발표”리고 평가했다.

2017년부터 통일아일랜드당 대표를 맡아온 버라드커 총리는 2017~2020년 총리를 지낸 데 이어 2022년 12월 아일랜드공화당·통일아일랜드당·녹색당 연정의 총리로 취임했다.

1기 집권 당시 37세로 아일랜드 역사상 최연소 총리였고,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커밍아웃한 첫 번째 총리였다. 부친이 인도계로 아일랜드 첫 혼혈 총리기도 하다.

버라드커 총리는 2015년 동성결혼 합법화 국민투표를 앞두고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했다. 이 국민투표에 이어 2018년엔 임신중단을 합법화하는 국민투표 역시 통과됐다. 과거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였던 아일랜드는 이 두 차례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세계 여성의 날인 지난 8일 실시된 이른바 ‘성평등 개헌’ 관련 2건의 국민투표는 70% 안팎의 압도적인 반대로 부결됐다.

현행 아일랜드 헌법은 돌봄을 가족 내 여성의 의무로 규정하고 결혼을 근거로 가족을 정의한다. 이에 대해 여성의 성역할을 고정하는 시대착오적인 내용이란 지적이 나왔고, 이에 아일랜드 정부는 해당 조항을 삭제하고 가족의 정의를 확장하기 위한 개헌을 추진해 왔다.

버라드커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어린이와 성소수자의 권리, 여성의 평등과 자기결정권 측면에서 아일랜드가 더욱 평등하고 현대적인 국가가 됐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일랜드 의회는 내달 9일 부활절 휴회가 끝난 뒤 후임 총리를 선출할 예정이다. 차기 총리 후보로는 사이먼 해리스 고등교육부장관, 패스컬 도너휴 재무장관 등이 거론된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