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간이란 약은 없다”···가족 잃은 고통 ‘안고 사는’ 이들이 손잡을 때

최민지 기자

세월호 10주기 다큐 만든 ‘세월: 라이프 고즈 온’ 감독 장민경

세월호, 씨랜드, 대구 지하철 참사 유가족들의 만남

“시간이 약이 아니라 ‘안고 사는’게 약”

참사의 이야기 연결짓는 과정이

사회적으로 안고 사는 방법

27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의 장민경 감독이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27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의 장민경 감독이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시간이 약이라고들 한다. 물리적 시간은 분명 상처를 아물게도 기억을 희미하게도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애도하기에 충분한 시간인 걸까. 그만큼 세월이 지나면 ‘무 자르듯’ 새 삶이 시작되는 것일까.

27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세월: 라이프 고즈 온>는 그에 대한 답이다. 한국의 다양한 사회적 재난과 그 ‘이후의 삶’으로 시야를 넓힌 이 작품은 고통을 ‘안고 살기’의 의미를 탐색한다. 영화를 연출한 장민경 감독을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예은의 아버지 유경근씨의 2018년 일상을 비추며 시작된다. 일터인 공장에서 막 생산된 제품을 꼼꼼하게 살피고, 동료와 이야기를 나눈다. 퇴근해서는 집 거실 한 켠에 자리한 예은의 사진도 한 번 어루만진다.

어느 날 오후 유씨는 방송국으로 향한다. 작은 스튜디오에서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 진행자로 나선 그의 앞에 비슷한 상처를 지닌 참사 유족들이 앉는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부터 1999년 씨랜드 수련원 화재 참사, 2018년 제천 화재 참사 등 다양한 참사 희생자 유족들은 어디에서도 하지 못한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유족이 묻고 유족이 답한다’는 콘셉트의 이 방송은 총 14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당시 장 감독은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소속으로, 팟캐스트 녹음 현장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것은 각기 다른 참사 피해자 유족들이 비슷한 문제를 끌어안고 있다는 점이다. 시신 수습부터 어려움을 겪었고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의도’를 의심받았다. 추모 공원을 만드는 과정에선 집값 하락 등을 이유로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각기 다른 참사 유족들이 비슷한 문제를 반복해 겪고 계시다는 걸 깨달았어요. 방송에선 차마 말하지 못한 고민이나 딜레마도 있다고 느꼈고요. 개인의 고민으로만 남겨질 것이 아니라 같이 나눠야 하는 문제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큐멘터리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예은 아빠 유경근씨와 대구 지하철 참사로 딸을 잃은 황명애씨, 씨랜드 수련원 참사로 두 딸을 떠나보낸 고석씨의 일상을 따라간다. 짧게는 4년에서 길게는 20년이 지난 일이지만 이들은 매일은 여전히 ‘안고 살기’로 채워져 있다. 고석씨는 어린이안전재단을 운영하며 아이들에게 안전을 교육한다. 황명애씨와 유경근씨는 추모 공원 관련 회의를 하고 집회에도 참여한다.

각 유족들의 개별적 분투를 비추던 카메라는 어느 순간 장소를 옮겨 광주 망월동으로 향한다. 1987년 국가폭력에 세상을 떠난 이한열 열사 배은심 여사는 민주묘지에 묻힌 아들의 묘를 쓰다듬는다. 아들을 떠나보낸 뒤 민주화운동에 매진해 온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전국을 다닌다. 유경근씨는 어느 날 만난 배 여사의 “내가 다 안다”는 말 한 마디에 위로 받은 일화를 밝힌다. 언뜻 관련 없어보이던 여객선 침몰과 국가 폭력은 깊이 연결된다.

“유족 분들은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한 감각이 확장되어 있다고 느꼈어요. 팟캐스트를 통해 만난 유족들은 (서로 돕지 못한 데 대해) 미안함을 느낀다고 말하거든요. 나의 아픔이 있지만 다른 사람의 안부도 걱정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 순간들이 아름답게 느껴졌고, 영화에도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배은심 선생님의 삶이 보여주는 것도 그런 연대이고요.”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스틸컷. 씨네소파 제공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스틸컷. 씨네소파 제공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스틸컷. 씨네소파 제공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스틸컷. 씨네소파 제공

오는 16일은 세월호 참사 10주기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로, 잊기를 강요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장 감독은 고 배은심 여사의 말을 빌어 이들에게 답했다.

“‘시간이 약이 아니라, 안고 사는 게 약’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안고 산다는 것은 안고 가만히 있는 게 아니래요. 집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고, 물은 건 묻고 요구할 건 요구하는 것. 그게 안고 사는 것이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여러 참사의 이야기들을 계속 연결짓는 과정이 사회적으로 안고 사는 방법이라 생각해요. 언젠가 씨랜드 참사 현장에 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들판에 핀 들꽃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묘한 느낌이었죠. 죽음이나 참사와 멀리 떨어져 있기보다 가까이서 바라볼 때 희망과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안고 산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2014년 장 감독은 대학생이었다. 참사가 있기 3달 전 그는 학내 청소노동자 파업 탄압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노동자와 학생 간 연대를 다큐멘터리 <안녕들하십니까>에 담기도 했다.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전국의 대학 캠퍼스로 들불처럼 번지던 때였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안녕’하지 못하다.

“지난 10년 간 여러 참사를 목격하면서 그 안에 뛰어들어 함께 하기도, 거리두기도 해봤어요. 관심을 가질수록 우울해져서 스스로를 위해 뭐가 더 나은 걸까 고민도 했죠. 결론은 제가 충분히 안녕하지 못해서 더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안녕하지 못한 게 동력이 되어 다큐멘터리도 하고 있으니까요.”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의 장민경 감독이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의 장민경 감독이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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