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명의 기후소송 청구인 중 한 명인 김나단군은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이다. 2022년, 엄마 손을 잡고 헌법재판소를 찾았던 김군의 키는 그때보다 30㎝가 자랐다. 2020년 고등학생이던 김서연양은 학교를 졸업해 청년 활동가가 됐다. 아기기후소송 당시 20주차 태아였던 ‘딱따구리’는 엄마 배 속을 나와 최희우란 이름을 얻었다. 23일, 헌법소원 제기 4년 만에 열린 기후소송 공개변론을 앞두고 뭉친 이들은 “이제는 위기가 아닌 판결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기후소송의 출발은 지난 2020년 3월13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19명이 제기한 헌법소원이다. 이들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7년 대비 24.4% 감축하겠다는 옛 녹색성장기본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감축량이 기후위기를 막기에 부족하며, 기후위기를 방치하는 것은 생존권과 평등권, 인간답게 살 권리, 직업 선택의 자유 등 기본권 침해한다는 것이다. 헌재가 3월24일 원고 자격을 인정하면서 본격적인 심사가 시작됐다.
정부는 2021년 9월 녹색성장기본법을 탄소중립기본법으로 대체했다.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35% 이상으로 정한 이 법은 ‘기후위기 대응을 목표로 만들어진 최초의 국내법’으로 알려졌으나, 환경단체는 이 역시 미흡하다고 비판했다. 목표치가 탄소예산을 근거로 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정해져 위헌이라는 주장을 폈다. 탄소예산이란 위험한 수준의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허용 가능한 온실가스 최대 배출량을 말한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이 이같은 주장을 골자로 2021년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탄소중립기본법도 헌재의 판단을 받게 됐다.
2022년엔 만 5세 이하의 ‘아기’들도 헌법소원에 나섰다. 헌법소원 청구서에 첨부된 분석 자료를 보면, 지구 온도 상승이 1.5도로 제한될 경우 2017년에 태어난 아기는 1950년에 태어난 어른보다 배출할 수 있는 탄소가 8분의1 수준으로 줄어든다. 5세 이하 아기 40명, 6~10세 어린이 22명으로 구성된 청구인단은 이것이 평등권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환경단체들은 지난해 4월 발표된 탄소중립기본계획도 위헌이라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지난 2월15일 이 4개 사건을 병합 결정하고 이날 공개변론 열었다. 최초 소송 제기 이후 4년만에 본격적인 심리가 진행된 것이다.
이번 기후소송은 청년 세대가 기성세대에게 책임을 물은 세대 간 소송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김나단 군은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지금 온실가스를 조금만 줄이겠다고 하면서 나머지는 우리에게 떠넘기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김 군은 이어 “우리는 어릴 때부터 기후위기를 겪었는데, 이제 또 온실가스를 줄일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고 한다”면서 “헌법재판관님들은 하루라도 더 빨리, 늦기 전에 우리가 살아갈 권리를 지켜달라”고 말했다.
김서연 활동가도 “정부는 기후위기의 피해자는 산업과 기업이지 우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면서 “현재 위험도 없고, 피해자도 아니라는 식의 논리를 펼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전은 지금 당장의 위기에서 나를 구해주는 것도 있지만 다가올 위기를 막아주는 것도 포함한다”면서 “국가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헌재의 판단은 동아시아 주변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네덜란드 대법원이 정부의 감축목표가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판결이 나온 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해당 판결을 참고해 독일 기후보호법도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기후소송 공동대리인단의 윤세종 변호사는 “각국 사법부에서 판단을 받은 나라들은 자기 몫을 하려 하고 있다”면서 “아시아에서 선진국으로 상징적인 위치에 있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안정된 한국의 판결이 주변국들에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