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집’의 진화, 다 덜어낸 ‘몽당주택’

김희연 기자

종로구 누하동 주변에 확산

10평 정도에 ‘내 삶을 반영’

서울 종로구 누하동에는 ‘몽당(夢堂)주택’이 있다. ‘집을 꿈꾸다’라는 의미에서 집주인이 직접 붙인 이름이다. 짧은 몽당연필을 연상케 하는 이 주택이 들어선 후 근처 동네에는 닮은꼴의 작은 집들이 생겨나고 있다. 부동산중개업소 광고판에도 몽당주택 사진이 붙기 시작했다. 몽당주택은 대지가 불과 34.53㎡(10.44평)로 꼭 필요한 공간만 남기고 불필요한 공간은 거둬낸 집이다. 집주인은 자신이 지향하는 ‘덜어내는 삶’이 집에 반영되길 바랐고 젊은 건축가들은 크기가 작더라도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는 공간을 만들었다. 건축계에서는 몽당주택이 ‘땅콩집’ 이후 진화하고 있는 단독주택의 경계를 넓히는 동시에, 크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삶의 스타일을 집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으로 보고 있다.

땅콩집은 한 필지에 소형 단독주택 두 채를 나란히 붙여 지은 모습이 땅콩껍질 안에 땅콩이 붙어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땅콩집은 건물과 땅의 소유권과 사생활 침해, 소음 등의 문제점이 나타나면서 ‘외콩집’ ‘완두콩집’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외콩집은 땅콩집과 모양은 비슷하지만 한 필지에 한 채의 집을 지은 것이다. 완두콩집은 기존 연립주택처럼 1개 건물에 3~4가구가 들어서지만, 한 가구가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 다락방까지 통으로 한꺼번에 사용하는 주거형태다.

서울 종로구 누하동에 자리한 ‘몽당주택’의 외관(왼쪽)과 내부. | AnLstudio 제공

서울 종로구 누하동에 자리한 ‘몽당주택’의 외관(왼쪽)과 내부. | AnLstudio 제공

이에 비해 최근 등장한 몽당주택은 땅콩집이나 외콩집처럼 형태적인 특징에 그치지 않고, 공간 권력에 대한 반기 또는 집의 본질에 대한 패러다임 변화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강영란 아이디어5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몽당주택은 보편적으로 ‘살 만하다’고 여겨지는 33평(4인 기준)이란 규모에 대한 인식 기준을 되짚게 한다”면서 “땅콩집처럼 고정된 형태로 유형화돼 확산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집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부여한다는 상징성을 갖는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최근 출간한 <살고 싶은 집 짓고 싶은 집>(한빛라이프)에서 ‘몽당주택은 좀 줄이면서 덜어내며 살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집’이라고 정의했다.

몽당주택은 일본의 협소주택과도 다르다. 협소주택은 15평 이하의 대지에 세워진 좁고 작은 집을 말한다. 일본의 부동산 거품이 꺼진 후 땅값이 하락하자 도심 밖으로 밀려났던 사람들이 도심으로 귀환하며 자투리땅에 짓기 시작했다. 이후 위축된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한 타개책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이에 반해 몽당주택은 경제적 이슈만이 아니라 자신만이 꿈꾸던 집, 비우는 삶의 철학을 반영한 공간 등 다층적 의미를 포함한다.

작은 집을 통해 건축의 가치를 바꾸려는 건축가들의 시도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건축가 정영한의 제안으로 지난 4월 열린 건축전시 ‘최소의 집’에는 젊은 건축가들이 참여해 최소한의 집을 선보였다. 이들은 ‘9×9 실험주택(24.5평)’ ‘6×6 실험주택(10.9평)’ 크기의 집을 통해 규모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다양한 집을 제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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