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그러짐과 뒤틀림의 물음, “넌 어디서 왔니?”

한윤정 선임기자

한국인 입양아 작가 진 마이어슨 ‘노 디렉션 홈’ 개인전

신작 ‘I open my mouth to eat you’(2015, 캔버스에 유화, 188×266㎝) 앞에 선 작가 진 마이어슨.    학고재갤러리 제공

신작 ‘I open my mouth to eat you’(2015, 캔버스에 유화, 188×266㎝) 앞에 선 작가 진 마이어슨. 학고재갤러리 제공

‘돌아갈 집도 없고,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no direction home, a complete unknown, like a rolling stone).’

작가 진 마이어슨(44)은 밥 딜런이 2005년 발표한 노래 ‘Like a rolling stone’의 한 구절인 ‘No direction home’을 자신의 개인전 제목으로 따왔다. 우연히 이 가사를 들으면서 자신의 삶과 작품을 보았다고 한다. 그는 인천에서 태어나 4살 때 미국으로 입양됐다. 사람들이 “너는 어디서 왔니?”라고 물을 때 방향을 잃고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이미지를 왜곡시킨 그의 그림 역시 엉켜 있거나 휘몰아치는 형상을 하고 있다. 더구나 그는 개인전 준비에 앞서 “길을 잃었고 예술적으로 파산했으며 문화적으로 향수병을 앓았던” 탓에 18개월간 붓을 잡지 못했다.

서울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전시에는 가로 4m에 이르는 대작 ‘스테이지 다이브’ 등 11점이 나왔다. 마이어슨은 잡지, TV, 사진에서 무작위로 추출한 이미지를 스캐너로 왜곡시켜 스케치하고, 이를 회화로 그려왔다. 이번에는 빌딩, 공장 등 도시 풍경이 많다. 찌그러지고 뒤틀리면서 서로 이어진 형태는 특정한 장소가 아닌, 자신의 내면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Stage dive’, 2015, 캔버스에 유화, 290×420㎝

Stage dive’, 2015, 캔버스에 유화, 290×420㎝

“초반에 영감을 주는 핵심 회화 혹은 트랙으로부터 시작해서 음악가가 음반을 구성하듯 전시를 구상합니다.” 이번 전시의 핵심 회화에 해당하는 ‘I open my mouth to eat you(나는 널 먹기 위해 입을 벌린다)’를 1년 전 홍콩 침사추이에서 빌린 조그만 스튜디오에서 완성했고, ‘스테이지 다이브’는 이후 서울 문래동의 작가 레지던시에서 그렸다. 둘 다 거대한 공장을 연상시키는 초현실적 그림이면서 작가가 바라보는 현대사회의 혼란스럽고 분열된 모습이기도 하다.

마이어슨은 일찍이 세계적인 갤러리들의 러브콜을 받았다. 미니애폴리스 칼리지 오브 아트 앤드 디자인을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아카데미 오브 더 파인 아트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1997년부터 뉴욕 브루클린에서 작품 활동을 해오던 중 2004년 뉴욕 자크 포이어 갤러리와 파리 에마뉘엘 페로탱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특히 2006년에는 런던의 사치 갤러리가 주최한 단체전 ‘회화의 승리’에 참가하면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세계적 컬렉터인 찰스 사치에 이어 인도네시아 기업 부디텍,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필라델피아 미술관, 첼시 미술관 등이 그의 작품을 구입했다.

이 기관들은 마이어슨이 뛰어난 묘사 테크닉을 보여주면서 실험적인 방법을 통해 자신만의 회화 제작 방식을 창조했고, 우리가 사는 현실에 대한 작가 자신의 담론을 회화에 펼치는 동시에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열어놓아 회화를 직접 체험하게 한다고 평가했다. 포물선 모양을 비롯한 수많은 곡선과 다양한 색으로 구성된 그의 작품은 복잡함 가운데로 관객을 몰입시키면서 자신의 체험과 해석을 찾아내도록 유도한다.

그는 “내가 공부했던 미니애폴리스 칼리지는 컴퓨터 그래픽(CG) 강의가 활발해서 운 좋게도 다른 작가들보다 먼저 CG와 회화를 접목할 수 있었다”며 “포토샵이나 스캐너로 이미지를 왜곡시키는 과정에서 작가의 개입, 즉 퍼포먼스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가 입양된 미네소타주에서는 동양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어 고립감을 느꼈으나 역사학자이자 교수였던 양아버지는 미국 내 여러 도시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자주 데리고 다니면서 예술적 소양을 심어주었다. 또 외삼촌이 미국의 저명한 팝아트 작가 제임스 로젠퀴스트인 덕분에 그의 작업실을 방문하면서 화가의 꿈을 키웠다. 전시를 계기로 만난 페로탱 갤러리 큐레이터인 일본인 부인과의 사이에 딸을 두고 있다.

사치 갤러리 전시 이후 그는 미국 전역은 물론 브뤼셀, 빈, 싱가포르, 자카르타, 도쿄, 홍콩 등 다양한 도시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2010년 국립현대미술관 창동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선정돼 처음 한국에 왔고, 이후 홍콩으로 작업실을 옮겨 아시아를 주요 활동거점으로 삼고 있다. 쉴 새 없이 반복되는 이주의 루트는 압축, 왜곡된 그의 그림에 더 큰 진실성을 부여해준다. 5월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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