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공터, 골목, 아이들의 웃음소리…사라진 집에 대한 어떤 기억들

김창길 기자
집 2, 2013. (50X 50 photo & mixed media)   ⓒ강홍구

집 2, 2013. (50X 50 photo & mixed media) ⓒ강홍구

오징어 게임이 싫었다. 다른 놀이들은 좋아했다. 망까기, 사방치기, 땅따먹기 등 대부분의 놀이는 개인기의 정교함이 승패를 갈랐다. 오징어 게임은 달랐다. 힘센 아이가 무조건 유리했다. 첫 번째 관문부터 너무 버거웠다. 덩치 큰 수비수가 지키는 좁은 통로를 깨금발로 통과해야 된다니! 괴성을 지르며 상대를 박살내는 호리호리한 체구의 이소룡처럼 수비수를 제압하고 싶었던 유년의 기억은 동네 골목과 공터에서 시작된다.

미로 같은 골목과 중간 중간에 나타나는 공터의 풍경은 다양했다. 수업을 마친 아이들에게는 게임의 장소였고, 평상이 놓인 담배가게 앞은 어른들의 사랑방이었다. 고무대야 화분이 놓인 비탈진 계단은 작은 정원이었고 밤이 되면 제법 큰 골목의 포장마차가 불을 밝혔다. 골목과 공터는 그곳을 점유한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본래의 용도를 변경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장소였던 셈이다. 철학자 미셸 푸코였다면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라고 불렀을까? 그는 지도 위에 표시할 수 있는, 장소를 가지는 유토피아를 헤테로토피아라고 이름 지었다. 아이들은 헤테로토피아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것은 당연히 정원의 깊숙한 곳이다. 그것은 당연히 다락방이고, 더 그럴듯하게는 다락방 한가운데 세워진 인디언 텐트이며, 아니면 - 목요일 오후 - 부모의 커다란 침대이다. 바로 이 커다란 침대에서 아이들은 대양을 발견한다. 거기서는 침대보 사이로 헤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커다란 침대는 하늘이기도 하다. 스프링 위에서 뛰어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미셸 푸코, <헤테로토피아>, 문학과지성사)

헤테로토피아는 양립 불가능한 여러 공간들과 시간들을 한 장소에 겹쳐 놓는다. 극장, 공동묘지, 박물관, 도서관 등의 장소가 헤테로토피아의 예시가 되는 공간들이다. 가령 도서관과 박물관은 다른 장소들의 이야기들과 과거의 시간들을 축적시키고 가두어 놓는 이질적인 장소다. 뱀 여인, 격투사, 점쟁이들이 출몰하며 작은 축제가 벌어졌던 유럽의 공터와 같은 헤테로토피아는 엿장수의 가위 장단과 약장수의 품바 타령이 울려 퍼지던 우리네 옛 마을 공터와 풍경이 비슷하다.

철학자는 헤테로토피아에 대한 과학을 미완으로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다. 미셸 푸코가 묘사했던 자본과 권력으로 점철되지 않은 ‘다른(hetero)’ 공간인 헤테로토피아는 실재할까? 영혼까지 긁어모아 아파트를 사지 않아 바보가 되고, 이익을 환수하면 정당성이 확보되는 재개발의 논리가 토지 형질을 바꿔버리는 지금의 분위기는 헤테로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이런 지옥도에서 고군분투하는 장난감 인형을 찍은 사진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강홍구 작가의 ‘수련자 혹은 태산압정, 2005-6’ 연작이다.

수련자 - 요기소지, 2005-6 (digital photo & print, 260x100)  ⓒ강홍구

수련자 - 요기소지, 2005-6 (digital photo & print, 260x100) ⓒ강홍구

까만 머리카락과 눈썹을 휘날리며 웃통을 벗고 있는 무도인 형상의 인형이 대문 기둥에 앉아 있다. 빨간 권투장갑을 낀 손과 팔의 품새는 한번 올 테면 와 보라는 듯 당당하다. ‘수련자-요기소지’ 사진에서 수련자가 바라보고 있는 아랫마을은 신축 아파트와 철제 가림막에 둘러싸여 공사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옥탑방이 딸린 연립주택도 창문과 지붕이 뜯겨 나갔다. 우락부락한 무도인의 기세에 놀란 것일까? 굴착기 한 대가 흙무덤 뒤에 숨어 있다. 쓸려나간 집터에 남아 있는 나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오지랖 넓은 무도인이 지켜낼 수 있을까?

수련자의 다른 사진들을 찾아봤다. 폐허로 변해가는 주택가를 종횡무진 활보하는 수련자의 다양한 동작들이 제법 심각해 보인다. 금강불괴, 장홍관일, 만천환우 등 중국 무협지에 나오는 무공 용어들이 소제목으로 달려 있다. 수련자의 정체는 일본 게임 캐릭터인 ‘카주야 미시마’라는 인형이다. 주특기는 공수도. 강홍구 작가는 재개발 풍경에 인형을 넣은 이유를 ‘꼼수’ 혹은 일종의 ‘맥거핀’ 효과라고 작가 노트에 적었다. 맥거핀은 영화에서 중요한 것처럼 자주 보여주지만 사실은 아무 의미도 없는 관객을 속이는 장치다. 동의하기 어려웠다. 나는 수련자 인형이 재개발 광풍에 휩싸인 우리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공이라도 수련해야 한다는 우화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엉뚱한 상상력이 궁금해 고양시 원흥동에 있는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 장난감의 정체를 물었다.

“돌아다니다 주운 장난감이다. 재개발 중이던 불광 4구역이다. 처음 주웠던 것은 수련자가 아니라 ‘미키네 집’이었다. 연립주택 옥상 창고 안에 버려진 장난감 무더기에서 발견했다. 재밌겠다 싶었다. 찍고 나니 실제로 재밌었다. 주운 비닐봉지에 넣어 다니며 담벼락 위에, 마당에, 방 안에, 철근 위에 놓고 찍었다. 바람이 불어 미키네 집이 떨어져 지붕이 깨졌다. 버려진 스카치테이프로 지붕을 수리하고 계속 찍었다. 웬만큼 찍고 나서 다른 게 없나 찾아봤다. 그때 발견한 것이 수련자다.”

미키네 집 - 방안, 2005-6 (digital photo print, 240x100)  ⓒ강홍구

미키네 집 - 방안, 2005-6 (digital photo print, 240x100) ⓒ강홍구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버리고 떠났다. 이불, 장롱, 레코드판, 가족 사진앨범, 그리고 성혼선언문까지. 아파트로 이사를 간 것일까? 공사장의 떠돌이 개들. 작은 개는 죽고 큰 개는 들개가 됐다. 부모님과 형제자매와 함께 웃고 있는 개의 얼굴을 그린 그림도 벽에 붙어 있었다. 아이들에게 버림받은 미키네 집과 수련자 인형은 어떤 사연을 품고 있을까? 버려진 사물들은 작가에게 일종의 읽어야 할 기호로 남겨져 있었다. 주거의 기호인 집과 아이들의 기호인 장난감을 한 장면에 배치했다. 씨줄과 날줄이 엮이듯 기호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노란 벽돌과 분홍색 지붕으로 꾸민 미키네 2층 양옥집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살고 싶어 하는 집에 대한 로망이다. 반사경을 머리에 달고 다락방 창문에 얼굴을 내민 미키처럼 의사가 된다면 저런 집에 살 수 있을까?

교편을 접고 미대를 나와 붓질을 하던 손이 카메라를 잡았던 건 세기말이었다. 강홍구 작가는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어떤 때”를 포착하고 싶었다. 작가의 화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재개발의 풍경이 기묘하고 이상했다. 재개발을 당연한 것처럼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 또한 기이했다. 1999년 구입한 디지털 카메라로 현상해낼 수 있는 풍경의 크기는 작았다. 여러 컷을 찍어 연결했다. 한 군데 서서 보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이 몇 발짝 걸어가면서 사진의 세부를 들여다보기를 원했다. 눈속임은 싫었다.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균열을 남겨 놓았다. 강홍구 작가는 “사진은 세상을 파편으로 보여 준다”는 비평가 크라카우어의 생각을 공유한다.

오쇠리 풍경 6, 2004 (digital photo & print, 261x100)  ⓒ강홍구

오쇠리 풍경 6, 2004 (digital photo & print, 261x100) ⓒ강홍구

2004년 발표된 ‘오쇠리 풍경’은 김포공항과 붙어 있는 한 마을이 폐허로 변해가는 파편화된 풍경들을 연결해 파노라마로 보여준다. 1942년 일제강점기에 군용 비행장이 들어서면서 오쇠리 주민들은 끔찍한 소음 속에서 수십년을 살아왔다. 주민들은 항의했고 1987년 오쇠리는 항공기 소음피해 1종 지역으로 결정됐다. 피해 보상은 그곳의 생활인이 아닌 소유자들의 몫이었다. 작가가 처음 오쇠리를 방문한 1999년, 갈 곳을 찾지 못한 100여가구가 오쇠리에 남아 있었다. 마을 전깃줄 위로 아슬아슬하게 비행기가 지나갔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듯 머리에 손을 얹은 학생의 뒷모습이 사진에 남아 있다. 집이 헐린 폐허 위에 버려진 중장비 사이를 파고들며 웃자라는 잡초들. 농사를 짓던 땅은 여전히 초록빛 생명을 키워냈다. 사진술이 파편적인 것이 아니었다. 농촌과 폐허, 그리고 비행기로 대표되는 최첨단 기술의 풍경들이 파편으로 기이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대파, 미나리, 배추 따위를 키우던 농촌 같던 오쇠리는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작가는 최첨단 산업으로 파괴된 자연부락의 종말을 확인했다. 현실적인 유토피아와 비슷한 공간이 자연부락이라는 강홍구 작가의 생각은 미셸 푸코가 묘사하려던 헤테로토피아와 비슷한 그림이다. 자연부락 오쇠리의 소멸을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잃어버린 것은 특별한 장소성이다. 장소성이란 지리학에서 다른 곳과 구별되는 단위 장소의 고유한 특성을 의미한다. 서울의 경우 장소성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른바 무장소성이 그것을 대신한다. 대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건물, 상점, 가로 풍경 등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단히 유사한 경관을 가지고 있다. 다른 도시의 장소성을 훔쳐온 장소적 도용이라는 혐의가 짙다. 장소성이 사라진 자리를 무장소성과 지리적 인용, 장소의 표절이 대신한다.”

미키네집-철근, 2005-6.(digital photo  print, 240x100)  ⓒ강홍구

미키네집-철근, 2005-6.(digital photo print, 240x100) ⓒ강홍구

‘은평뉴타운 연대기’는 2002년에 시작됐다. 불광동 작업실에서 북한산을 오르는 길에 마주친 마을의 풍경이 흥미로웠다. 물푸레골, 폭포동, 못자리골, 우물골, 제각말…. 마을의 이름이 알려주듯이 진관동 일대는 농촌 풍경의 북한산 아랫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뉴타운 계획이 발표됐다. 사진의 맥락이 바뀐 것이다.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그저 일단 찍어두자 내지는 농촌과 도시 사이의 접점과 변이를 추적해보려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라진 것들에 대한 의도하지 않은 기록물이 됐다. 작가는 “토목공사적 상상력이 사진적 상상력을 훨씬 앞질러 버린 것”이라고 맥락을 설명했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은 작가의 사진들을 지난 9월까지 전시하며 과거를 기억했다.

은평뉴타운의 재개발 풍경은 읽을거리가 많았다. “내집 사랑합니다-투쟁” “북망산천 두고 가니, 구파발이 그립구나!” 집집마다 걸린 현수막의 말들은 진부하고 상투적이지 않았다. 저마다의 개인사를 반영한 개별적인 외침들이었다. 강 작가는 아파트 숲으로 뒤바뀐 은평뉴타운을 거닐며 옛 풍경을 떠올린다. “산비탈에 세워진 집들은 하나도 같은 게 없었다. 바위투성이의 산언덕에 한 채의 집을 짓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겠는가. 재료들이야 빤하다. 시멘트, 목재, 플라스틱 등 결국 아파트를 짓는 재료와 똑같다. 하지만 그 재료들이 가진 놀라운 개별성과 개성이 훨씬 잘 드러난다. 발레리가 그랬던가. 인간이 만든 구조물들은 그 재료들보다 단순하다고.” 작가는 사라져버린 집들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하기 위해 과거의 사진에 색을 칠했다. 2010년에 발표한 ‘그 집’ 연작은 사진과 그림 사이를 떠도는 어떤 기억들이다.

기억은 장소와 맞물려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유년 기억은 ‘스완네 집 쪽으로’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게르망트 쪽’ 등 과거의 어떤 장소로 소환된다. 내 유년의 기억은 비탈진 골목길 구석구석에 닻을 내리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한 요리 키트로 딸아이와 함께 달고나를 만들며 아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는 연탄불로 녹여 만든 달고나를 골목길에 쭈그리고 앉아서 먹었어. 하나에 50원이었나.” 세대 간 공유할 수 있는 장소성을 상실했기 때문일까? 이야기를 듣고 있는 어린 소녀의 표정이 알쏭달쏭했다.

스캐너를 이용한 자화상 self -1, 1999 (scanner, digital print) ⓒ강홍구 - 디지털 사진을 매체로 작업을 하는 미술가로 2006년 올해의 예술가상, 2008년 동강 사진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삼성리움미술관 등 다수의 미술관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서울 세화미술관 ‘상어, 새로이 일주하다’ 단체전에서 ‘은평뉴타운 연대기’와 ‘녹색연구-서울-공터’를 내년 2월까지 전시한다.

스캐너를 이용한 자화상 self -1, 1999 (scanner, digital print) ⓒ강홍구 - 디지털 사진을 매체로 작업을 하는 미술가로 2006년 올해의 예술가상, 2008년 동강 사진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삼성리움미술관 등 다수의 미술관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서울 세화미술관 ‘상어, 새로이 일주하다’ 단체전에서 ‘은평뉴타운 연대기’와 ‘녹색연구-서울-공터’를 내년 2월까지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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