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정치사학자 김원

김희연·사진 김정근 기자

통념 깬 ‘독한 글’로 살아온 시대 가감없이 들춰내

한국학중앙연구원 김원 교수(44)는 정치사학자로 흔히 ‘1960~1970년대 현대사 전문’으로 통한다.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현실문화), <여공 1970 그녀들의 반 역사>(이매진) 등의 저서에서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사람과 사건을 통해 정형화된 프레임을 깨고 그 균열로부터 유의미한 역사성을 캐내는 데 천착해왔다.

김 교수는 ‘기억의 연구자’이기도 하다. 개개인의 기억회로에 지나온 시대와 사건, 인물들이 어떤 방식으로 고유의 형태를 띠며 저장돼 있는지에 주목한다. 덕분에 ‘현재화된 기억’이 서술하는 또 하나의 역사와 만날 수 있다.

김 교수의 저서 발문에는 지인들이 그의 순한 인상에 대해 언급한 글이 눈에 띈다. ‘모난 데 없이 둥글둥글’ ‘장난기 많다’ 등등. 하지만 이는 ‘독하고 격렬한 글들’을 강조하기 위한 꾸밈에 불과하다. 그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공순이’ ‘식모’라는 본성이 강조된 명칭을 사용한다. 명칭이야말로 살아낸 시대와 사회를 가감없이 들춰낸다고 여긴다.

‘기억의 연구자’가 기억하고 있는 자신의 과거는 어떠할까. 대학 진학 당시를 말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사실 역사학 선택은 유명 소설가들 가운데 역사학 전공자가 많은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놓았다. 더 추궁하자 “고등학교 때 두어 번 신춘문예에 응시한 적이 있다”고 했다(쓰지 말아달라고 했지만 어쩔 수 없다. 김원을 이해하는 개인사 중 하나다). 그 시절 이문열의 초기 작품, 박완서, 김소진의 소설을 좋아했다.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같은 대학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성공회대 노동사연구소를 거쳤다.

[뉴 파워라이터](14) 정치사학자 김원

■ 젊은 세대 위해 ‘1980년대’ 써 볼 생각

- 인상은 좋은데 글이 독하다는 평가는.

“써온 글들이 기존 통념적인 해석과는 상당 부분 거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에서도 ‘유신 대 반유신’ ‘억압적인 국가권력 대 민주화운동’ 등의 프레임을 깨려 했다. 기존 프레임이 갖는 힘은 굉장히 강하다. 이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것은 여러 가지 것들이 착종된 효과이기도 한데, 모든 역사 해석은 현재적인 정통성 내지 정당성과 결부된다. 이설 내지 균열이 가해지는 해석에 대해선 ‘예외적인 것’이나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책에서 부마항쟁이나 광부들의 기억을 통해 기존에 민중이라 불리지 않았거나 민중사로 표현되지 않은, 꺼려했던 것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집중했다. 그 때문에 나온 평가가 아닐까.”

- 1960~1970년대 전문으로 불린다.

“현재는 1980년대와 관련한 책을 구상하고 있다. 당시 사회상을 현재 어떻게 기억해야 될 것인지 개괄적으로 보려 한다. 오랫동안 1980년대 전체상이 광주나 6월항쟁으로만 기억돼온 경향이 있다. 워낙 가까운 시기이기 때문에 기피하는 측면들도 있었다. 2010년대에 1980년대의 사회와 사상, 문화, 사람을 포괄적으로 볼 생각이다. 첫 저서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은 1980년대 하위문화에 관한 것이었다. 그때 대학생활을 한 지 10여년이 지난 18명을 인터뷰했다. 어떤 일상을 살았고 무엇에 대해 분노했고 그 분노가 왜 민중지향적 공동체라는 하위문화나 운동문화로 이어졌는지, 그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기록이었다. 이번엔 더 넓혀볼 생각이다. 1980년대도 정형화된 기억 외의 것들을 공식적인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젊은 세대에게 1980년대는 체험이 아니라 역사에 가깝다. 환기시킬 필요도 있다.”

- 연구 대상으로 1980년대가 특별히 부담되지 않나.

“이전 시기에 비해 부담된다기보다는 체험자로서 거리두기를 고민하고 있다. 1980년대는 지나치게 비이성적인 시기로 규정하거나 반대로 신화화한 감이 있다.”

- 자료 수집은 어떻게 하나.

“구술 내지 인터뷰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르포와 수기, 일기 등 비정형문도 많이 참작한다. 물론 시대별로 다르겠지만 자료가 없어서 연구와 집필을 못하는 역사가는 드물다. 똑같은 1차 자료를 갖고도 어떤 시각에서 이전과 달리 해석하고 관점을 갖느냐가 문제다. 짧은 일기나 한 명의 생애사, 구술자료에서도 현대사 내지 특정 시기의 여러 가지 풍부한 얘기들이 나온다.”

- 구술사의 매력은 뭔가.

“구술을 통해 과거에 안 알려진 사실을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따로 있다. 한 개인이 과거에 체험한 것을 그때와 다른 사회적 지위와 직업, 환경 등에서 기억해낸 것이 거시적 역사와 구조에서 어떠한 연관성을 갖는지 밝혀낼 수 있다는 점이다.”

[뉴 파워라이터](14) 정치사학자 김원

■ 글 쓰기 좋아…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게 아냐

- 험난한 시대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윤리적인 고민을 한다. 재작년에 5·18 당시 시민군에 참여했던 한 청년의 가족 살인사건을 다룬 적이 있다. 살인현장을 목격한 다른 가족을 인터뷰할 때 그랬다. 개인의 고통스러운 얘기를 어디까지 끄집어내야 할 것인가, 말하고 싶지 않거나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상황이라면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타자에 대한 배려 등 윤리적인 문제가 걸린다. 간혹 얘기를 함으로써 고통이 덜해지는 경우도 있긴 한 것 같다.”

- 역사·정치 저술가로 활동하는데 소설의 꿈은 버렸나.

“말하기보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다. 대학 진학 당시에도 교수나 연구자가 되리라는 생각은 못했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다가 인생이 꼬이게 됐다. 소설 비슷하게 쓴 적은 있다. <87년 6월 항쟁>(책세상)이 반은 소설 같은 책이다. 자료에 기반해서 등장인물을 소설처럼 구성했다. 쓰면서도 어려워 혼났다.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 역사라는 게 인과관계와 실증의 문제, 엄밀한 사료 등이 걸려 있지만 결국 소비되고 유통되는 핵심에는 서사 내지 이야기가 존재한다. 대중과의 공감을 확보하는 데 이야기 방식의 장점이 있는 것 같다. 고민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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