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중력과 은총 - 시몬 베유는 나의 멘토

이어령 | 전 문화부 장관

▲ 중력과 은총 | 시몬 베유

[이어령의 내 인생의 책](4) 중력과 은총 - 시몬 베유는 나의 멘토

근대의 시작은 뉴턴이다. 뉴턴의 중력 이론은 과학의 패러다임만 바꾼 게 아니라 인간의 사고 자체를 바꿨다. 중력은 인간에게도 작용하고 식물에게도 작용하며 지구에도 작용하고 우주에도 작용하는, 우주의 보편 법칙이다. 우리는 중력을 벗어나서 살 수 없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가 일정한 법칙의 구속 안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프랑스 사상가 시몬 베유(1909~1943)의 <중력과 은총>은 우리의 삶에는 현실적 구속력(중력)과 그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영혼의 움직임(은총)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몬 베유는 공장에 들어가 노동자 생활을 했고 나치의 프랑스 점령에 맞서 레지스탕스로 활동하기도 했던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그는 좌파적 신념을 갖고 있었으나 일부 코뮤니스트들의 전체주의적 경향에 반대했다. 그는 인간의 구원은 아름다움에 있다고 믿었다.

나는 시몬 베유처럼 노동자들 속으로 들어간 적도 없고 무장투쟁을 한 적도 없다. 현실 참여의 강도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그의 책들을 통해 나는 치열한 현실참여와 하늘을 향해 상승하고자 하는 미학적 충동이 서로 평형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나의 내면에서 벌어지고 있던 오랜 투쟁에 빛을 던져주었다. 내가 주창하는 ‘생명자본주의’는 여기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베유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없고 발설한 적도 없다. 베유에 대해 말하면 코뮤니스트로 오해받을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에서였다. 베유는 결코 코뮤니스트가 아니다. 마르크스가 시인이자 운동가였듯, 베유도 마르크스주의자인 동시에 휴머니스트였다. 불꽃같은 삶을 살다 서른넷에 죽은 그는 내게 멘토와도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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