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문학평론가 신형철

정원식·사진 정지윤 기자

“비평은 미세한 진실에 대해 말하는 사회적 실천”

문학비평에 대해 널리 퍼져 있는 통념 중 하나는 비평이 문학작품 없이 홀로 설 수 없다는 것이다. 비평은 홀로 설 수 없다는 믿음은 ‘비평가는 시인이나 작가가 되는 데 실패한 문인’이라는 선입견의 질료가 된다. 비평에 대한 또 다른 통념은 그것이 냉정한 논리와 판단으로만 이루어져야 하며 애정이나 감동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다. 이런 생각은 비평에 지적 교사로서의 권위를 부여할지 모르지만, 독자들에게는 ‘비평이란 재미없고 골치 아픈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만들어낸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씨(38)는 비평은 엄격한 논리학 교사가 아니라 성숙한 연인에 가깝다고 믿으며, 또한 비평의 독자성이란 예외적인 개인의 성취가 아니라 비평 본연의 지향점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2005년 문학비평을 시작한 이래 비평집 <몰락의 에티카>(문학동네·2008)와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문학동네·2011), 그리고 아직 책으로 묶이지 않은 많은 글들을 통해 그는 비평의 독자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인상적으로 입증해왔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동시대 한국문학의 섬세하고 따뜻한 동반자 역할을 해온 그를 지난 25일 오후 서울 홍익대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뉴 파워라이터](18) 문학평론가 신형철

-비평에 대한 재능은 언제 발견했나.

“시와 소설에 재능이 없다는 건 비교적 일찍 깨달았다. 하지만 그래서 비평을 선택한 건 아니다. 비평이란 글쓰기가 갖고 있는 본질적 매력에 대해 빨리 결정을 해버렸다. 이것이다, 내가 쓰는 건 이것(비평)이고 이것이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이라는 걸 빨리 깨달았다.”

-2008년 12월에 나온 첫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를 관통하는 열쇳말은 에티카(윤리)다. 비평에 대한 이 태도는 지금도 유효한가.

“요즘은 ‘삶의 의미’라는 말을 더 자주 쓰는데 이 쉬운 말 안에 담겨 있는 어려운 문제들이 그동안 내가 써왔고 앞으로도 당분간 써나갈 주제다. 삶에 의미가 있느냐, 왜 살아야 하느냐,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넓은 의미에서 윤리학적인 테마들인데 이게 문학이 내게 중요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삶의 의미에 대해 가장 섬세하게 질문할 수 있는 분야가 문학이고 문학비평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이 크게 보아 윤리의 문제를 다룬다면, 시나 소설에 비해 비평이 윤리에 대해 더 잘 말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

“비평은 기본적으로 들어주는 일이다. 비평은 소설과 시가 내게 하는 말을 들어주는 작업, 누군가의 이야기를 가장 섬세하게 들어줄 수 있는 삶의 방식이다. 우리 사회에서 특별히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거친 이해와 성급한 단정이다. 거친 이해와 성급한 단정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어떤 판단을 내릴 때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생각하고 가장 미세한 진실까지 놓치지 않고 잡아내려는 것이 비평의 근본이다. 나는 비평이란 미세한 진실에 대해서도 인간이 얼마나 섬세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비평은 하나의 사회적 실천일 수 있다. 비평이란 글쓰기가 어떻게 하나의 윤리적 실천일 수 있는지를 더 깊이 연구하고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고 싶은 것이 내 목표다.”

[뉴 파워라이터](18) 문학평론가 신형철

■ ‘섬세한’ 김현 비평의 힘에 근원적 영향 받아

-앞선 비평가들 중 영향을 받은 사람은.

“한 명을 꼽기는 어렵지만 윗세대 비평가로는 김현(1942~1990)이다. 섬세함은 김현 비평의 중요한 특징이자 가치인데, 김현 비평이 섬세해서 좋다는 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비평에서는 섬세함이 비평의 여러 가치들 중 하나가 아니라 비평의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비평이 미세한 진실에 대해 말하는 사회적 실천일 수 있으려면, 섬세함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섬세함이란 어떤 비평을 칭찬할 때 사용하는 형용사들 중 하나가 아니라 비평의 운명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현 비평의 힘은 내게는 근원적인 것이다.”

-문학비평의 독자가 줄어든 이유는.

“여러 이유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다. 원인을 따지기보다는 비평의 방향에 대해 말하고 싶다. 비평이 하나의 글로 존립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인식의 생산이라고 생각한다. 비평이 텍스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나는 결코 비평의 굴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텍스트의 이야기를 잘 듣는 과정에서 비평의 고유성이 발휘될 수 있다. 비평이 텍스트로 환원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면 비평을 읽을 이유가 없지만 비평이 인식의 생산에 성공한다면 비평을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글을 쓸 때마다 이 글이 과연 의미 있는 인식을 생산했는지, 뻔한 이야기를 화려하게 재탕하거나 다른 분야의 이론적 작업들을 엮어놓은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항상 따져본다.”

-좋은 문장이란.

“정확한 문장이 좋은 문장이다. 정확한 문장이란 대체불가능한 문장이다. 이건 수사학적으로 화려한 문장이냐, 문법적으로 정확한 문장이냐, 번역투냐 순우리말이냐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층위의 문제다. 정확한 인식을 담고 있는 문장이 정확한 문장이다. 정확한 문장을 쓰지 못한다면 어떤 사태의 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럴 경우 화려한 문장이나 현학적인 문장으로 부실한 인식을 메우려고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내 글에 대한 반향보다는 내 글이 정확성과 미학적 탁월성에 대한 내 기준에 도달했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 욕망이 내 글쓰기의 고통이자 동력이다.”

■ 내 글쓰기 동력은 정확성과 미학적 탁월성

-앞으로 나올 책들은.

“예정대로라면 영화에 대한 글을 모은 책, <느낌의 공동체>에 이은 두 번째 산문집, 그리고 두 번째 평론집이 나와야 하는 시점이다. 영화에 대한 글이나 산문집은 글을 잘 추리기만 하면 되는데 평론집은 커다란 숙제다. 두 번째 평론집은 모든 것을 쏟아부어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책으로 만들고 싶다. 당분간은 평론집에 들어갈 글을 쓰는 데 몰두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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