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 새에덴교회 담임목사

소풍 같은 삶 속 근원에 대한 향수

‘귀천’은 천상병 시인의 대표적 시다. 그는 이 세상의 삶을 소풍으로, 돌아가야 할 본향을 하늘로 이미지화하였다. 천상병 시인의 삶을 생각하면 누구나 동정과 연민이 일어난다. 천재 시인이었지만 동백림사건으로 갖은 고문과 옥고를 치르고 행려병자가 되어 정신병원에까지 입원하게 된다. 그 이후로도 술에 찌들어 불우한 삶을 살았다.

[소강석의 내 인생의 책] (1) 귀천 | 천상병

그러나 그는 술에 취할수록 천재적 순수 서정시를 쓰며 세상 너머의 푸른 본향, 삶의 원형(archetype)을 사모하였다. 신화학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빼앗긴 에덴동산을 원형이라고 한다. 조지프 캠벨이나 밀턴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원형을 그리워하고 본향을 사모한다. 문학적으로 말하면 원형에 대한 향수다. 그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원형을 사모한 사람이다. 비극적 삶과 순수 감성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래서 결국 ‘귀천’이라는 시를 쓰게 된 것이다.

‘귀천’은 목회자인 나에게 성경에 버금갈 정도의 명시다. 나는 술과 관계없고, 천 시인과 같은 불우한 삶을 살고 있진 않지만, 가슴 깊이 그의 시가 담겨 있다. 아무리 삶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소풍 같은 삶 속에서 참실존에 대한 추구, 원형, 근원을 향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내 시의 세계도 귀천에 닿아 있다. 순수 서정으로 자연을 보고 실존과 원형을 향한 그리움을 품고 시를 쓴다. 고대로부터 시인은 제사장, 예언자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천 시인도 시를 통해 때로는 제사장처럼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때로는 예언자가 되어 비정한 세상을 슬픈 풍유로 고발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귀천’이 나의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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