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말과 사물 | 미셸 푸코

정성일 영화평론가·감독

원본 읽고 싶게 만든 명문장

[정성일의 내 인생의 책] ⑤ 말과 사물 | 미셸 푸코

어떤 번역 문장을 읽을 때 갑자기 도대체 원래의 문장은 무엇인지 참을 수 없을 만큼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건 번역을 잘했느냐, 못했느냐, 라는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다. 말 그대로 그 대목이 너무 굉장해서 원래의 저자가 그 문장을 썼을 때 도대체 어떻게 쓴 것일까, 를 느껴보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원래의 단어. 원래의 구문. 원래의 기분. 누구라도 책을 읽다 보면 아무도 중간에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원래의 저자가 쓴 문장과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이 어마어마한 책의 제1장 ‘시녀들’이 내게 그러했다.

먼저 이 말을 해야겠다. 나는 구조주의로 분류되는 푸코의 책으로부터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게다가 <말과 사물>은 내게 너무 장황했고 중반을 넘어섰을 때 내 호기심에서 너무 멀리 있어서 내 질문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을 설명한 아주 짧은 첫 번째 장을 읽었을 때만큼은 정말 아름답고 우아한 전개에 거의 넋이 나가버렸다. 너무 유명한 이 그림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푸코는 마술을 부리는 것만 같았다. 마치 그림 안으로 들어가버린 것만 같은 문장들. 나는 원래의 문장이 너무 읽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제 일로 파리에 갔을 때 어쩌자고 그만 홀린 듯이 이 책의 불어 판본을 사버리고 말았다. 그런 다음 돌아와 왼쪽에는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과 사전을 펼쳐놓고 오른쪽에는 노트를 놓은 다음 한 문장씩 번역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내 책상머리에 ‘시녀들’ 그림이 인쇄된 엽서가 매달려 있었다는 사실도 당신께 알려야 할 것 같다.

아마 그날도 오늘처럼 더웠던 것 같다. 때로 어떤 책은 번역을 통해서 독서할 때가 있다. 지금도 나는 가끔 그렇게 책을 읽는다.


Today`s HOT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불타는 해리포터 성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