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나와 너의 사랑가’ 노랫말의 인문학

문학수 선임기자

노래의 언어

한성우 지음 | 어크로스 | 364쪽 | 1만6000원

7인조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은 2013년 발표한 ‘팔도강산’에서 사투리랩을 선보인다. 저자는 방탄소년단이 “한국어는 결국 다 통한다”는 점을 이 노래를 통해 보여줬다고 말한다.

7인조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은 2013년 발표한 ‘팔도강산’에서 사투리랩을 선보인다. 저자는 방탄소년단이 “한국어는 결국 다 통한다”는 점을 이 노래를 통해 보여줬다고 말한다.

김소월의 시 가운데 가장 먼저 노래로 만들어진 것은 ‘개여울’이다. 1967년 킹레코드가 발매한 음반에 가수 김정희의 노래로 수록돼 있다. 이후 1972년에 정미조가 다시 불러 히트했다. 노랫말도 좋지만 곡조도 아름다워 한국가요사에 명곡으로 남았다. 시의 일부를 잠시 인용하면 이렇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이렇듯이 김소월은 노래에 맞춤한 시를 많이 썼다. 책에 따르면 “노래가 된 시를 찾아가다 보면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그리고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시인이 김소월”이다. 책에는 1967년의 ‘개여울’부터 2003년 가수 마야가 부른 ‘진달래꽃’까지 모두 7곡이 예시돼 있다. 노랫말로 사용된 다른 시인들의 시 편수에 비해 압도적이다. 저자는 ‘개여울’에 대해 “3음보가 각 연마다 일정하게 지켜지는 덕분에 리듬과 멜로디를 만들기가 쉽고, 3연과 5연이 같아서 후렴처럼 노래를 꾸릴 수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내용”도 노래로 불리는 데 한몫을 했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규칙적이고도 적당한 길이, 쉬우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 등이 ‘시의 노래화’에서 중요하다는 뜻이다.

[책과 삶]‘나와 너의 사랑가’ 노랫말의 인문학

책에는 ‘유행가에서 길어올린 우리말의 인문학’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국어학자 한성우의 저술이다. 1923년에 유성기 음반으로 발매됐던 노래 ‘희망가’부터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최근 히트곡까지를 대상으로 삼아, 계량언어학적 방법으로 노랫말을 분석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세월로 치자면 얼추 100년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삶에서 살아 숨쉬는 노랫말”이라는 전제에 충실하기 위해 노래방 업체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노래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모두 2만6250곡의 노랫말을 언어학적 통계로 분석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랫말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명사(인칭대명사 제외)는 무엇일까. 누구나 짐작하듯이 ‘사랑’이다. 저자가 분석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명사로는 104위에 머물지만, 노래의 제목과 가사만 놓고 보자면 단연 1위를 차지한다. 제목에 사랑이 포함된 노래는 전체 중 8.99%, 가사에 사랑이 등장하는 노래는 자그만치 65.22%에 이른다. 인칭대명사까지 포함한다면 ‘나’와 ‘너’가 사랑을 한발 앞서 있으니, 결국 유행가는 ‘나와 너의 사랑노래’인 셈이다.

한데 여기에도 시대에 따른 변화가 있다. 저자는 “(내가 분석한 노랫말 중에서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1926)가 ‘사랑’을 사용한 최초의 노래일 것”이라면서 “이렇게 노랫말에 등장한 ‘사랑’은 세월이 흐를수록 뚜렷한 증가세를 보인다”고 말한다. 1950년대까지는 2.19%였다가 1990년대 이후에 ‘사랑’뿐 아니라 ‘러브’까지 등장하면서 급기야 전체의 3분의 2에 달하게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통계로만 따져본다면 (지금까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최고의 사랑꾼은 SG워너비(88.30%)”라면서 “오래된 가수일수록 사랑의 밀물에 덜 잠겨 있다는 사실이 관찰된다”고 말한다.

노랫말이 시대의 풍속을 담는다는 것은 고금의 진실이다. 예컨대 “부동산 투기와 함께 광풍처럼 몰아닥친 노래”는 윤수일의 ‘아파트’였다. 말하자면 노랫말은 어떤 식으로든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한다. 한데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대중음악을 생산하고 향유하는 주체가 ‘젊은 세대’라는 점이다. 저자는 1938년의 재즈풍 노래 ‘청춘계급’을 비롯해 1930~50년대에 쏟아진 영어가 뒤섞인 노래들이 당시 젊은 세대의 말을 가사로 사용하면서 해방 전후와 한국전쟁 이후의 시대상을 담아냈다고 분석한다. “노랫말은 늘 젊은 세대의 말을 표준으로 삼아왔다. ‘황성옛터’의 노랫말이 오늘날의 기준으로 본다면 폐허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이라 여겨지겠지만 당대에는 젊은 세대의 말이었다. 느끼하게 느껴지는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 역시 그러하다.”

노랫말의 표준어가 ‘젊은 세대의 말’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방탄소년단의 등장은 독특하면서도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세계적으로도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이 아이돌 그룹을 언급하면서, “케케묵은 단어로 인식됐던 ‘팔도강산’을 2013년 발표했던” 그들의 ‘의식적인 노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알려져 있다시피 이 노래는 ‘서울 강원부터 경상도 충청도부터 전라도’를 포괄하는 사투리랩이다. 저자는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은 다 통하는 말, 그 차이를 과장해 차별할 필요도 없고 갈등할 필요도 없다”는 점을 아이돌 그룹이 “가사를 직접 써서” 한 곡의 노래로 보여줬다고 극찬한다. 국어학 중에서도 주로 방언을 연구해온 저자의 면모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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