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청바라기’ 조선 외교의 씁쓸한 민낯

홍진수 기자
[책과 삶]‘청바라기’ 조선 외교의 씁쓸한 민낯

사신을 따라 청나라에 가다
손성욱 지음
푸른역사 | 272쪽 | 1만5900원

“러시아 공사관은 이제 청의 질서에서 완전히 벗어난 공간이었다. 이항억의 <연행일기> 이후 연행록에서는 ‘아라사관’ 혹은 러시아 공사관의 기록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천주당을 더는 갈 수 없던 것과 비슷하다. 이후 영국, 프랑스, 러시아뿐만 아니라 다른 구미 국가들이 청과 조약을 체결하고 북경에 공사관을 세웠다. 북경 내 서양을 대표하는 공간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조선 사신이 갈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시대가 변하고 있었다.”

‘연행록’을 중심으로 조·청관계를 다룬 책 <사신을 따라 청나라에 가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다. 오로지 청나라만, 이전에는 명나라 하나만 바라보던 조선은 청나라가 약해지면서 고립된다. 오직 청나라를 통해서만 서양을 접했던 조선에 대등한 외교관계는 생소한 일이었다. 청나라와 함께 조선도 무너져내렸다.

베이징 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만국래조도’의 일부분. ‘만국래조도’는 청의 번부, 조공국 사신과 외국 사절이 청 황제에게 조하를 드리러 온 장면을 묘사했다. 코끼리 뒤 쪽으로 조선 사절의 모습도 보인다. 푸른역사 제공

베이징 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만국래조도’의 일부분. ‘만국래조도’는 청의 번부, 조공국 사신과 외국 사절이 청 황제에게 조하를 드리러 온 장면을 묘사했다. 코끼리 뒤 쪽으로 조선 사절의 모습도 보인다. 푸른역사 제공

청나라 왕래 사신 연행록 들추니
세상사에 무지한 ‘조공국의 운명’

사진 마법에 놀라고 첫 모델까지
베이징 절엔 ‘왔다 감’ 인증 빼곡
낯선 문물 접한 에피소드 새 발견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조·청관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에 따르면 19세기에 나온 연행록만 100종이 넘는다. 이전에도 많은 사신들이 청나라에 다녀온 여정을 기록했다. 김창업의 <노가재연행일기>, 홍대용의 <을병연행록>, 박지원의 <열하일기>처럼 잘 알려진 기록도 있고, 전문가들만 찾아 읽는 소소한 기록들도 있다.

사실 청나라를 다녀온 연행록은 다 비슷비슷하다. 이전 연행록을 참고해 일정을 정하고, 그 일정대로만 다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슷한 여정이라도 모든 경험이 똑같을 수 있는가. 어떤 이는 흔한 일을 별일처럼 쓰기도 하고, 감추고 싶은 이야기를 과감히 드러내기도 한다.” 저자 손성욱 선문대학교 교수는 ‘거기서 거기’ 같은 연행록을 살피고 또 살펴 새로운 ‘발견’을 하는 데 몰두했다. 이를테면 이렇다. “1862년 청나라에 사행을 갔던 이항억은 <연행일기>에 한국 최초의 사진 촬영 기록을 남겼다. 유리판에 사람을 옮기는, 조선인이 이해하기 힘든 마법 같은 경험이었다. 이제 북경에서 사진 찍는 것이 새로운 유행이 됐을 것 같다는 촉이 왔다. 1871년까지 사행 기록 20여종을 읽으며 관련 기록을 찾았다. 하지만 사진을 찍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체념하려는 순간 1872년 청나라에 다녀온 이면구의 <수사일록>에서 사진 이야기를 발견했다. 유레카!”

연행록 제목만 살펴봐도 역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원래 연행록의 이름은 ‘조천록(朝天錄)’이었다. 명나라 때 천조를 방문한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청나라, 그러니까 오랑캐가 중원의 주인이 된 이후에는 더 이상 조천록이란 이름으로 부를 수 없었다. 그래서 보통 연경에 다녀오는 기록이라 하여 연행록이라 불렀다. 19세기 들어서는 연행록 제목에 ‘놀 유(遊)’자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종원유연록>(서유진), <북유만록>(손병주), <몽유연행록>(이우준) 등이다. 또 <관연록>(김선민), <관화지>(이승오) 등 명나라를 다녀온 기록에만 붙이던 ‘볼 관(觀)’자를 쓴 연행록도 나왔다. 저자는 “사행에 ‘유람’ 의식이 투영되고, 청나라가 명나라에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살펴볼 만한 곳이 되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책은 네 부분으로 구성됐다. 1부 ‘유람하다’에서는 조선 사신의 북경에 관한 인식과 다양한 유람 체험을 다뤘다. 그들의 유람을 통해 청나라의 흥망성쇠를 엿볼 수 있다. 2부 ‘교유하다’에서는 북경에서 이루어진 조선 문인과 청나라 문인의 교유에 대해 다뤘다. 3부 ‘교섭하다’에서는 사신의 공적 임무인 교섭 막후의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마지막 4부에서는 1895년 청일전쟁의 결과로 완전한 독립국이 된 조선이 우여곡절 끝에 북경에 공사관을 세우고 공사를 파견하는 과정이 나온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다. 특히 북경을 둘러보기 위해 법장사 백탑에 오른 조선 사신들이 ‘남의 나라 문화재’에 ‘나 여기 왔다 갔노라’라는 흔적을 자주 남겼고, 19세기에 이르면 백탑 벽면에 조선 사람 이름이 가득 차 더 이상 이름을 쓰기 힘들었다는 기록은 웃음을 자아낸다. ‘다행히도’ 법장사 백탑은 1965년 철거돼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안타까움이다. 조선은 세자를 책봉할 때마다 청나라에 주청을 올려 윤허를 받아야 했다. 적장자가 아닌 이윤(경종)이 세자가 됐을 때 청나라 황제의 윤허를 받아오지 못한 사신들은 삭탈관직과 문외출송(한양 밖으로 쫓겨남)이란 벌을 받았다. 국제 정세에 밝았던 역관들은 신분의 한계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조선 지도자들은 세계 정세에 무지했다. 그리고 조선의 외교사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끝난다.

연행록이라는 시간과 공간이 한정된 기록을 통해 조선과 청나라의 외교사를 흥미롭게 풀어나가는 책이다. 에피소드 중심으로 서술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은 통찰력 있는 몇몇 이들만의 유람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사람들에게 북학파의 이야기가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조선 사신의 경험이 다양하게 읽혔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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