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게 하루하루 똑같이 살아가는 내가 문득 낯설 때

이종산(소설가)
[이종산의 장르를 읽다] 익숙하게 하루하루 똑같이 살아가는 내가 문득 낯설 때

인형의 집을 가져본 적이 있던가? 잠시 생각해본다. 있었다. 이층짜리 미미의 집이었는데 침대와 욕조도 있었고 현관에는 불도 켜졌다. 그 집에 사는 미미 인형들은 나의 가장 큰 보물이었다. 그후로 시간이 흘러 영화 <유전>을 봤을 때 나는 감독이 미니어처 하우스를 영화에 끌어들인 방식에 감탄하면서 진심으로 생각했다. ‘아, 나도 저런 멋진 미니어처 하우스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인형과 장난감을 좋아해서 아직도 꽤 진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데, 장난감이 꽤 있는 편인데도 어린 시절 이후에는 인형의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 장난감 집을 보면 즉각적으로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한참을 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크기가 커서 놓을 데도 마땅치 않고 가격도 있는 편이다 보니 매번 마음을 접고 내려놓게 된다.

세상에 나의 ‘덕심’을 자극하는 카테고리는 두 가지밖에 없는데, 하나는 장난감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그중에서도 조이스 캐럴 오츠는 뭐랄까, 언제나 누르기만 하면 나의 덕심을 튀어나오게 하는 버튼 같다. 그러니 조이스 캐럴 오츠의 작품집 <흉가>에서 ‘인형’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발견했을 때 내 기분이 어땠겠는가? 마치 오래전부터 이 소설과 내가 운명적으로 이어져 있었다는 느낌이었다.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플로렌스 파’라는 여성이다. 플로렌스는 네 살 때 유별나게 크고 아름다운 인형의 집을 받는다. 이 근사한 인형의 집은 어린 그녀의 보물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학회 일정 때문에 낯선 도시에 간 플로렌스는 거리에서 자신이 어릴 때 갖고 있던 인형의 집과 놀라울 정도로 똑같이 생긴 대저택을 본다.

현재 대학 총장이자 인문대 경영자들의 학회에서 특별 연사를 맡고 있는,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위치에 있는 그녀는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 노력하면서 우선은 일을 하러 가지만 결국 그날 밤 강렬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대저택으로 향한다. 그 집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미리 얘기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조이스 캐럴 오츠를 읽어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그 음흉하다고 할 정도로 노련한 대작가가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을지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을 테니 말이다.

여기에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플로렌스가 그 집에서 나온 후에 일어난 일이다. 대저택 안에서 섬뜩하고 기묘한 일을 겪고 나온 플로렌스는 다음날 손을 덜덜 떨면서 연단에 선다. 그녀는 수많은 청중 앞에서 연설을 해야 한다. 입도 떼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이 그녀를 사로잡지만 막상 연설을 시작하자 말이 술술 나온다. 연설이 끝나자 청중들은 모두 열광적으로 박수를 친다. 그녀에게는 연설을 하는 일이 너무나 익숙하다. 학회는 성공적으로 끝난다.

그녀의 인생은 그후로도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 끝없이 이어지는 학회에 참석해 성공적인 연설을 하면서. 조이스 캐럴 오츠는 그것을 이렇게 쓴다. ‘정교하고도 정확하게 제작된 시계태엽 장치처럼, 살아 움직이는 마네킹처럼 그녀는 언제나 잘할 터였다.’

아침에 집에서 출근 준비를 하다보면 문득 묘한 느낌에 휩싸일 때가 있다. 북토크에 나가서 이미 몇 번이나 들어본 질문에 정해진 대답을 술술 말하고 있을 때도 그렇다. 어쩌면 누가 내 위에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어느 아이의 인형일 뿐이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아침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귀찮은 일들을 처리하는 오늘 하루가 사실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말인가? 생각해보니 어제 했던 일들과 오늘 했던 일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오늘 같고…. 만약 내가 누군가의 인형이라면 당장 멋진 차에 날 태워서 여행을 떠나게 해주기를. 그런데 그런 일이 아직 일어난 적 없는 걸 보면 나의 주인도 아직 인형에게 멋진 차를 사줄 정도로 돈을 모으지 못했나 보다. 절약해서 저축해, 이 친구야! 난 차도 필요하고 더 큰 집도 필요하다고! 들려? 그리고 나랑 짝지어줄 멋진 인형도 부탁해!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