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사람을 더 오래, 더 자주 분노하게 만든다···소셜미디어에 의한 ‘소셜온난화’

선명수 기자

소셜온난화

찰스 아서 지음·이승연 옮김|위즈덤하우스|472쪽|2만2000원

한때 소셜네트워크가 제시하는 미래는 낙관적이었다. 페이스북은 ‘모든 사람을 연결’하겠다고 공언했고, 유튜브는 누구나 방송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트위터는 아이디어를 내고 공유할 권한을 모두에게 부여한다고 했다. 연결과 소통, 참여가 만들어낼 세상은 그야말로 멋진 신세계처럼 보였다. 많은 이들이 소셜네트워크가 다수의 시민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고 관계 맺는 ‘열린 광장’이 될 것이라 낙관했다. 2010년 말부터 시작된 ‘아랍의 봄’ 시위에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목소리가 소셜미디어를 타고 전 세계로 확산될 때 그런 희망은 이미 현실이 된 듯했다. 더 많이 연결되고, 더 많이 소통할수록 세상이 더 나아질 것이라 믿었다.

이런 낙관은 지금도 유효할까. 어느덧 소셜미디어는 ‘성난 사람들’의 공간이 되어버렸다. 가짜뉴스와 이를 바탕으로 한 선전·선동이 힘을 얻고, 양극단으로 나뉜 사람들은 분노를 무기로 서로를 공격한다. 내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알고리즘에 갇혀 확증편향은 점차 심화된다. 이런 흐름에 정치 역시 편승해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는 ‘자기 편 정치’에 함몰돼가고, 급기야 소셜미디어에서 형성된 여론이 실제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일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선거캠프 책임자였던 브래드 파스케일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덕분에 우리가 승리했다”고 공언한 바 있다.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당선된 2016년 필리핀 대통령 선거도 비슷한 사례였다. 첨예한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때 소셜미디어는 편 가르기의 장으로 돌변했다. 분노에 찬 정치인이 사람들을 자극할 극단적 발언을 소셜미디어에 쏟아낼수록 더 큰 호응을 얻었다. 검증과 토론은 실종되고 양극단의 사람들이 서로를 향한 열렬한 분노와 증오를 키워갔다. 페이스북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의 말처럼, 소셜네트워크는 확실히 사람들을 ‘연결’했다. 단 비슷한 사람끼리.

깨진 유리를 통해 보여지는 페이스북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깨진 유리를 통해 보여지는 페이스북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10월28일 ‘메타’로의 사명 변경을 알리는 화상 행사에서 메타버스 속 자신의 아바타와 이야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10월28일 ‘메타’로의 사명 변경을 알리는 화상 행사에서 메타버스 속 자신의 아바타와 이야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에서 활동한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저자 찰스 아서는 이런 현상을 ‘소셜온난화(Social Warming)’라고 이름 붙인다. 산업화 이후 쉴 새 없이 배출된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와 기후재앙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중의 분노를 이용하려는 세력이 득세하며 사회의 온도를 들끓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 ‘온난화’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것이 점진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상황이 악화되는 순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책이 꼽은 ‘소셜온난화’의 세 가지 요소는 스마트폰의 광범위한 보급과 주목과 참여를 유도하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알고리즘 개발, 그리고 규제의 부재다. 문제는 알고리즘에 인간과 같은 도덕 관념이 없다는 것이다. 플랫폼 사업자들은 사람들을 더 자주, 그리고 더 오래 플랫폼에 연결시키기 위해 주목을 끄는 게시물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참여를 유도한다.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추천된 이런 게시물들을 통해 극단주의자들은 서로를 더 잘 찾을 수 있게 되고 분노한 이들은 더 열렬히 분노한다. 이에 따라 혐오발언을 넘어 오프라인에서도 과격 행동이 일어나지만, 이에 대한 규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커버그는 공식적으론 “혐오그룹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런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제재하지 않는다. 광고가 잘 붙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러 사례를 통해 ‘현대판 내연 엔진’이라 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가 만들어낸 위험하고 양극화된 온난화 현상을 짚는다. 그는 수많은 사용자들의 참여와 힘으로 테크 기업들이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지만, 정작 이로 인한 부작용은 외면하고 있는 점을 지적한다. 이들 기업이 사람들을 연결시켰을 뿐, 책임지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증폭의 알고리즘과 바이럴 마케팅이 결합하는 현재의 상황을 방치하고 땜질 처방만 내놓는다면 소셜온난화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소셜온난화의 문제를 스크린 뒤의 알고리즘 탓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그 알고리즘을 만들고 방치해온 사람, 즉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갖고 있는 테크 대기업에 대한 규제로 풀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분노한 사람을 더 오래, 더 자주 분노하게 만든다···소셜미디어에 의한 ‘소셜온난화’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