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자본 세습하는 중국의 '선거사회'...지금 우리라고 다를까

김유익 재중문화교류활동가
[김유익의 광저우 책갈피]학력자본 세습하는 중국의 '선거사회'...지금 우리라고 다를까

허화이홍
<선거사회(選擧社會)>

40일 넘게 전 주민의 자택격리가 진행 중인 상하이를 가까스로 탈출한 유럽인 청년이 질문을 던진다. “왜 중국 시민들은 이런 부당한 정책에 저항하지 않는 거죠?” 상하이에 거주하는 한국인 지인이 분노를 표한다. “우리 아파트에 사는 한 고위공무원 가족이 양성 판정 후에도 격리시설에 안 가고 줄줄이 확진되는 통에, 보름 넘게 단지 내 산책도 못하고 있어요.” 중국은 여전히 소수의 통치세력인 관과 대다수의 민으로 나뉘는 계급사회일까?

베이징대학의 정치철학자 허화이훙(何懷宏) 교수는 많은 학자들이 중국 전통사회를 단순히 봉건전제사회라고 부르는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그래서 서주(西周) 시대에서 춘추 시기까지는 ‘세습사회’, 한나라에서 청 말까지를 ‘선거사회’라고 분석한 두 권의 책을 펴냈다. 여기서 선거(選擧)는 투표(election)가 아니라 선택(selection)을 의미한다. 중국은 추천에 의한 찰거와 필기시험인 과거제를 통해 평민에게도 관료가 될 기회의 평등을 부여한 역사가 2000년이 넘는다. 극소수의 천민들은 과거에 참여할 수 없었지만, 명·청 시기를 거치며 신분제가 해체되고 적서차별도 없앴기 때문에 이는 전혀 빈말이 아니다. 문헌 고증을 통한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 관료로 임용된 사람들 중 20~50%가 평민 출신이었다. 그 비율은 등락을 거치며 꾸준히 증가해왔다.

세습사회 즉 봉건제가 해체되면서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군주의 세습을 통해 사회의 안정을 꾀하는 동시에, 국가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관료의 세습은 막았기 때문이다. 비결은 역시 유교와 공자, 그리고 귀족도 평민도 아니면서 동시에 귀족도 평민도 될 수 있는 사인(士人) 계급의 등장이다. 그 자신이 사인의 대표 격인 공자는 봉건적 신분계급질서를 옹호했지만, 동시에 학교를 열어 신분에 상관없이 제자로 받아들였다. 누구나 덕행과 학문을 닦으면 관료가 될 수 있는 ‘고전 중국몽’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서구사회의 봉건제는 종교와 무력, 그리고 영지에 기반한 재력을 결합하고, 귀족 신분을 법률로 명문화했다. 이와 달리, 중국 상위계층의 권력은 관직으로부터 나오고, 관료가 되기 위한 조건은 개인의 문화역량이었다. 과거제는 팔고(八股)라는 표준을 유지했는데, 송대에 왕안석이 틀을 기초한 후, 주희가 정리하고 주석을 단 사서(四書)를 다루는 경학(經學)이 주요한 내용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철학, 논리학, 정치학과 사회학 등이 결합된 인문사회과학이다. 그 형식은 시부(詩賦)로 문학적 재능도 함께 살폈다.

좋은 제도라도 오래되면 모순이 쌓이게 마련이다. 급제할 때까지 대부분의 응시자들이 지나치게 오랜 시간을 사용하기도 했고, 너무 많은 이들이 좁은 문으로 몰려와 국가와 사회에도 부담이 됐다. 권력을 얻으면 명예와 부를 함께 보장했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비트포겔이 지적한 대로 지배집단에 새 피를 수혈할 뿐 현대사회의 민주적 평등을 보장하지 못한다. 이제 오랜 전통이 그림자를 드리운 중국의 현실이 조금 이해가 간다면, 그 전통을 공유하는 한국도 돌아볼 만하다. 법조권력을 위시한 고위관료들의 특권의식과 권능, 이를 인정하는 언론과 대중의 판단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정치성향과 무관하게 학력자본을 세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중산층은 현대판 사인 계급인 것일까?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