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장애는 반드시 치유돼야 한다는 생각, 그것이 폭력입니다

김지혜 기자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김은정 지음 | 강진경·강진영 옮김 | 후마니타스 | 424쪽 | 2만3000원

이 책은 영화 <꽃잎>에서와 같이 국가 폭력의 은유로서 장애여성이 재현될 때, 그 이후에도 장애여성 개인이 겪어내야만 하는 억압과 폭력의 경험들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을 우려한다. <꽃잎>의 한 장면.

이 책은 영화 <꽃잎>에서와 같이 국가 폭력의 은유로서 장애여성이 재현될 때, 그 이후에도 장애여성 개인이 겪어내야만 하는 억압과 폭력의 경험들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을 우려한다. <꽃잎>의 한 장면.

2005년 7월31일 KBS <열린음악회>는 배아 줄기 세포 복제 성공을 발표한 과학자 황우석의 성과를 기념해 방송됐다. 척추 손상으로 장애를 갖게 된 가수 강원래의 휠체어 댄스 공연이 펼쳐졌고, 그 직후 황우석이 무대에 올라 말했다.

“이와 같은 난치 질병의 해결책이 어디에 있는지 저는 아직은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강원래군을 벌떡 일으켜 이제 과거 보여주셨던 그 날렵한 솜씨를 KBS 다음 다음번 <열린음악회>에서 다시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 그날을 위해 온 국민과 함께 같이 가고 싶습니다.”

휠체어를 탄 현존하는 신체에서 ‘벌떡’ 일어선 미래부터 상상하는 황우석의 말에는 장애를 응당 재활하고 극복해야 하는 치유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전제돼 있다. 미국 시라큐스대 여성·젠더학과 장애학 프로그램의 김은정 부교수는 2017년 미국에서 출간한 저서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을 통해 이러한 시선을 “치유 폭력”으로 규정한다.

불편한 몸을 사고 이전의 상태로, 혹은 치료를 통해 개선된 상태로 변화시킨다는 생각이 무슨 문제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생각에 “장애와 질병이 없는 상태가 있는 것보다 바람직하다 전제”가 숨어 있으며, 이는 “(이러한 전제에) 반하는 많은 행위와 경험 그리고 장애와 질병으로 얻게 되는 지식을 부정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에게 치유 폭력이란 “타자를 소위 나아지게 해줄 것이라는 명목으로 타자가 지닌 차이를 지우려는 힘의 행사”를 뜻한다.

한국 우정사업본부는 2005년 황우석의 성과를 기리는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 배양 성공 특별 우표로 ‘줄기세포 배양 과정과 희망’이라는 우표를 발행했다.  우표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벌떡 일어서 누군가와 포옹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한국 우정사업본부는 2005년 황우석의 성과를 기리는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 배양 성공 특별 우표로 ‘줄기세포 배양 과정과 희망’이라는 우표를 발행했다. 우표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벌떡 일어서 누군가와 포옹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의학적 치유에 반대하거나 장애와 질병에 대한 치유 자체가 폭력이라고 주장하는 책이 아니다. 책이 수행하는 것은 “장애와 질병을 갖고 살아가는 삶을 현존하는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생각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 치유 담론에 대한 비판이며, 이를 통해 “장애의 경험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대안적인 존재론”을 열고자 한다.

황우석의 발언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그의 말 속에서 방금까지 화려한 군무의 주체였던 강원래의 몸의 가치는 부정되고, 무려 ‘국민이 함께 갈’ 장밋빛 미래를 위해 마땅히 변화되고 기다려야 할 구원의 대상으로 변모한다. “강원래가 장애를 갖기 이전의 과거와 치료된 미래만이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책은 치유 담론이 만들어내는 이같은 유예와 배제를 “접힌 시간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장애인에게 과거와 미래만을 허락하는 접힌 시간성은, 장애가 있는 현재를 살아갈 가치가 없는 것으로 부정하며 나아가는 폭력적인 ‘진보’의 서사를 만든다.

책은 근현대 한국에서 장애를 다룬 소설, 영화, 신문 기사, 정책 문건, 활동가의 글 등의 문화적 재현물에서 치유 폭력이 어떻게 작동해왔는지 드러내며,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공유해 온 장애에 대한 빈곤하고 제한된 상상력과 이와 상호작용하며 만들어진 실제 차별의 지형을 보여준다.

특히 식민 지배와 전쟁을 겪은 한국의 맥락에서 ‘장애가 있는 신체’는 곧 ‘장애화된 국가’를 딛고 나아갈 진보를 위해 마땅히 근절돼야 될 대상으로 여겨졌음에 주목한다. 저자는 근대 이후 한국이 “정상적이고 건강하며 독립적일 뿐만 아니라 남성적이고 가부장적이며 단일 인종으로 이뤄진 국가”의 정체성을 획득하기 위해 달려왔음을 확인한다.

즉 한국이라는 국민국가 건설과 발전은 장애인과 함께 여성, 빈민, 혼혈아, 성매매 종사자 등 소수자의 자리를 인지하고 배제하는 ‘정상성’의 설계 속에서 이뤄졌다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소수자들은 ‘정상성’의 자리로 이동하고 변화할 것을 국가로부터 지속적으로 강요당하는 ‘치유’의 폭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왔다는 것이다.

[책과 삶]장애는 반드시 치유돼야 한다는 생각, 그것이 폭력입니다

장애여성의 자리는 단연 취약하다. 장애여성은 장애인이자 여성이며, 때로는 빈민이며 성매매 종사자로서 다양한 형태의 치유 폭력 피해자가 된다. 동시에 장애여성은 한국의 문학과 영화 등에서 식민 지배 혹은 독재 치하의 ‘장애화된 국가’의 은유로서 존재해왔다. 문화적 재현물 속에서 장애여성은 이성애 관계 혹은 가부장제라는 ‘정상성’을 통해 응당 치유돼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며, 이러한 치유는 실제 장애여성을 향한 폭력을 은폐하고 강화시키는 문제를 낳는다.

예컨대 2007년 방송된 다큐멘터리 <엄지공주 엄마가 되고 싶어요>는 선천성 질환인 골형성부전증을 가진 저신장 여성이 임신을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 여성은 ‘착상 전 유전자 진단’이라는 기술적 개입을 통해 목숨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장애가 없는 아이’를 낳으려 애쓰는데, 이같은 분투는 ‘눈물겨운 모성’의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선풍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 다큐멘터리의 인기는 장애여성에게 사회가 바라는 ‘치유’란 무엇이었는지를 잘 드러낸다. 사회는 장애여성이 ‘정상성’을 가진 사회의 다른 구성원처럼 이성애 관계를 통해 성별을 인정받고, 장애가 없는 아이를 재생산하는 과정을 밟기를 바란다. 이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건강한 재생산 주체’로서의 모성을 획득할 때에만 비로소 이 장애여성에게 ‘인간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태도다.

실제 <엄지공주>의 서사는 기술적 개입을 이용하지 않고 유전되는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장애여성을 향한 적대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거대한 치유 서사에 반기를 들기란 쉽지 않다. 독립영화 <팬지와 담쟁이>에서 결혼과 출산에 성공하지 못하고 치유 서사 바깥으로 떠밀린 두 장애여성은 그저 ‘침묵’으로 이 폭력을 매섭게 응시할 뿐이다.

문학과 영화에서는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말 그대로 치유의 이름으로 자행되곤 했다. 책은 1940년대 농촌 공동체를 배경으로 하는 이문열의 소설 <아가>(2000)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장애여성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가해온 과거를 고백하는 화자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가 성적인 측면에 집착한 것은 그녀의 불행을 즐기는 잔혹 취미가 아니라 불완전한 그녀의 성적 기호를 보완해주는 의미가 있었다고. 우리는 진심으로 그녀의 여성성을 승인했으며, 방법은 달랐지만 틀림 없이 그녀를 한 여성으로 사랑한 것이라고.”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2002) 역시 마찬가지다. 갓 출소한 남자 종두(설경구)는 신체장애와 언어장애가 있는 여성 공주(문소리)를 성폭행한 후 사랑에 빠진다. 영화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사랑의 가능성을 강조하기 위해 애초의 성폭력을 문제 삼지 않는다. 영화 <오아시스>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2002) 역시 마찬가지다. 갓 출소한 남자 종두(설경구)는 신체장애와 언어장애가 있는 여성 공주(문소리)를 성폭행한 후 사랑에 빠진다. 영화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사랑의 가능성을 강조하기 위해 애초의 성폭력을 문제 삼지 않는다. 영화 <오아시스>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남성 화자는 자신들이 저지른 폭력이 “여성성을 승인”하고 장애여성의 성별 결함을 “치유하려는” 개입이었다고 정당화한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2002) 역시 마찬가지다. 갓 출소한 남자 종두(설경구)는 신체장애와 언어장애가 있는 여성 공주(문소리)를 성폭행한 후 사랑에 빠진다. 영화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사랑의 가능성을 강조하기 위해 애초의 성폭력을 문제 삼지 않는다. 그 폭력은 “아직 인간이 되지 못한 존재”로서의 장애여성을 “이성애 체계 안으로” 끌어들여 이른바 ‘정상사회’의 젠더화된 여성으로 만들어주기 위한 치유의 일종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편 김기덕 감독의 영화 <수취인불명>(2001)이나 장선우 감독의 <꽃잎>(1994)의 경우 각각 미군의 폭력으로 위시되는 냉전체제와 5·18민주화운동이라는 국가적인 트라우마를 장애여성이라는 신체로 표현한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수취인불명>(2001)이나 장선우 감독의 <꽃잎>(1994)의 경우 각각 미군의 폭력으로 위시되는 냉전체제와 5·18민주화운동이라는 국가적인 트라우마를 장애여성이라는 신체로 표현한다. <수취인불명>의 한 장면. 튜브엔터테인먼트 제공

김기덕 감독의 영화 <수취인불명>(2001)이나 장선우 감독의 <꽃잎>(1994)의 경우 각각 미군의 폭력으로 위시되는 냉전체제와 5·18민주화운동이라는 국가적인 트라우마를 장애여성이라는 신체로 표현한다. <수취인불명>의 한 장면. 튜브엔터테인먼트 제공

특히 영화 <꽃잎>이 국가 폭력에 의한 트라우마의 은유로서 정신장애 여성을 그려내는 방식에 대한 분석은 이 책의 가장 독창적인 지점으로 보인다. 저자는 은유로서 장애여성이 재현될 때, 국가 폭력 이후에도 장애여성 개인이 지속적으로 겪어내야만 하는 억압과 폭력의 경험들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을 우려한다.

최근 한 40대 여성이 발달장애가 있는 6세 아들을 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같은 날 대장암을 진단받은 60대 여성이 30대 중증 장애가 있는 딸과 함께 목숨을 끊으려다 혼자 살아남았다. 장애를 ‘치유’할 것을 강요하면서, 그 책임을 온전히 ‘가족’에게 맡기는 우리 사회는 장애를 가족의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부담’으로 만드는 폭력을 반복하고 있다. <심청전>의 심청이 맹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아야 했던 희생의 서사는 현대의 치유 담론 아래 여전히 재생산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치유를 당연한 것이 아닌 선택으로 사고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상태가 호전되거나 병이 완전히 낫지 않아도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장애와 질병을 가진 사람들의 관점과 경험으로 만들어진 지식이 요구되며 장애와 질병의 현존과 경험 자체가 사회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제 ‘접힌 시간성’을 다시 펼쳐낼 때다. 장애와 질병을 가진 몸의 현재에 기쁨을 불어 넣을 수 있도록, 사회를 새롭게 구성해야한다. 뇌병변 장애인이자 활동가이며 작가인 일리아 클레어의 말처럼 “치료되어야 하는 것은 비장애중심주의이지 우리의 몸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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