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도 있었어요…아이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던 시절, 가장 선명했던 시절

손버들 기자
[그림책]당신에게도 있었어요…아이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던 시절, 가장 선명했던 시절

해님이 웃었어
기쿠치 치키 글·그림 | 황진희 옮김
사계절 | 44쪽 | 2만3000원

표지부터 강렬하다. 바다처럼 파란 바탕에 해님처럼 웃고 있는 아이. 책장을 펼치면 커다란 무당벌레가 앞으로의 여정을 안내한다. 아이가 바람이랑 산책을 한다. 풀숲에 납작 엎드려 벌레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반짝반짝 소곤소곤…. 다시 바람이 일렁이고 붉은 꽃들이 춤을 춘다. 흔들흔들…. 나비도 따라 춤춘다. 후후후 후후후…. 순간 개구리가 폴짝 뛰어오르고 아이는 개구리와 눈이 마주친다.

개구리는 폴짝폴짝 뛰고 아이의 가슴은 벌렁벌렁 요동친다. 흙이 움직인다. 흙 속에는 지네와 도마뱀과 하늘소 같은 작은 동물들이 꿈틀거린다. 아이는 이 유혹을 떨치기가 어렵다. 안 보려고 해도 자꾸만 눈이 따라간다. 호기심을 좇아가다 불현듯 무서워진 아이의 발이 빨라진다. 두려워하는 아이를 달래듯 길은 기다려주고 큰 나무는 가지를 벌려 보듬는다. 그제야 안도한 아이는 커다란 나무만큼 다리와 팔을 쭉쭉 늘리는 상상을 한다. 나무 위로 위로 올라간다. 새들의 노래가 쏟아지고 쏟아진다. 여름날의 소낙비처럼.

날았다. 아이는 마침내 새가 된다. 새들과 함께 하늘을 난다. 바람이랑 산책을 시작한 아이는 바람이랑 손을 잡는다. 벌레들과 꽃들과 나비들과 새들과 다 함께 손을 잡는다. 신이 난 아이를 본 해님이 샛노랗게 웃는다. 아이는 그 속에서 따스함을 느낀다.

[그림책]당신에게도 있었어요…아이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던 시절, 가장 선명했던 시절

이 책의 주인공은 색이다. 작가는 파랑, 분홍, 노랑, 검은색을 묻혀 포개 찍은 목판화로 표현했다. 작렬하는 원색이 물결친다. 판화 특유의 거친 질감과 농도는 팔딱이는 자연의 생명력을 더 생생하게 드러낸다. 자신의 색을 잃고 희미해져가는 어른들에게 가장 선명했던 시절을 향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아이를 키워본 부모들은 보았을 것이다. 산책하러 나간 아이가 길가의 풀숲에서 작은 꽃과 벌레들을 발견한 뒤 “이것 봐요” 말하는 순간을. 그 작은 생명들을 찾아내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이것 봐요”라고 말하며 웃는 아이의 얼굴이 햇살처럼 빛나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이걸 어떻게 찾았니?” 세심한 눈썰미에 감탄도 했을 것이다.

어린아이의 눈에는 어떻게 그 작고 소소한 것들이 커다랗게 보이는 걸까. 아이는 작은 것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니까. 나비, 개구리, 꽃, 새들과 눈을 마주치니까. 어른들은 먼 곳의 높은 곳만 바라보기에 바로 곁의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그사이 샛노랗게 빛나던 미소는 흐릿해져간다. 그런 어른들에게 잃어버린 눈높이를 찾아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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