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최근 서울 송파구 석촌동 고분에서 한성백제 시대 적석총이 확인됐습니다. 새삼 40여 년 전 ‘야만의 시간’을 되짚어봅니다.

1983년 개발의 광풍 속에서 포클레인 삽날에 백제인골이 찍혀나간 참상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천인공노할 참상을 고발하고, 온몸으로 유적을 지켜낸 소장학자가 있었습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석촌동 고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을 겁니다. 당연히 한성백제 493년의 역사도 파괴되었을 겁니다.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듣기

더불어 최근의 발굴성과를 토대로 백제의 최전성기인 한성백제 시대를 되짚어보려 합니다. 백제 시조 온조왕이 지금의 송파구, 즉 예전의 광주평원에 둥지를 튼 이유는 무엇일까. 형인 비류는 지금의 인천(미추홀)에 도읍을 정했다가 실패로 돌아갔다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또하나, 한성백제의 도읍지는 과연 어떻게 구성돼 있었을까.

이와 함께 당시 백제 임금과 왕족, 귀족이 묻힌 한성백제기의 공동묘지, 즉 ‘석촌동 고분의 어제 오늘’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113회는 ‘포클레인 삽날에 찍힌 한성백제 493년의 역사’입니다. 팟캐스트와 함께 읽을 기사 두 편을 준비했습니다. 난개발 속에 외딴 섬처럼 보존된 석촌동 고분의 어제와 오늘을 감상하시기바랍니다. 블로그 기사 ①편은 ‘포클레인 삽날에 찍힌 석촌동 백제인골, 백제왕릉’, ②편은 ‘석촌동 3호분의 주인공은 근초고왕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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