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475년 9월이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 3국 가운데 가장 먼저 전성기를 구가한 백제가 한성시대를 마감합니다. 그런데 그 최후의 순간은 너무도 비참합니다. 임금인 개로왕은 백제에서 죄를 짓고 고구려로 도망간 배신자에게 잡혀 아차성까지 끌려온 뒤 목이 잘립니다.

개로왕은 사로잡히기 전 아들인 문주(왕)에게 “너는 후일을 도모하라”는 당부를 남깁니다. 이로써 중국사서에 따르면 중국 요서지방에까지 식민지를 건설했으며, 왜왕에게 칠지도까지 하사하는 등 국력을 떨쳤던 한성백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립니다.

그후 1400년 이상 한성백제는 잊혀진 왕국이 됩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역사의 편린이 얼핏 드러났지만 그것으로 그만이었습니다. 강고한 식민사관의 영향력 아래 한성백제의 왕성이 폄훼되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백제가 그때 그렇게 강한 고대국가였을 리 만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70여년이 흘러 재조명 받기 까지 한성백제는 여전히 잊혀진 존재였습니다. 1996년 말 극적인 반전으로 현현한 한성백제의 역사가 지금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땅 밑에서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듣기

이곳에서 전성기 한성 백제 493년의 대서사시를 느껴보기 바랍니다. 전쟁과 냉전이 오가고, 스파이가 암약했으며, 배신과 복수, 그리고 치열한 외교전까지 어우러진 숨막히는 동족상잔의 드라마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으니 말입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114회는 ‘한성백제, 최후의 그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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