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다문 미소에 ‘시건방지다’고 반발할수록 그 진리성만 증명해준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그 남자들은 왜 페미니스트 시장 후보 벽보에 분노했을까

시건방지다 : 시큰둥하게 건방지다. 6·13 지방선거에서 ‘페미니스트 시장’을 전면에 내세운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의 벽보에 대해 최근 한 유명 남성 인권변호사는 “개시건방진” 사진이라며 “나도 찢어 버리고 싶은 벽보”라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발언했다. 이후 문제가 되자 곧 “사진 구도와 벽보의 분위기에 대한 비평”이었을 뿐 후보에 대한 공격은 아니었노라 딱히 이해되지 않는 해명을 하긴 했지만, 해당 벽보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은 사람들은 그 하나만이 아니었던 듯하다. 변호사 스스로 “나도” 찢고 싶다고 말했듯, 이미 서울 곳곳에서 신지예 후보의 선거 벽보를 감싸고 있는 비닐이 찢어지고 벽보가 사라지거나 담뱃불로 눈 부위를 지지는 등 훼손 사례가 22건에 달하고 있다.

6·13 지방선거에 나선 서울시장 후보들의 포스터. 기호 8번 녹색당 신지예 후보는 입을 다문 채 미소짓고 있다. 다른 후보들은 이를 드러내고 웃거나 무표정하게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다. 사진 크게보기

6·13 지방선거에 나선 서울시장 후보들의 포스터. 기호 8번 녹색당 신지예 후보는 입을 다문 채 미소짓고 있다. 다른 후보들은 이를 드러내고 웃거나 무표정하게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다.

국정농단의 주역 정당의 후보도 아닌 군소 정당 후보에게 그들은 왜 그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까. 그들이 느낀 것 역시 그 인권변호사와 크게 다를 게 없다면, 과연 신지예 후보의 사진 중 무엇이 그토록 시건방진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일까. 가운데 손가락을 세운 것도 아니고 혀를 내밀어 조롱한 것도 아닌 이 사진의 어떤 도상 기호가 그러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을까. 당장 벽보에 ‘시건방진 시장 후보’라는 슬로건이 적혀 있더라도 훼손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차치한다면, 이것은 여성 이미지의 의미와 해석, 소비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사례다.

강렬한 눈빛과 직시하는 시선
한 남성 변호사 SNS에서 공격
젊은 여성 정치인 표정에 딴죽

남성 사회 종식 메시지로 해석
사라질 위기 스스로 직감한 듯
주관적 논리·주장으로 빗나가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는 인터넷에서 “시건방지다”고 공격받았다.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는 인터넷에서 “시건방지다”고 공격받았다.

물론 신지예 후보에게 시건방지다는 표현을 쓴 변호사는 꽃뱀을 알아볼 능력이 있다던 전직 변호사에게도 시건방지다는 표현을 썼다. 일종의 말버릇이란 건 참작하자. 그럼에도 그가 “계몽주의 모더니즘 삘”이라는 표현을 더해 무언가 자신이 하대받는 느낌을 받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신지예 후보의 안경으로부터 <민족개조론>을 쓴 춘원 이광수를 유추한 것일까? 과잉 해석이다. 안경은 박원순, 김문수 후보도 꼈다. 강렬한 눈빛과 직시하는 시선? 그럴지도 모르지만 눈빛은 다분히 주관적인 개념이다. 오히려 눈빛의 의미는 나머지 표정들이 만들어내는 시각 기호들을 통해 사후적으로 재구성되는 것에 가깝다. 신지예 후보 사진에서 다른 후보들과 가장 차별화되는 것은 다문 입과 한쪽 입매 끝이 살짝 올라간 미소다(살짝 측면으로 돌아선 구도라 오른쪽 입매만 도드라진다). 서울시장 후보, 서울시교육감 후보, 그리고 동네 구의원 후보 벽보를 모두 살펴본 결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신지예 후보를 제외하면 웃는 얼굴은 모두 이까지 환하게 드러난 웃음을 짓고, 입을 다물었을 땐 무표정하게 다른 곳을 응시한다는 것이다. 서울시장 후보인 박원순, 안철수, 김진숙이 전자이고 김종민, 최태현이 후자다. 입을 다물고 실룩 웃는 건 신지예 후보뿐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상대를 하대하는 비웃음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아니, 누군가는 그렇게 이해했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직 이 가설엔 보완이 필요하다.

브라운아이드걸스가 노래 ‘아브라카다브라’에 맞춰 춘 춤은 ‘시건방춤’이라 불렸다.

브라운아이드걸스가 노래 ‘아브라카다브라’에 맞춰 춘 춤은 ‘시건방춤’이라 불렸다.

미술사학자인 에르빈 파노프스키는 논문 ‘조형 예술 작품의 기술과 내용 해석’에서 작품의 “주제 의미를 발견하는 일에서 오류를 피하기 위한 보완책으로서는 유형사적 지식이 요구”된다고 말한 바 있다. 가령 칼을 든 살로메의 그림 유형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접시에 적장의 목을 담은 유디트의 유형은 (비록 그것이 문헌과 어긋나더라도) 상당히 자주 등장했다는 유형사적 지식을 통해, 우리는 프란체스코 마페이의 그림 속 칼을 들고 접시에 한 남성의 목을 담은 정체불명의 여성이 살로메가 아닌 유디트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지예 후보의 이를 드러내지 않는 미소가 시건방진 여성을 의미한다고 유추할 만한 유형사적 사례가 있을까. 한국 대중문화에서 시건방지다는 것이 공식적 키워드가 된 케이스가 있다. 바로 브라운아이드걸스(이하 브아걸)의 곡 ‘아브라카다브라’의 공식 안무인 ‘시건방춤’이다. 넓게 보면 섹시 댄스의 범주에 속할 만한 춤이지만, 네 명의 여성 그룹이 무표정에 가까운 미소로(소위 ‘썩소’가 춤의 주요 포인트였다) 팔짱을 끼고 골반을 흔드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시건방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중요한 건 노출이 아닌 무표정하고 심드렁한 태도다. 다시 앞서 말한 ‘시건방지다’의 사전적 의미를 보자. 시큰둥하고 건방지다. 이 중 ‘시큰둥하다’는 두 가지의 의미로 구분되는데 첫째 말이나 행동이 주제넘고 건방지다, 둘째 달갑지 아니하거나 못마땅하여 시들하다, 라는 뜻이다. 시건방지다는 표현에 어울리는 건 전자지만, 흔히 시큰둥하다는 표현을 쓸 땐 후자의 의미로 쓴다. 하지만 브아걸의 사례에서 ‘시큰둥하다’의 두 가지 의미는 하나로 겹쳐진다. 남들은 다 웃어주거나 호감을 사려 노력하는 상황에서 젊은 여성이 ‘달갑지 아니하거나 못마땅’한 태도를 취할 때 한국 사회는 ‘주제넘고 건방지다’고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젊은 여성 정치인이 남들처럼 해맑게 웃지 않고 입매만 살짝 올려 웃는 것에 대해서도 같은 반응을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위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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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브아걸의 춤에 분노하는 남성들은 없었다. 다시 말해 브아걸도 신지예도 주체적이고 만만치 않은 여성의 이미지를 의도하더라도 어떤 남성들에게 그것의 최종 느낌은 다르게 다가왔다. 위의 논문에서 파노프스키는 회화가 작가의 의도를 넘어 최종적으로 드러내는 세계관적 에너지를 해석하기 위해선 당대의 정신사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페미니스트 시장을 슬로건으로 내건 신지예의 경우엔 당연히 페미니즘이다. 브아걸이 시건방진 여성의 이미지로 결국 “널 내가 내가 갖겠어”라며 얼핏 역전된 듯 보이지만 사실 남성의 이성애 판타지를 만족시킨다면, 페미니즘을 내세우는 신지예는 시건방진 여성이란 신체 이미지로 남성 중심적인 사회를 종식시키겠다는 메시지를 드러낸 셈이다. 그런 면에서 그 남성 변호사의 해석은 틀리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보다 예민하고 직관적으로 자신들의 세계에 대한 위협을 읽어냈다. 단지 반응이 옹졸했다. 신지예의 눈빛과 사진 구도로부터 계몽주의를 읽어냈던 남성 변호사와, 페미니스트들이 책 읽고 공부하라고 말해서 싫다고 징징대는 남성들이 다를 게 뭔가. 그들은 신지예 후보의 벽보가 드러내는 페미니즘이란 시대정신 앞에서 자신들이 시대의 물결에 떠내려가야 할 존재임을 직감했을 뿐이다.

스스로 더 시건방진 후보가 되겠다고 선언한 신지예의 반응은 그래서 빛난다. 자신은 시건방진 게 아니라고 말하는 대신 사회가 시건방진 여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의 벽보 이미지가 가진 파괴력을 배반하지 않는다. 대신 시건방지다는 표현을 재전유하며 만만치 않은 여성, 도전적인 여성, 위협적인 여성, 구시대를 종식시킬 여성의 자리를 계속해서 갱신하고 있다.

하이데거가 말한 회화의 알레테이아, 즉 탈은폐로서의 진리는 이런 식으로 드러난다. 남성의 시선에서 그려졌던 대상화된 여성 이미지에서 벗어난 신지예 후보의 무표정에 가까운 미소와 직시하는 눈빛은 그동안 사회가 은폐하고 배제했던 여성이 가진 역능, 기존의 세상을 근본적으로 뒤집을 힘을 드러낸다.

이 진리는 분명 어떤 남성들에겐 견디기 어려운 것이리라. 하지만 그들이 격하게 반발할수록, 그것의 진리성만이 증명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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