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의 석학에게 미래를 묻다

7인의 석학에게 지속가능한 미래를 묻다...오늘부터의 세계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마음이 복잡하다. 경제적 위협을 받지 않는다 해도 행동과 감정을 옥죄어오는 압박이 피로를 넘어 포기하고 싶을 정도라는 호소가 일고 있다. 하지만 이어지는 집단감염 뉴스는 긴장을 고조시킨다. 과연 코로나19 바이러스 위협은 언제쯤 종료될 것인가. 우리가 세워내야 할 건강 시스템은 무엇이며, 오늘을 압박하는 불안은 실제 어디에서 오고 있는지 공공역학자 케이트 피킷 영국 요크 대학교 교수와 함께 추적해 보고자 한다. 5월20일까지 진행한 e메일 인터뷰이다.

영국 공공역학자 케이트 피킷 요크대 교수는 ‘7인의 석학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를 묻다…오늘부터의 세계’ 인터뷰에서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에 대비하고자 한다면 국민 건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불평등’ 같은 사회적 결정요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2017년 1월 요크대 사무실에서 ‘세계 여성 지성과의 대화’ 기획 당시 안희경씨와 인터뷰하는 피킷 교수. ⓒ폴 실즈

영국 공공역학자 케이트 피킷 요크대 교수는 ‘7인의 석학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를 묻다…오늘부터의 세계’ 인터뷰에서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에 대비하고자 한다면 국민 건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불평등’ 같은 사회적 결정요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2017년 1월 요크대 사무실에서 ‘세계 여성 지성과의 대화’ 기획 당시 안희경씨와 인터뷰하는 피킷 교수. ⓒ폴 실즈

코로나19 감염 높은 유럽·미국
바이러스 경로 추적 대응 늦어
병상 부족 등 의료 시스템 마비

안희경(이하 안) = 이 팬데믹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지고, 어떻게 막을 내릴까요.

케이트 피킷(이하 피킷) = 영국 정부는 코로나19 상황에 대해 발표할 때마다 “과학을 따를 뿐”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 표현이 함의하는 바는 단순하지 않아요. 감염됐던 사람들이 면역력을 갖고 있는지, 갖는다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어떤 백신이 어떻게 효과를 발휘할지, 그리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어떻게 적응하고 돌연변이를 일으키는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과학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진화하고, 꽤 종종 복잡하게 나타나죠. 수정 구슬이 아닙니다. “구슬아 구슬아 코로나가 어떻게 막을 내릴지 말해주렴.” 간절히 불러도 과학은 답을 할 수 없습니다.

안 = 그렇다면, 우리의 최선은 현재를 점검하며 안전을 살피는 것인데요. 공공역학자로서 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럽과 미국에서 그토록 심각하게 퍼졌다고 생각하나요. 의료 시스템이 마비되는 상태까지 갔습니다.

피킷 = 의료 시스템이 겪는 양상은 꽤 다르게 나타나고 있어요. 영국은 역학 모델링을 통해 중증 환자용 병상이 아주 많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고, 대규모 특수병원을 런던, 맨체스터, 버밍엄, 브리스톨, 해러게이트, 그리고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및 웨일스에 새로 설치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필요한 병상은 예상보다 적었습니다. 런던병원은 중증 환자용 병상 4000개를 설치했지만, 입원 환자 수는 54명이었고, 런던에 있는 여타 병원들도 확대했던 중증 환자용 치료시설을 5월15일 폐쇄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미국은 여러 지역에서 병상이 모자라 악전고투했죠. 특히 뉴욕은 코로나19 검사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인파가 몰려 병원 밖까지 대기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의료시설마다 넘쳐나는 환자 수에 압도당했습니다. 뉴욕시에 있는 영안실들도 사망자를 수습하느라 힘겨워했고요.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죠. 각 사회에서 양상이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코비드(COVID)19로 인한 지역감염이 왜 유럽과 미국에서 높은 수치로 퍼졌는지 충분히 설명할 단계까지 가는 데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겁니다. 분명한 것은 영국을 비롯해 이들 정부가 확진자 접촉 경로를 추적하고 바이러스 이동상황을 쫓고자 결정하기까지 오래 걸렸다는 겁니다. 굼떴어요. 방역과 치료 일선에 있는 의료진은 물론이고 다른 핵심 인력들에게조차 개인 보호장비를 공급하는 데 힘들어 했습니다. 영국 정부는 여행제한 조치를 내리는 데도 늑장이었고, 입국자들을 격리조치 하기까지도 느렸어요. 록다운 조치에 대한 유럽인과 미국인의 태도도 다릅니다. 유럽에서는 다들 존중하며 따랐지만 미국에서는 저항이 나왔고, 음모론이 무성했으며 개인의 자유가 공공의 이익보다 중요하다는 의식이 강하게 표출됐습니다.

빈곤·교육 수준 차이 큰 미국
건보 가입률·의료 접근성 낮아
병원에 돈 가장 많이 쓰지만
건강 불평등 격차 현저히 높아

안 = 군사력과 경제력은 물론이고 미래 산업인 바이오 부문에서도 미국은 최강국입니다. 오래도록 의료 선진국으로 통했던 미국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무너지는 모습은 충격이었어요. 그로 인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그토록 치명적인가 하는 두려움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피킷 = 미국이 의료 선진국이라는 사고는 착각입니다. 한 나라 국민의 건강 정도로 그 나라의 의료 수준을 평가할 때, 미국은 선진국 반열에 있지 않아요. 한 국가의 건강 정도를 측정하는 항목이 여러 개로 나뉘는데, 미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유일한 항목은 지출 비용뿐입니다. 건강에 돈을 가장 많이 쓰는 나라죠.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다른 나라 국민들보다 건강하지 못합니다. 미국인 중 다수가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데다 의료시설에 접근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건강 불평등 격차가 크죠.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간의 기대수명 차이가 크고, 영아 사망률도 차이가 큽니다. 인종별로 비교해도 격차가 크고요. 국제적인 통계로 보듯이 미국인의 건강 상태는 다른 부자 나라들보다 현저히 낮습니다. 여타의 나라들은 미국보다 훨씬 적게 쓰면서도 월등히 나은 국민 건강 상태를 유지합니다. 그 이유는 국민의 건강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그 사회의 상태이기 때문이에요. 경제적 불평등 정도, 빈곤, 교육 수준 격차, 그리고 차별과 편견이 얼마나 강한가 등에 따라 결정됩니다. 병원에 돈을 많이 쓴다고 해서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걸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경제적인 문제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훨씬 심각합니다.

안 = 스웨덴은 매우 평등한 사회로 간주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국민들의 건강 상태를 자신하며 집단면역 정책을 선택한 건가요. 그들은 특별한 사회 조건을 갖고 있는지요.

피킷 = 스웨덴의 높은 평등성은 국민들 간에 높은 신뢰도를 갖도록 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정부를 신뢰하죠. 그렇지만 스웨덴은 다른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는 매우 다른 코비드 대응책을 선택했어요. 저는 스웨덴이 집단면역 정책을 선택했다고 자신 있게 답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의 활동과 비즈니스를 제한하지 않음으로써 경제를 뒷받침하는 완화된 제재 대응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존스홉킨스 대학교가 5월19일 집계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데이터와 유엔에서 나온 인구수 대비 사망자 숫자를 보면 스웨덴의 사망률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보다 높습니다. 하지만 스웨덴의 정책 결정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봐야 합니다. 그들이 다른 나라들보다 신속하게 경제를 회복시킬지, 아니면 더 깊은 충격을 감내해야 할지 그 평가는 좀 더 있어야 나옵니다. 강력한 봉쇄 조치를 취한 다른 나라들이 장기적인 면에서 국민의 건강과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는 데 효과적이었는지 그 결과에 따라 스웨덴에 대한 판단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한국서 요구 증가한 ‘원격진료’
지역감염 조기 차단 장점 지녀
취약층 소외·디지털 격차 등
사회·경제적 불평등 커질 수도

안 = 한국에서는 코로나19 위기 동안 원격진료에 대한 요구가 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보수 정권이 원격진료를 도입하려 했고, 한국의사협회는 반대했습니다. 원격진료가 영리병원을 도입하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죠. 만약 의료 시스템이 영리 추구 방식으로 간다면 어떤 문제들이 있을까요.

피킷 = 현재 많은 국가들이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보편적인 의료보험 체계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꾸준히 이동하고 있죠. 국민건강보험은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 개발 기구들도 권장합니다. 공공 의료 전문가들은 한 사회 속에 민간 의료서비스와 개인이 가입하는 민간 건강보험이 의료비의 전부나 일부분을 차지할 때, 비록 그 나라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 의료보험을 시행하고 있더라도, 국민들의 경제적 불평등과 건강 불평등은 심화됐다고 밝힙니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보편적인 돌봄체계(저렴한 비용을 내거나 무료로 받는)를 시행하는 사회일지라도 사적 의료서비스 체계가 늘어날수록 국민의 건강 상태에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죠. 건강과 치료에 지불하는 비용에 비해 효율성이 상당히 떨어져요. 더불어, 오로지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제공하는 사적 건강관리 시스템(의료서비스를 개인비용으로 이용하거나 개인 건강보험으로 이용하는 시스템)은 건강 불평등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심하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건강 이외의 다른 부문에서도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후유증이 나오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안 = 원격진료가 환자들에게 주는 장점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해야 공공의료를 무너뜨리지 않고 원격의료의 장점을 사용할 수 있을지요.

피킷 = 원격진료를 실시하면서 환자 상태가 위급해지지 않도록 막아내는 데는 도움이 됐습니다. 취약한 집단 속으로 지역감염이 퍼지지 않도록 전염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되었죠. 많은 의사들이 원격진료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운영되는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도 의사와 감염에 대해 전화상담을 하면서 이 시스템이 제법 잘 작동한다고 여겼어요. 앞으로는 전보다 더 높은 차원의 원격진료가 이어지리라 예상합니다. 다만 위험요소는 있습니다. 아무리 유능한 전문 의료진이라고 해도 원격으로 진찰해서는 미묘한 단서를 포착하거나, 말하지 못하는 환자의 상태를 해석해내기 힘듭니다. 또 한 가지, 다수가 소외될 수 있어요. 특히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원격진료 방식으로 의료진과 연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거라는 거죠. 나이 드신 분들 가운데 많을 거고, 그 나라 말에 능통하지 않은 분들, 또 디지털 기기에 접근하기 힘든 빈곤층이 낙오될 수 있습니다. 디지털 격차가 뒤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위기 상황에서, 또 회복기 동안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거나 보살핌을 받지 못할 위험부담이 생기죠. 정부는 공공의 건강을 앞서서 준비하고 보호할 필요가 있는 동시에 위기에 대응하는 정책이 불평등을 증가시키지 않도록 위험요소를 완화할 의무도 있습니다. 이를 잘 고려해야 합니다. 원격의료와 영리 추구는 하나로 결합될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공공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국민 건강의 목표라면 그 목표 아래 여러 조치들이 배치되어야 합니다.

안 = 한국에서는 앞으로 일어날 빈번한 재난에 대비해 국가가 운영하는 공립병원을 더 많이 설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합니다. 미래의 팬데믹에 대비하기 위해 어떤 유형의 공중보건 시스템을 취해야 할까요.

피킷 = 코비드19가 우리에게 알려준 것이 있습니다.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이라는 거죠. 사망률이 훨씬 높아요. 심장병이나 당뇨병, 호흡기 질환같이 이미 기본 건강 상태에 타격을 입은 경우 위험합니다. 비만 또한 코로나19에 걸릴 확률을 높이고 사망할 확률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밝혀졌어요. 이 모든 위험요소들은 불평등한 사회에서 지위가 낮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뚜렷한 병증입니다. 지난 40년가량 진행해온 공공역학 연구에서 밝혀졌죠. 우리가 미래에 팬데믹으로 번질 감염병 발생에 대비하고자 한다면, 사회 구성원들이 회복 탄력성을 갖추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 건강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결정요인에 초점을 맞춰 예방을 강화해야 합니다. 물론 전염병에 대응하도록 전문성을 갖춘 공공보건 전문가들을 확보하고, 질 좋은 건강 관리를 받도록 모두에게 접근성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정부는 공중보건 시스템을 강화해야 하죠. 하지만 병원은 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병원은 질병을 치료하는 기관입니다.

■“금융위기 때 세계가 각성했지만 과거 답습…이번엔 되풀이 말아야”

코로나19에 드러난 ‘불평등’의 민낯 코로나19 팬데믹은 공공보건을 위협하는 ‘불평등’의 심각성을 부각시켰다. 팬데믹 세상에서는 사회·경제적 약자일수록 생계 위기로 인한 감염증 노출 위험이 컸고, 기저질환들로 생명을 잃을 위험도 높았다. 코로나19가 한창 확산하던 지난달 15일 미국 뉴욕 퀸스의 엘름 허스트의 세인트 바르톨로메 교회의 푸드뱅크에서 사람들이 기부된 음식을 줄을 서서 받고 있다. 전국요양서비스노조 관계자들이 지난 2일 국회 앞에서 요양서비스 공공성 강화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미국 미시간주 그로스 포인테에서 한 시민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폐쇄된 프레이밍 갤러리 옆을 지나가고 있다(위 사진부터).  AP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19에 드러난 ‘불평등’의 민낯 코로나19 팬데믹은 공공보건을 위협하는 ‘불평등’의 심각성을 부각시켰다. 팬데믹 세상에서는 사회·경제적 약자일수록 생계 위기로 인한 감염증 노출 위험이 컸고, 기저질환들로 생명을 잃을 위험도 높았다. 코로나19가 한창 확산하던 지난달 15일 미국 뉴욕 퀸스의 엘름 허스트의 세인트 바르톨로메 교회의 푸드뱅크에서 사람들이 기부된 음식을 줄을 서서 받고 있다. 전국요양서비스노조 관계자들이 지난 2일 국회 앞에서 요양서비스 공공성 강화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미국 미시간주 그로스 포인테에서 한 시민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폐쇄된 프레이밍 갤러리 옆을 지나가고 있다(위 사진부터). AP로이터연합뉴스

‘미 실업률 25% 육박’ 대량의 낙오자 발생 땐 트라우마·사회적 부담도 장기화
불평등은 가난한 사람들뿐 아니라 인구 대다수의 행복에 영향
이번이 마지막 기회…‘도넛 경제학’ 등 대안 통해 이윤 중심 세계화 자본주의에서 벗어나야

안 = 바이러스 감염은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똑같이 발생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영국 총리, 할리우드 스타 및 왕실 가족도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됐습니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코로나19로 사망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수가 현저히 높았으며 한국에서도 노동환경이 취약한 곳에서 집단감염이 나왔습니다.

피킷 = 영국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영국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의 코로나19로 인한 사망률이 빈곤 정도가 제일 낮은 지역보다 두 배 높았습니다. 소수자들 중에서도 경제적으로 취약한 집단의 감염률이 가장 높았고요. 지역 병원들이 내놓은 임상 결과도 이와 비슷해요. 병원에 온 사람들을 인종별로 나눠 볼 때 뚜렷한 차이가 나왔죠. 대부분 도심에 거주하는 가난한 백인들이 취약했습니다. 경제적 박탈과 소수자 지위는 두가지 방식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연결됩니다. 첫째는 앞서 언급했듯이 건강 상태가 사회적으로 결정되기에 가난하고 비주류인 소수자일 경우 기저질환을 갖는 인구가 더 많아 위중해지거나 사망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훨씬 높고요. 둘째는 이들의 경우 주거 환경이 취약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과밀한 주거지, 여러 세대로 이뤄진 가족 구성원이 많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현장에서 일하는 비율도 높았습니다. 병원이나 요양원 노동자, 돌봄 업무 종사자, 음식 공급자 등 대면 접촉이 많고, 감염 취약 인구와 함께하죠. 거기에 수입이 줄면 생계가 위태로워지니 감염 위험이 있더라도 일을 멈출 수 없습니다.

안 = 코로나19 위기가 경제 및 정치 위기로 확산되었기에 불안감도 커졌습니다. 특히 당신은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경제적으로 지위가 낮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고혈압·심장병·비만 등에 걸리는 비율이 높다는 연구로 주목을 받았고, 최근에는 사회 불평등이 정신 건강을 위협한다는 연구 결과들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지금 일고 있는 불안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는지요.

피킷 = 코로나19 위기가 오기 전부터 현대인들의 불안감은 임상적으로도 심상치 않았습니다. 최근 우리 연구소에서 주관하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낙후된 영국 북부 도시에 사는 부모들에게서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 증세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약 40%의 부모들이 이 범위에 있어요. 그들은 본인뿐 아니라 자녀들도 건강과 주거, 영양 상태, 수입의 안정성이 불안하다고 걱정해요. 사람들은 늘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죠. 남들 눈에 가치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날을 세웁니다. 심리학 용어로는 사회적 평가 위협(social evaluative threat)이라고 합니다. 남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다고 느끼는 감정은 정신건강을 약화시키는 강력한 위험 요소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서로에 대한 믿음이 낮고, 외적으로 보이는 부분에 치중해 소비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지금은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어요. 일자리를 유지해도 소득이 줄어드는 상황이죠. 이는 그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던 부분이 사라지고 있다는 위협입니다. 자신이 쓸모없다고 느낄수록 정신적인 부담도 같이 커집니다. 미국에서는 실업률이 25%까지 높아진다는 예측이 나오죠. 그러면 성인 4명 중 1명은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몰린다는 건데요. 사회가 경제 지표는 매일같이 예측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 지표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는 주목하지 않고 있습니다.

안 = 1980년대 영국 대처 정부에서 대량 해고가 이어질 때, 청소년 폭력집단이 증가했고, 이후 범죄 발생 비율도 폭증했습니다. 그처럼 이 위기에서도 대량의 낙오자가 발생한다면, 코로나19 위기가 진정되어도 정신적 트라우마는 상당 기간 이어지고, 사회적 부담은 장기화되리라 봅니다. 당신은 이미 현대 청년과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이 전에 비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위험수위라고 경고했습니다. 오늘의 불안이 나이가 어릴수록 더 심각하게 작동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피킷 =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의 연구자들이 2006년 청소년 정신건강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10대 청소년들이 20년 전 청소년들에 비해 훨씬 힘든 정신적 문제를 안고 있고, 특히 심각한 정서적 장애를 경험하고 있다고 밝혔어요. 2017년 나온 미국 심리학회 연구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이처럼 정신질환이 증가하는 것에 편부모 가족이 늘어나는 현상이나, 부모의 재혼 여부, 빈곤 여부는 상관관계가 없었습니다. 전반적인 현상이죠. 이유도 복합적입니다. 제가 앞서 소득 불평등과 빈곤이 건강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언급했는데요. 청소년들 또한 또래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도록 비교받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부모의 경제적 지위, 문화적 지위가 아이들의 지위로 작동하죠. 거기에 교육 과정은 점점 더 학업 중심으로 짜여가고 있어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경험합니다. 건강한 아동 발달을 위한 교육은 자리를 잃고 있죠. 그리고 소셜미디어와 연결된 여러 스트레스 요인이 그들 생활 속에 강도 높게 자리합니다. 무엇보다 지금 청소년과 청년들 다수는 자신들의 미래가 점점 더 불안해지고 있다는 것을 매일매일 확인하고 있습니다.

안 =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불평등한 사회가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들고 있습니다. 인류가 이 교훈 하나라도 붙잡고 개선해 나간다면 위기가 반전하는 기회로 작동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피킷 = 불평등한 사회에 사는 경험은 인간의 사고와 감정은 물론이고 관계 맺는 방식마저 바꾸고 있습니다. 미국은 다른 부유한 국가들과 비교할 때, 부자와 빈자 사이에 소득 격차가 가장 크고, 살인율과 정신질환자 비율, 10대 출산율이 가장 높아요. 반면 기대수명은 가장 낮고 아동의 행복 수준과 수학 성취도, 문해력은 낮습니다. 1970년대 초기 연구에서부터 소득 격차가 큰 나라일수록 폭력사건이 더 자주 발생하고 건강 상태가 나쁘다는 사실이 나타났어요. 특히 중요한 지점은 불평등이 가난한 사람들뿐 아니라 인구 대다수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제가 좀 더 평등한 나라에서 교수를 하고 넉넉한 수입을 얻는다고 할 때, 저는 불평등 지수 1·2위를 다투는 여기 영국에서보다 오래 살 가능성이 높고 폭력사건에 희생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뜻입니다. 커다란 소득 격차가 모든 구성원을 지위 경쟁과 불안 속으로 더 깊숙이 빠뜨립니다. 우리는 몸이 병들지 않으려면 주변의 오염원과 발암물질을 꼭 없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서적으로 해로운 환경이나 심리적 환경을 반드시 고쳐야겠다고 나서기보다는 외면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사회의 불평등과 불안이 사회생활과 행복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는 원인이라면 이것도 숨 쉬는 공기만큼 정치인과 대중의 관심을 받아야 합니다.

안 = 뉴노멀(new nomal·새로운 표준)이 등장한다고들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하는가가 아닐까요.

피킷 =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도, 전 세계에서 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틀을 짜야 한다는 각성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어요. 지금은 결코 그때의 관행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이미 우리 손에 이윤 중심의 세계화 자본주의 구조를 개선하는 여러 대안 모델이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가 환경과 공동체를 지켜낼 자본주의 모델로 제시한 ‘도넛 경제학’도 그중 하나인데요. 반갑게도 암스테르담을 비롯해 몇몇 도시들이 이를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는 정책으로 삼는다고 발표했습니다. 웰빙경제연합(Wellbeing Economy Alliance·행복경제연합) 같은 그룹들도 경제 회복을 위한 세밀한 지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안 =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피킷 = 우리는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를 고를 수 있어요. 그로부터 당면한 이슈에 대해 폭넓은 정보를 얻어 사고를 단련할 수 있습니다. 정치가와 정책결정권자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길로 나아가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죠. 직장에서도 여러 분야에 걸쳐 시행되는 관행들이 과연 공정한가 질문하는 겁니다. 동료들이 세상을 위해 목소리를 내도록 북돋으면서요. 노동자라면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고, 소비자로서 노동자에게 안전한 작업환경을 제공하고, 노동자 간에 낮은 임금 차이를 유지하는 기업들을 응원할 수 있죠. 그리고 우리에게는 투표권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과 지구를 위해 정책을 내는 진보 정당에 표를 준다면 세상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 겁니다. 여러 단체들은 오래전부터 불평등을 줄이고자 활동해오고 있어요. 이들을 지원하는 것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친절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애쓰고 있다는 것을 서로 인정해주는 거죠. 우리의 말과 표정이 곧 우리의 노동 조건이자 사회 환경이거든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 가치인지 보여줬습니다. 그동안 낮은 임금으로 돌봄 영역에서 일해온 이들, 슈퍼마켓 선반을 채워온 이들, 생필품을 배달해온 이들, 청소를 해온 이들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들 키 워커(key worker·핵심 인력)의 귀중한 역할을 계속 기억해야 해요. 저는 지금 낙관주의자가 됐습니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이때 우리가 바른 변화를 이뤄낼 거라고 예견합니다.

다음 석학은 원톄쥔

결국 질병으로부터 사회 구성원을 지키는 처음과 마지막은 모두 정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다음 회는 농업경제학자 원톄쥔과 함께 경제·정치 위기로 확산된 코로나19 위기가 식량위기로 이어질 것인가에 대해 논하며, 중국과 미국이 갈등하는 이유와 원톄쥔이 제시하는 경제·문화적 대안에 대해 이야기한다.

<글 싣는 순서>

①장하준 ②제러미 리프킨 ③마사 누스바움 ④반다나 시바 ⑤케이트 피킷 ⑥원톄쥔 ⑦닉 보스트롬 ⑧에필로그


[7인의 석학에게 미래를 묻다]⑤케이트 피킷 “경제 불평등 줄여 구성원 회복탄력성 갖춰야 팬데믹 극복 가능”

▶케이트 피킷(Kate Pickett)은

영국 요크 대학교 역학과 교수이자,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밝혀 제도 개선을 이끄는 정책가이다. 1965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형질 인류학을, 코넬 대학에서 영양학을,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버클리에서 사회역학을 공부했다. 시카고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영국 국립건강연구재단에 선임과학자로 참여했다. 영국왕립학회, 영국공중보건기구 회원이자 요크평등위원회와 생활임금위원회 위원이다. 2009년 리처드 윌킨슨과 함께 쓴 <평등이 답이다(The Spirit Level)>가 뉴 스테잇먼 선정 지난 10년간 출간 10대 책에, 그해 국제정치학회 선정 최고의 책으로 꼽혔다. 신자유주의 경제 구도 속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과 평등을 위한 연구를 지원하고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공익재단 ‘이퀄리티 트러스트(The Equality Trust)’ 공동 창시자이다. 2013년 평등 수호를 위한 연대로부터 실버로즈상을, 2014년 아일랜드 암학회로부터 찰스컬리 기념메달을 수상했다. 최근 저서로는 리처드 윌킨슨과 함께 소득 격차와 사회적 지위가 끼치는 심리적 영향력을 밝힌 <불평등 트라우마>가 있다.



[7인의 석학에게 미래를 묻다]⑤케이트 피킷 “경제 불평등 줄여 구성원 회복탄력성 갖춰야 팬데믹 극복 가능”

▶필자 안희경은

재미 저널리스트다. 2002년 미국으로 이주, 서구의 문명사적 성찰과 대안 모색 등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세계적 마음 전문가들의 인터뷰집 <사피엔스의 마음>, 리베카 솔닛 등 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대화를 엮은 <어크로스 페미니즘>, 재러드 다이아몬드 등 세계 지성 11명과의 대담집 <문명 그 길을 묻다>, 놈 촘스키 등 세계 석학 7인과의 대담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윌리엄 켄트리지 등을 인터뷰한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등 저서와 다수의 번역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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